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성애의 쾌락뒤에 남겨진 지저분한 흔적과 상흔의 기억을 바라보고 있는 이야기들. 호텔 로열이라는 일본의 소위 러브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일곱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장소를 드나드는 무작위의 사람들에 대한 수평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라는 예상과는 달리 호텔이 건물로서 버텨온 시간을 뒤에서부터 거스르는 수직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들이 서로서로 슬그머니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제 더이상 사람이 찾지 않는, 폐허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낡아버린 건물의 모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건물이 올라가기 전, 야심만만한 한 남자가 부푼 꿈을 안고 호텔 부지를 둘러보는 장면에서 마지막 단편이 끝을 맺는다. 거꾸로 흘러가는 구성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결국 어떻게 되었나, 하는 결과가 아닌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원인에 좀더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한다. 허물어져가는 건물과 권태로운 등장인물들이 실상 모든것의 출발점에선 얼마나 희망에 가득차 있었는가를 지켜보는 일은 무척 서글프기도 하면서 묘하게 감동적이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별을 보고 있었어>는 다른 여섯개의 이야기와는 살짝 다른 느낌이 있다. 모두 다른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 호텔의 흥망성쇠라는 커다란 줄기를 놓지 않고 있었는데, <별을 보고 있었어>는 좀 더 개인의 내밀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호텔이 한창 활발하게 운영중이던 때, 그러니까 호텔을 구심점으로 가장 많은 인물들이 모여 있던 시기로 호텔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이루기는 하지만 나에게 이 이야기는 조금 더 독립적으로 보인다. 호텔의 커다란 그림자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고나 할까. 호텔이 막상 전혀 등장하지 않는 ˝쌤˝보다도 더 그렇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미코가 일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 말고 호텔 로얄이 갖는 의미는 크게 없어 보인다. 그런면에서 호텔의 시간적 흐름과 같이하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뒤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이 작품이 작가 스스로에게는 성에 대한 묘사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글쎄 성에 대한 묘사는 좀 약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른 것보다 나에게 이 작품은 배경에 대한 묘사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표현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숨소리가 느껴질 듯이 생생하다. 인생에 어떤 원망도 계산도 하지 않는 순수함과 하늘아래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저 편히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미코의 인생 전체에 걸친 피로감이 일부러 길을 잃은 공空의 한가운데에 조용히 차오르는 것을 바로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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