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누가 듣는가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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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의 노래는 누가 듣는가!

이 책을 읽은 지금,
나는 누군가의 슬프고 애잔한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만 같다.
그만큼 가슴속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소설이 아닌 수필을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몰래
감상문을 쓰는 것 같아 약간의 위화감이 든다.
그래도 이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선
서평을 써야 한다.


 

노래 시작했어요?
집에 들어가 보면 아비는 술병을 앞에 놓고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댔다.
물론 그 노래는 싸가지 없는 마누라와
애새끼를 작신 조지기도 조졌고,
그래서 이제 기분이 좋아졌다는 표시였고,
따라서 공습은 지나갔다는
경보해제 사이렌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그 노래 소리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24페이지 中 

 

 

'노래'라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는 아니다.
심리적 안도감을 위한 안식처로써
'노래'라는 것을 사용한 것이다.
노래 그 자체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남에게는 그저 딴따라로 보일 수도 있다.
그게 모든 것의 시발점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가슴이 답답하면 나는 자주 봉은사 뒷산에 올랐다. 바위에 걸터 앉아 오장을 후벼 파듯 악을 썼고,
그러다간 별빛을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동요든 뭐든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노래를
무턱대고 한동안 불러젖히면,
그제야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

-27페이지 中


주인공 광철이는
절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생활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 광철의 일탈적인 행동들이
그럴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일 만큼
그를 안타깝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곁에는 단짝 친구 '개둥이'를 빼면 아무도 없었다.
말을 더듬거린다는 이유로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그걸 보고 있자면,
작품의 타인들이 야속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절로 나는 인간에 자체에 대한 회의감에 젖곤 했다. 인간의 천성에는 양심뿐만 아니라
비겁함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예술이니 고고한 척 떠들어도
폭력에 속절없이 굴종하거나,
자기 일이 아니라면
귀찮다고 나서지 않는
한심한 품성이
인간의 본질이려니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99페이지 中

 

나는 죽 외로웠고,
앞으로도 여전히 외로울 것 같았다.

-108페이지 中


술에 찌들어 사는
광철이의 일대기는 꽤 폭력적이다.
여자를 찾아 끊임없이 갈구하고 탐닉한다.
그 일련의 일탈들이 수위가 높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광철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고단함까지
전부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도 더러 나오지만,
그들의 고단함이 그걸 끌고 안는다.

개둥이의 삶도 평탄하지 않다.
오히려 광철이보다
더 설상가상의 위기에 놓인 게 개둥이였다.
줏대 없어 보이는 캐릭터로 보이긴 했으나,
왠지 걱정이 되는 그런 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첩이었다는 이유로
자존감이 낮았던 개둥이.
그래서 그는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던 게 아닐까 싶다.

광철이 어째서 아버지에게 맞고 자라야 했으며,
어머니의 정신이상적 행동으로
자신이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었는지,
마지막 챕터에 그 모든 것이 나온다.
가장 씁쓸하고 안타까우며
동적인 부분이자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과거 회상을 하는 형식의 문체라
결말에 어떻게 될지는 예상이 갔으나,
그런 식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노래는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듣는 것일까?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노래는 마음이 다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으며,
잠시나마 그들을 안도하게 해주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마음이 다치지 않았어도,
고민이나 복잡한 일이 있는 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차분하게 있으면
분명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노래'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바로 가장 소중한 것이 작품에서 말하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그 소중한 것이 모종의 이유로 강탈당하거나
제약되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삐뚤어지며
얼마나 엇나갈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삶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이 책은 보여주었다.


 

그이는 남산에 올라갔다. 산머리 부근의 바위에 걸터앉더니 기타를 꺼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듯 그이는 줄을 고르는 것도 한참이었다. 얼마 만에 쳐보는 걸까? 기타는 자주 끊겼다. 그간의 술 담배로 기관지도 상했는지 목소리도 탁하고 갈라져 나왔다. 한동안 용을 쓰던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그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해서 한참을 멀거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이는 일어서면서 기타를 바위에 들어 메쳤다. 양손을 흔들거리며 허탈한 듯 걸어 내려가는 그이의 뒷모습은 오래도록 내 눈에 머물렀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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