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도 그걸 잘 알았지만 어쩐지남편과 마주하기 두려워졌다.
잠을 설친 그녀는 날이 밝자마자 옥상으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녀는 화분 앞에 앉아서 어제와 조금씩 달라진 식물들에게 일일이 눈길을 주었다. 전날보다 잎이 살짝 누레졌거나 조금 자랐거나 꽃송이가 벌어진 식물이 위로가 되던때가 있었다. 사소하지만 꾸준한 변화는 그녀에게 시간이평화롭게 흐른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자랄 것은 자라고 시들 것은 서서히 시들어갔다. 이제 그녀는 자라고 시들고 열매 맺고 죽는 것이 모두 제각각임을, 무질서가 삶의 유일한질서임을 알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이 나빠서 궂은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생각.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은 경우에나 겨우 궂은일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궂은일이 생겼다. 물을 다 주고 한앉아 있다가 내려가려고 보니 옥상의 철문이 열리지 않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