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른생활 > 염쟁이 유씨

우리 조상들은 장의사를 염쟁이라 불렀다. 염쟁이 유씨는 조상 대대로 염쟁이 일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역시 염쟁이였던 아버지에게 일을 배워 40년 넘게 시신을 염습한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전통 장의 절차에 관심이 있는 한 기자가 취재를 요청하지만 염쟁이 유씨는 완고히 거절한다. 그러던 염쟁이 유씨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기자와 기자가 데려온 전통문화체험단과 자신의 마지막 염을 함께 하게 된다.

자신의 마지막 시신을 염습하며 염쟁이 유씨는 오랜 세월 죽은 사람을 단장해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접한 사연들을 하나 둘 풀어 놓는다. 혼자 열 가지가 넘는 배역으로 변신해 펼치는 유순웅 배우의 코믹한 연기는 관객들의 박장대소를 자아낸다. 그런데 염쟁이 유씨는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걸까? 염습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사연은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거리는 관객들이 여기저기 속출할 정도로 애잔하다.

앞으로 보실 분들을 위해 연극에 나오는 전통 염습 절차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연극 염쟁이 유씨로 배워 보는 염습 절차]

1. 먼저 시신을 시성판 위에 눕힌다. 시성판은 시신을 눕힌다고 흔히 알고 있는 칠성판과는 다른 것이다. 시성판 위에 시신을 눕혔다 염이 끝난 후 칠성판 위로 옮기게 된다.

2. 시신이 굳어버리기 전에 시신의 손, 발, 몸을 잘 주물러 편다. 이걸 수시(收屍)라 하는데 수시를 소홀히 하면 시신의 손, 발, 몸이 뒤틀리고 오그라들 수 있으므로 정성껏 해야 한다.

3. 솜으로 눈, 코와 귀 등 몸의 구멍을 잘 막는다. 시신이 부패해 흘러나오는 숭물(썩은 물)을 막기 위함이다.

4. 습을 하기 전에 사자(使者) 밥을 내어 놓는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망자를 데리러 오는 저승사자는 셋이기 때문에 3인분을 준비한다. 저승사자에게 밥을 바치는 것은 망자를 저승으로 편하게 모셔 달라는 의미이다.

5. 향나무나 쑥을 삶아낸 물인 향탕수(香湯水)로 시신을 정갈하게 닦는다. 이걸 습(襲)이라 한다.

6. 시신의 입에 구슬 넉 점과 물에 불린 쌀을 넣어 준다. 이를 반함(飯含)이라 하는데 망자가 저승으로 갈 때 양식으로 쓰라는 의미다.

7. 시신에 수의를 입힌다. 이를 소렴(小殮)이라 한다.

8. 소렴이 끝난 시신을 천(대렴포)로 잘 감싼다. 이것을 대렴(大殮)이라고 한다.

9. 시신을 입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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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른생활 > 2009년6월19일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

알라딘 회원들이 로쟈님에게 사전에 댓글로 질문한 내용에 대해 먼저 답변을 주시고 현장에서 참석자들에게 몇 개의 질문을 따로 받아 답변을 하는 걸로 토크를 마무리하셨습니다. 토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서평은 어떻게 쓰나. 

일단 몇 매짜리인지 분량이 중요하다.  그 분량에 맞게 책을 읽는다. 책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10 매짜리 서평을 쓸 수가 없다. 생각할 거리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런 경우 슬쩍 읽어야 한다. 20 매짜리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되고 30 매짜리는 더 깊이 들어가고 다른 책도 보고 하는 차이가 있다.

 

2. 그렇게 많은 책을 어떻게 읽나.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책은 자세히 읽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 부득불 이것저것 들춰 본다.   

읽지는 않지만 많은 책의 표지와 목차를 본다. 학교 도서관에서 50권, 동네 도서관에서 3권을 대출할 수 있는데 늘 53권을 다 대출해 놓고 있다. 이렇게 읽지는 않더라도 많은 책을 본다.

거의 매일 검색을 해, 관심 저자나 관심 주제다 싶으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다 구해 쌓아 놓는다. 필요한 부분을 필요할 때 찾아 읽는다. 쏟아져 나오는 책을 다 읽는 건 불가능하다.   

 

3.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한마디로 생계위기다.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이다. 즉 인문학자의 위기다.  

