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폐경 - 2005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누군가의 폐경을 지켜본 적 있는가.
어미의 폐경은 지켜보기 어렵다.
자식이 모성을 하나의 여성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가 그만큼씩이나 태연자약 만물을 헤아릴 때쯤이면 어미는 이미 늙어있다.

아내의 폐경쯤이라면 내가 철도 들었을 때고, 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니
지켜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초산도 안해본 젊은 아내이긴 해도, 내 남편을 떠올렸을 때
아내의 폐경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겪는 것이라해야 마땅한 듯 싶다.
나이든 부부가 함께 서서히 번식력을 잃어가면서 풍화되어 가는 것.
그것은 이를테면 아내가 화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누군가의 폐경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수상작 김훈의 <언니의 폐경> 속 자매들도 이러저러 사정이 들어맞아 그렇지
자매간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한 여자의 폐경을 고요히, 소소하게
지켜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게 나는 제일 가슴 시렸다.
누구도 한 여자의 폐경을 지켜봐주지 않는다.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기도 한데, 게다가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기도 한다.
공부 잘하는 딸도, 노련한 경영인 남편도, 생글거리는 백화점 점원마저도
우아한 노부인의 품위와 체면을 잃지 말아주기를 바라고들 있는 것이다.

더욱 딱한 것은 본인 자신마저도, 흰머리나 주름살처럼 서서히 물들지 않고,
예고없는 생리혈처럼 맞닥뜨리듯 홧홧하게 닥쳐온 자신의 폐경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분해하며 서글퍼하고 막연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훈이 그런 그녀들을 시크한 듯 표시 안나게, 그러면서 뭉근하게
다른 이들도 다같이 볼 수 있도록 나서서 지켜봐주어 내가 다 고맙다.
특히 그 언니가 목 사례 걸린 손주를 노련하게 뒤집어 톡톡 살려낼 때는
그간 언니를 외롭게 해온 모든 것들에 대해 득의양양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언니는, 늙어가고, 예민해지고, 또 무던해지고, 감격해하는 언니들은
응급처치술 따위 모른다 하더라도 늘 득의양양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2008.05.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