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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평점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어쩌고가 생각난다.
물질 그 자체가 '랑그'라면 그것의 발화, 즉 표현을 '빠롤'이라 한다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되었을 그 수업을 나는
'랑그'는 진실이고 본질이며 '빠롤'은 상대적이고 허구이고 작위라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마침 이 책의 표현을 인용해 다시금 이해해보자.
'장미'라는 실체를 '장미'(rose, 기타 제가끔의 언어로)라 부르지 않아도
그 도도하면서도 농염하고 끈질긴 꽃 자체의 향만은 변함이 없다?
..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때때로, 아니 언제나 일정 부분은 빠롤이 랑그를 지배하기도 한다.
적어도 동일 언어 안에서라는 전제 하에서 보자면,
장미는 장미라 불렸기에, 지렁이가 지렁이라 불렸기에,
내가 미숙이나 정희가 아니라 '아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기에
장미는 장미로써의 메타포와 실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담컨데 적어도 '아란'이라는 빠롤은 그러하다. '나'라는 랑그에 관여한다.
괜히 복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의 빠롤을 말하고자 함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빠롤은, 압도적이며 운명적인 그것은,
바로 '희곡'이라는 성질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대 위에서 독백하고 키스하고 칼 맞고 죽었다 깨어나야
그것은 온전해지는 것만 같다.
단 한줄로 말해, 글로 읽는 세잌스피어는 별 감흥 없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소리내어 줄리엣으로 읽고, 유모로 읽고,
티볼트와 신부님으로 분해 읽어야만 하는 까닭에 정신없이 바빴다.
원작 그대로의 연극이 (수익성 타진에는 어떨지 몰라도) 오르길 바란다.
(2008.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