하지만 이런 뭉뚱그린 인문학 위기 담론엔 공감하기 힘들다. 인문학 내에서도 위기에 대한 체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부제 실시 후 군소학과는 위기지만 영문학과나 중문과는 절대 위기가 아니다.  

 

4. 인문학의 범위는. 

인문(人文)은 사람 인(人) 자와 글월 문(文) 자를 쓴다. 즉 인문학은 전부다. 이런 포괄성이 인문학의 특장이기도 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협소한 관심을 갖는 인문학자라는 것은 넌센스다. 문학을 예로 들면 작가마다 전공이 다 있다. 나는 A 작가 전공이라서 B 작가는 잘 몰라요, 혹은 C 시대가 전공이라서 D 시대는 모르겠어요 같은 얘기가 통한다. 이런 전문화 경향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한 무지가 아주 쉽게 정당화되곤 한다. 인문학에 대한 원(原) 이미지와 어긋나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내가 전체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와 대립되는 이념으로서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올바른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체성에 대한 고려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인문학적 보편성이란 게 유럽적 보편성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유럽인의 사고는 인문학이 되고 비유럽인의 사고는 인류학으로서 연구가 된다. 비유럽권은 학문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이다. 인문학 자체에 유럽 중심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게아닐까. 어느 일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이 인문학을 하는 것은 원숭이가 그리스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가능은 하지만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5. 인문학 공부가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 말고 세상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가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별로 상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공부라면 아주 지겨워 하는 것을 많이 봤다. 세상에 대해 바람직한 태도를 가지는 것 같지도 않다. 인문학과 인격은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6. 요즘 같은 세상에 인문학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난 희망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절망이다. 희망, 행복은 값어치가 없는 말이다. 제대로 절망하는 법만 알게 되어도 다행이 아닌가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는데 책을 읽을수록 고통에 대해 민감해지게 된다. 가령 양차 대전에서 유럽에서만 6천만 명이 죽었는데 그 역사를 맨정신으로 읽기는 어렵다.

어떤 행복이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다만 우리에게 왜 희망이 없는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이 왜 부끄러운 것인가 제대로 아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재미란 말도 싫다. 요즘 세상이 루키즘, 외모지상주의, 외관주의, 온통 그런 것에 지배되는 것 같다. 책도 재미난 책만 찾는다. 재미 없어도 좀 읽는 거다. 재미 없어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재미만 찾는 생활방식은 동물적이다.  

 

질문. 서재에 번역 관련 글이 많다.

단순한 번역비평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확장해 번역과 주체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번역-내(內)-존재이다. 대다수 책들이 번역서이고 사회, 국가, 민족처럼 우리가 쓰는 개념어들이 수입되어 번역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의 기원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오역을 다루는 번역비평과 관련해서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고난이도의 오역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정문을 왜 긍정문으로 옮겼냐를 지적하는 수준이다. 명백한 오역을 교정해서 읽자는 주의다.   

알려진 것과 달리 한국어가 영어보다 의미가 섬세한 경우 번역이 어렵다. people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어론 인민, 민중, 국민, 다중, 어중이떠중이, 사람이 다 people이다. 영어 단어 people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한국어로 번역하는 건 어렵다. 다른 예로 에스키모어엔 눈에 대한 단어가 수십 가지라고 한다. 한국어의 눈을 에스키모어로 옮긴다면 그 중 무슨 단어를 골라야 할지 어려울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내년쯤 번역서와 번역비평서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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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른생활 > 2009년 6월29일 고도원님 강연

2009년 6월29일 고도원님 강연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제 인생의 책   

저는 5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그 전에는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15년 동안 근무했는데 처음엔 사회부에 있다가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평민당 총재를 하시던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것도 그때입니다.  

이분에겐 인생의 책이 있습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란 책입니다. 세 권으로 된 아주 굵은 책이에요. 이분이 어느날 젊은 기자들하고 차를 마시면서 당신의 인생의 책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그 이야길 꺼냈는데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재미가 없잖아요. 같이 읽은 사람이 있어야 이야길 주거니 받거니 하죠. 그런데 저는 이미 그 책을 15번 이상 읽은 사람이었어요. 어떤 구절은 제가 암송해요.  

왜? 그게 제 인생의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게 제 인생의 책이었느냐?  

