디자인 문화비평 01 - 우상.허상 파괴
디자인문화실험실 기획ㆍ편집 / 안그라픽스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되는 김민수 선생의 새 책이다. 구체적으로 글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진형준의 글은 이미지라는 개념에 대한 재조명인데, 너무 개괄적이다. 이정구의 글은 도상과 우상이라는 개념틀을 빌어 건축, 특히 교회건축을 비평은 글로, 그런데로 재미있는 글이고, 김선정의 글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경향에 대한 글로 요즘 미술계의 판도를 읽는데 도움이 될법한 글이다.

최정화의 작품?은 잘 맞는 사람도 있을테니만, 내 입맛엔 정말 안맞았다. 취향의 차이겠지싶었다. 배영환의 글은 이땅에서 미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자기고백이다.

이영범,최혜실,서정남의 글은 각각 건축,광고,영화에 대한 수필같은 비평인데(이걸 비평이라고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묽은 글이라고 느껴진다. 건축을 보고 든 생각, 광고를 보며 떠오르는 느낌, 뭐 이런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적어내려간 글인데, 이걸 왜 내가 돈주고 사서 읽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괄적인 글들이다.

특히 서정남의 영화에 대한 글은 심한 편인데, 영화광들이 한둘이 아니고,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영화감독들이 올라오는 세태를 생각하면, 이글은 너무나 성의 없는 글이라 느껴진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좋은 비평은 성완경의 글로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아마벨 철거에 대한 것이다. 적절한 인용, 차분하고 정연한 논리, 공공미술에 대한 전문가적인 깊은 식견 등 이글은 비평의 전범이 될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글이라 느껴진다. 난 이렇게 생각해라는 식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미술을 둘러싼 작가, 건축주, 그것을 보며 스쳐지나가는 시민인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는 여운있는 글이다.

김민수의 글은 호돌이 디자인에 드러나는 우리 디자인계의 식민성에 대한 글인데, 아무래도 무리란 느낌이 든다. 안그래도 입장이 옹색해진 김민수선생에겐 미안한 평이지만, 그리고 식민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미있는 일이지만, 호돌이 디자인문제와 식민성을 연결하기에는 논리적 필연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패션 전시회에 대한 보고형식을 띤 김성복의 글은 좀 심하다싶을 정도로 통렬한 비판이다. 전문가적 식견으로 무장해 우아한 속물들의 잔치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전투? 유일한 외국필자인 알레산드로 고마라스카가 쓴 일본 에니메이션에 대한 글은 저자가 얼마나 이주제에 오래동안 천착해 왔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글이었다.

이책은 사실 디자인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문화전반에 대한 비평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비평과 수필이 섞여있다. '디자인은 국부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좁은 개념을 벗어나....' 뭐 이런 핑계는 대지말기 바란다. 디자인을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는 물론 있지만, 그런 이유에서 이렇게 무지게같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글 형식과 수준에 대한 문제인데, 비평문과 수필이 뭔지, 어떻게 구분되는지 정확하게 분리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일부의 글들은 너무 묽다고 본다. 깊이있는 시야가 뭍어나는 농밀한 비평을 기대했는데, 좀 실망스럽다는게 솔직한 평이다. 이런 지적이야말로 사실, 지금의 디자인계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에 대한 비평서가 발간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이책은 일단 그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살까말까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사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디자이너나 문화계 주변에서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어쩌튼 도움이 되는 글일거고, 일반인이라면 교양수준으로 좋은 책이다. 13000원(정가) 정도에 이런 글을 볼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책값이 싸기 때문에 얻을수 있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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