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어쩜 그렇게 담담하게 그냥 '홍어'일 수 있을까?
존 스타인벡도 그냥 '포도', 그냥 '복숭아' 일 수는 없었다.
수다를 떨고 싶지는 않지만 상황이 이러저러하다고 정밀히 묘사하던 그도
참고 참은 끝에 '분노의 포도'라고 책 제목을 짓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는, 마을에서 쫓겨나듯한 남편을 소리내 원망조차 못하며
다른 데서 낳아온 남편의 아이를 마치 점심엔 수제비를 먹어야겠구나, 하듯이
무심하고 희끄무레하게 받아들인 소복 차림의 '어머니'처럼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게 그냥 '홍어'라고 제목 붙일 수 있었을까?

하마터면 책꽂이에서 얻어걸리지도 못할 이 딱딱하고 비릿한 건어물 안에는
꼭대기로 치달아불어서 연 띄우기 좋은 강둑 바람과
대들보를 주저앉힐만치 밤새 처연하게 내린 강설 바람과
삯바느질에 지친 어머니를 까무룩 졸게할 덜큰한 한낮 바람과
보리밥 냄새, 오줌기저귀 냄새, 씀바귀 냄새 등이 세월과 함께 말라
도무지 아무리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불려 보아도 씹힐 것 같지 않게
제아무리 설핏한 감정으로 책장을 넘기려 해도 질기게 매달려졌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도무지 먹을 것인지, 못 먹을 것인지 분간을 채 하기도 전에
어머니든 나든, 옆집 아저씨든 그 어떤 사람이든 간에 결국에는
입 안에 넣고 오래도록 불리고 오늘 안에 안되면 내일 또 핥고
올 가을에 안되면 내년 봄까지 또 해보고 하여 기어이 삼키고 마는
덤덤히 고통을 삼켜내는 사람살이의 질김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도저히 그 켜켜이 질긴 홍어 한 마리를 겨우 먹고선
그처럼 덤덤하게 '좋은 책 한 권 잘 읽었다'라고 말 못하겠다.
그만 주절주절 감상이 늘어지고야 만 것이다.

(20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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