제 아버님은 시골 교회 목사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이렇게 네 권을 떡 던져주시며 "밑줄 그어 놓아" 하시는 겁니다. 그 다음날 회초리로 때리셨어요. 저의 형님은 그날 가출했습니다. 원망했어요. 그런데 저는 가출까진 안 했어요. 맞으면서 엉터리로 줄을 다 그어 놓았습니다. 그 책 네 권이 지금 제 서재 가운데에 보물처럼 꽂혀 있어요. 최고의 유산입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읽었는데 대학 시절 연세춘추 기자를 하면서 다시 펼치니까 그때 엉터리로 그었던 부분에서 소리가 나는 거예요. 나중에 기자 생활을 하니 세상이 보여. <역사의 연구>의 테마에 퇴각(withdraw)과 복귀(return)가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은퇴하고 영국으로 떠났을 때 저는 이분은 반드시 리턴하리라, 아놀드 토인비의 논법을 가지고 예언했어요.   

아무튼 그날 인생의 책을 두고 두 시간, 세 시간 이야길 했어요. 전 이게 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이 어느 날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절 청와대로 불렀어요. 물으시길 청와대에서 일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제가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있다마다요라고 대답했죠. 제가 여쭸습니다. 어떤 자립니까? 대통령 연설문 쓰는 자립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제 꿈이었습니다. 글쟁이로서 죽기 전에 대통령 연설문을 꼭 쓰고 싶었어요. 근데 그 자리에 와서 일을 하라니. 그 자리라면 9급이라도 하겠습니다.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책이 있으십니까?  

 

2. 아버님이 물려주신 책들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부부도 싸움을 많이 합니다. 궁핍하면 별 수 없지요. 여러 유형의 싸움이 있는데 책 갖고도 많이 싸우셨습니다.  

제 아버님이 돌아오실 때 옆구리에 책 한 권을 끼고 돌아오십니다. 아주 행복해 하세요. 하지만 제 어머님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입니다. 어머님이 책을 보시고 이걸 해 말어 하시다가 "또 책을 사셨어요!" 합니다. 아버님의 행복한 표정, 거룩한 목사님의 얼굴은 사라지고 아내 앞에서 비굴한 표정이 됩니다. 오늘은 뭐라고 달래나. 정말 미치겠다. 오늘 이 국면을 어떻게 모면하나. 

제가 아들이니 아버님 말씀하시는 걸 흉내내 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거여. 어떻게 하자는거여? 목사가 책을 읽어야 설교 준비라도 하지!" 

그러면 저희 어머님도 안 집니다. 한 옥타브 목소리가 올라가서 "내가 한 달 내내 고구마 이삭 주어야 당신 책 한 권 값이 안 된단 말이여." 합니다. 

그런 싸움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님이 제게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네 아버지랑 못 살겠다고. 저는 제 아버지가 아주 못된 사람으로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전 어머님 편이었어요. 돈 벌고 싶었어요. 어머님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책만 보면 울분이 생겼습니다. 제가 또 매를 맞으며 책을 읽었잖아요? 

그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게 엄청난 양의 책을 물려주고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책이라고 하잖아요? 제게 책은 책이 아닙니다. 특히 아버님이 물려주신 책은 책이 아니에요. 혹시 여러분의 부친께서 평생 피리 하나 불고 가셨으면 그 피리가 그냥 피립니까? 시중에 나도는 피리예요? 그분의 영혼입니다. 그분의 눈물입니다. 그분의 전 재산입니다. 그분의 비굴함입니다. 그분의 부부싸움의 결산이에요. 

가난한 목사였던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나라에서 당대 최고의 장서를 자랑하는 목사였습니다. 저는 아버지 책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거 끌고 다니다 제 아내랑 여러 번 다투었습니다. 책이 산더미입니다.  

 

3. 아침편지의 시작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정식 휴가를 딱 사흘 받아 보았습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에요.   

한때 오른쪽 손끝만 겨우 감각이 남아 있고 나머지는 마비된 상태인 적도 있었습니다. 고개조차 못 돌려요. 겨우 잠들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합니다. 글쟁이들이 예민합니다. 토씨 하나에 번쩍번쩍 깨는 게 글쟁이예요. 아침에 못 일어나요. 식은 땀이 즐비해. 정말 흥건한 거예요. 그래도 새벽 6시면 벌떡 일어나 나가야 합니다. 퇴근 예정 시간이란 건 없었습니다. 

