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치기 어려운 공을 그냥 흘려 보내는 일은 정작 쉽지 않다.
홍적세 지구 도시에서 생존할 만큼의 에너지보다 더 가졌기 때문이리라.
잉여 근력과 차고 넘치는 규범과 에티켓들, 관념들, 피하지방들 때문에
사실 허리가 끊어져라 신기록을 갱신해 해는 일만큼 또는 그런 일보다
'노히트 노런'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는 잘 안다.

이제 그런 슈퍼한 일은 진짜로 슈퍼맨이나 할 수 있는 일이 돼버렸다.

우리는 밤새 일하고도 다음날 BB크림으로 표정을 상큼하게 만든 뒤
클라이언트 고명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기억해뒀다 발랄하게 축하하거나
정해진 시간내 더 많은 업체를 방문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동선을 짜거나
내 안의 잠재력을 세 배 또는 세 제곱이나 증폭시킨 뛰어난 내가 되어서
연봉을 올리고 명문가 예식날이 아니어도 스테이크를 사먹을 수 있게 해주는
울트라 초긍정성을 전도하는 처세술 책을 한자리에서 읽어낼 수 있거나
하다 못해 굶주린 남학생 셋에게 끓여먹을 라면이 두 개 밖에 없을 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양을 늘일 수 있는 지에 대해서나 알고 있을 뿐이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는 그런 슈퍼한 일은
좀처럼 해낼래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삼미 야구선수들과 그의 팬클럽과 또 그걸 써낸 작가가
'슈퍼스타즈'(슈퍼스타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아니겠는가.

(20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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