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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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쌀을 살 돈이 없을 때 어째 어째 무슨 수로 술을 마신다.
아이는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되면 같은 반 아이들의 밥을 얻어먹는다.

어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거나 너무 늦게 해서 일을 크게 만드는데
아이는 고맙단 인사를 깜빡 잊었다 하더라도 금방 정신을 차려 머리를 조아린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자장면을 자주 사주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지만
아이는 가진 게 맨밥 뿐일 때 맛있는 치약이라도 비벼먹을 생각을 한다.

그렇게 어른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고 증폭시킨 뒤, 사라진다.
남은 아이는 쌀을 씻고 생리를 하며 한뼘 밭에 씨앗을 심는다.

생명을 얻는 기억이 어른보다는 더 잘 떠오르기 때문일까?
갓 태어나 젖꼭지를 빨던 본능이 어른보다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더 풍만한 생명력을 가진 아이 '순지'가 끓여내는 밥은, 그래서
희망을 상상하는 데 허약한 어른들을 위한 공갈 젖꼭지 같은 것이다.

(20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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