정말 죽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삿짐 챙길 때 제 책상에 약봉지가 산더미예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약을 다 먹었냐고 놀랍디다. 그때는 단 세 시간만 정신이 명징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약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의 시간이 왔을 때 아버님이 보시던 책에서 밑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전율이 왔습니다. 전선에 감전된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셨는데 당신이 그어 놓은 밑줄에서 당신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노신의 <고향에서 본 희망> 속의 구절입니다. 

내가 아침편지를 시작하면서 어떤 구절로 시작할까? 내가 그어 놓은  밑줄? 그게 아니고 아버님이 그어 놓으신 그 밑줄로 시작한 겁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제 인생의 최고 모토가 된 이 글은 저희 아버님이 주신 글이에요. 저는 이런 씨앗들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에서 발견했어요.  

 

4. <꿈 너머 꿈>

제가 카이스트에서 강연을 하는데 한 학생에게 "꿈이 뭐예요?" 라고 물었더니 "과학자가 되는 겁니다"라고 대답해요. "과학자가 돼서 뭐하시게요?" 라고 하니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다른 학생에게 또 물었습니다. "꿈이 뭐예요?" "교수 되고 작가 되는 것입니다." "교수, 작가 돼서 뭐하시게요?" 대답을 못합니다. 또 다른 남학생한테 물어 봤어요. 그 학생이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저는 빌 게이츠처럼 대박 쳐서 돈을 버는 겁니다"라고 합니다. "돈을 벌어서 뭐하시게요?" 했더니 "저 혼자 편하게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라는 답을 하더군요.  

엉겁결에 본심이 나온 겁니다. 제 아들도 과학고 다니지만 애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 의사예요. 큰일 났습니다. 너 왜 의사 될래, 물어 보면 돈 많이 벌잖아요, 안정적이잖아요, 여자에게 인기 있잖아요, 이럽니다.   

근데 그 말을 듣자마자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왔어요. 그날 15분 즉석 웅변을 했습니다. 오늘은 2분으로 줄여 메시지만 전하겠습니다. 목소리 낮춰서 할게요. 그날은 귀청이 떨어져라 고함을 지르면서 했습니다.  

이 세 학생의 꿈에 이 학생들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프게도, 정말 안타깝게도, 이 꿈이 이루어진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꿈 너머 꿈'이 없습니다. 고함을 질렀어요. 제 책 <꿈 너머 꿈>은 거기서 나온 겁니다.  

우리 시대에 몇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한 대통령은 중학교 2학년 때 자기 책상머리에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잘 적어 놓았습니다. 노력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겐 대통령이 된 다음 무엇을 하겠다는 '꿈 너머 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IMF라는 환란을 맞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겠습니다는 젊은이가 꿀 꿈이 아닙니다. 그 꿈이 이루어질수록 많은 사람들한테 재앙이 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좋은 꿈이냐? 한 사람의 꿈이 한 사람의 꿈으로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꿈이 한 사람의 행복, 한 사람의 성공에 머물지 않는 거예요. 한 사람의 꿈이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의 꿈으로 자라나고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게 좋은 꿈이에요.  

꿈을 가진 사람, 꿈을 이룬 사람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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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른생활 > 2009년6월15일 박경철님 강연

2009년 6월15일 박경철님 강연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글은 참 잘쓰시는데 말도 되실까?

박경철님은 말투에 경상도 억양이 조금 있습니다. 글로만 접하시는 분들은 모르는 부분이겠죠^^  

 

2. 박경철님은 주식에 대한 책도 쓰셨는데 그럼 돈은 얼마나 버셨을까?   

폭삭 망하셨답니다. 한때 마이너스 90%라는 엽기적인 수익률을 내신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83년 의대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이 의사로서 싹수가 노랗다는 걸 깨달으셨답니다. 그리고 주식에 눈을 떠 미국 원서까지 구입해 가며 최신 이론을 섭렵하고 기술적 투자를 했는데 실제 투자에선 연전연패. 실패한 이유는 기술적 투자를 위해선 기업의 회계장부가 믿을 만하고 축적된 데이터가 있어야 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사정이 그렇지 못했답니다. 

 

3. 주식 투자의 왕도(王道)는 있는가? 

