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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의 바다
모리사키 카즈에 지음, 채경희 옮김 / 박이정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모리사키 카즈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팔리는 일은 많았지만, 먼 해외로까지 떠나게 되는 배경에는 일본의 이웃 나라들에 대한 경제·군사적 침략이 있었음을 밝힌다. 또한 정해진 기한동안 창기봉공을 하고 다시 고향이나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던 시대에서, 여자아이가 인신매매, 호적이전, 감금 등의 과정을 거쳐 기한 없이 성적 상품으로 소모되는 시대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변화에는 일본과 해외의 유곽을 연결하는 인신매매·포주 조직의 번성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드러낸다.
그의 연구의 특징은 왜 특정한 지역에서 더 많은 카라유키상이 생겨났는가에 대해 그 지역의 전통적 성문화와 경제적 상태, 이와 연관되는 그 지역 사람들의 기질을 밝힌 점에 있다. 아마쿠사 지역의 경제적 곤란, 다른 곳에 가서 돈 벌이를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던 것, 어린 나이부터 성적으로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외지에 가서 돈벌이를 하고 돌아오더라도 배척당하지 않았던 점 등을 제시한다. 또한 이들의 이러한 기질이 한 번 외국으로 이주한 이후에 더 먼 곳으로 계속 갈 용기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고, 위험하고 척박한 환경에 처해있던 카라유키상들 중에서도 자신들의 길을 직접 개척했던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던 소개업자나 포주들, 이들과 어울리며 자신들이 카라유키상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회상하는 ‘우국지사’들이 카라유키상들과 얼마나 다른 처지에 있었는지를 지적한다.
처음 카라유키들의 해외 이주가 어떠한 수요에 부응하고, 어떠한 경로로 시작되었는가는 분명하지 않으나 모리사키는 일본 남성 노동력의 조선, 만주, 시베리아, 타이완, 남양으로의 이주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일전쟁이나 중국과의 전쟁 등으로 변화를 겪기도 하나, 여성들은 일본 남성 노동력이나 군대의 이동보다 더 먼저 먼 곳에 진출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군의 진출과 함께 그 수가 훨씬 늘어나고, 또 한편으로는 공창제에 포섭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후지메 유키(藤目ゆき)는 침략 군대의 이동으로 인해 생겨난 군사력 보존을 구실로 한 공창제를 근대국가의 성매매 관리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보고 있다.1) 그런데 모리사키 카즈에는 국가의 개입과 함께 카라유키상이 공창과 사창으로 나뉘고 더 가난하고 지배받는 위치가 되었음을 보여주면서도 군대나 공창제만으로 한정할 수 없는 카라유키상들의 삶을 부각시킨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여러 인종을 상대하고, 일본인 기업가와 노동자들이 진출해 있는 곳에서 활동하던 카라유키상들을 조명하여, 이러한 여성의 매매를 메이지 국가가 다시금 국가 팽창에 이미지로(낭자군), 남성 이주자들을 붙잡아두는 방편으로(대만의 공창 설치)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즉 군대 뿐 아니라 식민자들, 남성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공창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1920년에 일본은 싱가포르 및 말레이 반도의 창루를 폐업시켰으나, 대동아전쟁의 발발과 함께 수많은 여자들이 군대와 함께 공창으로 동남아에 옮겨가게 된다. 모리사키 카즈에는 위안부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나 수많은 여자들이 ‘국가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국가의 보호도 없는 공창제의 이름하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공창제와 위안부 제도의 강한 연관관계를 일찍이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위안부 제도에 식민지의 여성들도 연루되었다는 것까지 아는 데에는 1990년 김학순의 고발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리사키 카즈에는 카라유키상으로 살았던 몇몇 여성들의 삶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면서 통제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으로 살고자 했던 면모를 보여주며 그들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불확실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러 떠나기로 하는 행위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제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취약한 위치를 누가 이용하였는지, 일본의 팽창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실제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점도 이 책의 훌륭한 점이다. 다만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이 일본인 창기들을 괴롭히는 것조차 이해하려고 하는 저자의 자세는 침략국 일본의 국민으로서 성찰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과연 조선인으로서는 그러한 행동이 용납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남는다. 여성의 성을 살 수 있었던 조선 남성의 위치는 당시 유곽으로 팔려가고 유괴되어 해외로 팔려가던 조선인 여성의 위치와는 또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