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발이 둘 달린 우리보다 확실히 개는 더 많이 세상을 딛고 다닐 것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니는 우리보다 개야말로 확실히
납죽 엎드린 자세로 세상을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보다 몇 백배 더 뛰어난 후각으로는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고
옥수수알이 영글고 바닷물이 졸아드는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을 것이고
안테나 같은 그 수염들로는 사람의 슬픔이 고통으로 억눌려지는
그 세밀한 압력과 방향마저도 분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개의 눈을 통해서 사람의 일을 더 촘촘히 알게 되었다.
고유한 말글을 가졌고 키가 껑충 큰 우리들은 그 능력으로 고작
상대팡 티셔츠 왼쪽 가슴께에 조그맣게 수놓아진 말탄 폴로남자의 모양이
오리지널인지 모조인지를 분간하는데나 쓰고 있다.
그 기운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고 잃지 말아야 할 것으로 잃고는
발을 동동 굴리며 슬퍼한다.

사람의 살이에 필요한 것이 발바닥의 단단한 발 굳은살만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무엇을 단단히 채워가고 있는가.
무엇으로 든든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말이다.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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