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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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지 않는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잔뜩 쏟아낼 것 처럼 흐릿하고 축축하니 무겁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찌르는 햇빛이 정수리를 굽는다.  요즘 계속 이런 식이다. 여름에 이렇게나 비가 없었던 적이 있었나. 여름하면 무더위와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소나기가 반복되는 고단한 날씨였는데, 덥고 꿉꿉한 공기가 계속 머리를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은 사람을 더욱 더 지치게 한다. 매일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지고 나르는 느낌이다.

 

 

오늘 오후에는 도서관에 갔다. 하늘이고 물이고 풍경이고 모두 회색빛이라 그리(전혀) 낭만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지간에 이 곳에선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 이런 말을 할 때, 그러니까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언어화된 문장을 발음하는 순간에는 그래도 어찌됐든 약간의 낭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건물 담벼락이나 아스팔트 도로보다야 훨씬 나은 풍경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 미야모토 테루의  『반딧불 강』을 읽었다.

 

 책 안에는 「흙탕물 강」과 표제작인 「반딧불 강」 두가지 작품이 들어있다. 각각 여덟 살, 열네 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아마도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다고 느껴졌다.

 「흙탕물 강」에선 전쟁 직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조금씩 다시 삶을 이루어가는 평범한 일본 소시민의 삶이 잘 표현되었다. 일본의 옛정취 같은 것을 내가 알리 없는데도 작가의 문장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마을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이 하나 흐르고 양쪽으로 집이 마주보고 있고 난간이 있고 양쪽을 잇는 다리가 있고 그 아래로 간혹 배들이 떠다닌다. 아직까지 말이 끄는 수레가 다니고, 그 옆으로 자동차도 지나간다. 외국 영화를 보면 컨테이너에서 사는 사람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 당시 일본에는 집이 없어 배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여덟 살짜리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집 앞 강가에 이사온 뱃집 아들 기이치와 친구가 된다. 뱃집에 드나들며 기이치의 누나인 긴코와도 가까워지게 되는데, 기이치의 엄마는 옆방에서 갸냘픈 목소리만 들릴 뿐 보이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노부오는 기이치의 엄마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무언가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느끼게 된다.

 어린 소년이 기이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하는 과정이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대단해서, 내 안으로 자꾸만 들어오는 감정들을 소화하느라 책을 읽다 가슴에 손을 얹고 멍하니 있게 되곤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반딧불 강」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반딧불 강」은 열네 살로 이제 곧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사춘기의 소년 다쓰오가 주인공이다. 큰 사업가였던 아버지 시게타쓰는 아이를 갖지 못했던 본처를 버리고 쉰이 넘은 나이에 다쓰오의 어머니인 치요와 재혼했다. 치요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어려워지고 시게타쓰가 지병으로 쓰러진 후 얼마안가 죽게 되면서 치요는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해진다. 
  긴조 할아버지는 4월에 큰 눈이 오면 그 해엔 엄청난 반딧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드디어 4월에 큰 눈이 왔다. 다쓰오와 다쓰오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남몰래 좋아하고 있는 히데코, 치요와 긴조 할아버지 이렇게 네 사람은 날을 정해 반딧불을 보러 간다.

  시게타쓰와 치요가 처음으로 같이 여행하던 날의 묘사나, 시게타쓰가 죽은 후 그의 전처가 와서 다쓰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운명에 순응하며 그렇게 순하게 힘든 시절을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생이란 얼마나 알 수 없고 허무한 것인지. 그럼에도 그 허무한 것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음까지 보듬는 듯한 이야기이다. 잔잔하고 단단하면서 무척 따뜻하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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