먼저 명심해야 될 거 한 가지. 주가 예측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 

메릴린치에서 일하는 투자분석가들을 대상으로 종목 선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기준이 뭐냐고 설문조사를 10년마다 했는데 결과를 보면 80년대는 자기자본이익률 등등, 90년대는 유보율 등등이었답니다. 평가 기준 자체가 이렇게 바뀌는데 예측이 맞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개인투자자는 좋은 펀드에 가입하거나 미래에 고성장할 기업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4. 좋은 펀드는? 

좋은 펀드는 1) 자기 재산을 펀드에 넣은 매니저가 운용하고 2) 폐쇄형이어야 한답니다. 

펀드매니저가 자신의 재산을 펀드에 넣었다면 펀드가 망하면 자기도 망하는 셈이니 아주 열심히 투자를 하겠죠. 첫 번째 조건은 그렇게 죽기 살기로 운영되는 펀드여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조건, 펀드가 폐쇄형이어야 하는 이유는 상승장일 때 펀드에 가입하고 하락장일 때 펀드를 환매하는 일반투자자들의 행태와 관계됩니다. 주가가 하락해 저점일 때 주식을 사서 주가가 고점 근처에 갔을 때 팔아야 수익이 극대화됩니다. 하지만 개방형 펀드의 경우 주가가 한참 막 상승할 때 일반투자자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펀드를 가입하고 펀드매니저는 이제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하면서도 펀드 규약상 펀드에 들어온 돈으로 계속 비싸진 주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폭락하면 일반투자자들은 환매를 하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는 지금 팔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매 요구에 응하기 위해 주식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개방형 펀드는 큰 수익을 내기 힘듭니다. 폐쇄형 펀드가 답입니다.   

 

5. 앞으로 고성장을 할 기업이란? 

그런데 우리나라엔 폐쇄형 펀드가 별로 없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해볼만한 다른 방법은 앞으로 고성장할 기업을 예측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90년대에 한국이동통신에 투자했다면 그후 500배의 수익을, 다음이 처음 나왔을 때 투자했다면 그후 1000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고성장할 기업을 예측 투자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반드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게 됩니다. 6,70년대 반도체, 80년대 컴퓨터, 90년대 IT 2000년대의 생명공학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어떤 산업이 뜨게 될 것인가 부단한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10대 국책산업을 아십니까? 또 그 중에서 미국, 중국, 일본의 국책산업과 겹치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2차전지, 대체에너지, 바이오입니다. 우리는 정보의 바다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이런 정보를 경시합니다. 낯설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선의를 가지고 대하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호의를 가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투자가 중요합니다.  

 

이상 강의를 정리해 보았고 아래는 질의응답니다.  

 

질문1. 상반기에 84조의 재정을 조기집행했고 5만원권을 발행한다고 한다.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 같은가? 

재정이 고갈되어 재정확보를 위해 간접세로 세수 확대를 시도할 것 같다. 사회갈등이 우려된다. 5만원권은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질문2. 선생님 책에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손자를 솥에 삶은 일화가 있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 할머니는 나중에 자살하셨다. 평균 수명이 증가해서 50세에 앞으로 50년 더 살 것을 걱정해야 하는 고령화 사회가 올 것이다. 나나 여러분이나 치매에 걸리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대책이 시급하다.   

 

질문3. 쑹훙빙의 <화폐전쟁>을 읽었는데 믿을만한 내용인가? 

믿지마라. 기발하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개인이 시스템을 이길 수는 없다. 개인의 정보력에도 한계가 있다. 개인의 창의력이 제대로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비합리적인 결론을 가져올 수가 있다.  

 

질문4. 최근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가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한 화두다. 사회의 흐름이 생명공학 쪽으로 바뀐 것인데 이런 집단적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 인간의 몸에 대해 세포 단위, 분자 단위까지 가장 정확하게 공부한 인력이 쏟아져 나올 텐데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답이 여기서 나올 것이다. 또 다른 삼성전자가 이 분야에서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 의대가 배출하는 인력의 수준은 미국보다 높다.    

60년대 섬유공학 70년대 화공 80년대 물리, 전자공학이 맡았던 시대적 역할을 생명공학이 대신할 것이다.  

 

질문5.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진부함은 악이다. 진부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호의를 가져라.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행사 준비하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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