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지겨움이란 말 만큼이나 오도 가도 못할 것이 있을까.
지긋지긋하게 하고 또 하고 보고 또 보아야 하는 일을
정작 내벗어던지면 그 떄는 지겨움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맞지 않고
그렇다고 그 하고 또 하고 보고 또 보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여 즐긴다면
그 또한 지겨움은 아니므로 다르게 써야 옳다.

그 오도가도 못할 절박함으로 참 밥을 오래도 먹고들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받은 돈으로 자전거도 사고 망치도 사고 새 지우개도 산다.

많은 여성팬들이 48년생 반영강님 글쟁이를 사모하다 못해
가엽게 여기고 모성 본능을 품는 까닭은 바로 이 절박함을 연민해서가 아닐까.

나는 밥이 싫소! 하며 핸드폰을 내던지고 카우보이 부츠를 꿰차고 떠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밥이 너무 좋소! 하며 밥이 내게 준 풍요와 영광을 직간접적으로 찬미 또는
과시하는 것도 아닌 오도 가도 못할 그 밥상머리에서 또 밥알을 씹고 국을 떠 먹는
그 처연한 모습에서 쌀을 씻어본 여자는 그 여자대로, 데모를 해보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본 청년은 또 그대로, 전립선염을 몰래 앓는 상무님은 또 그대로
김훈을 사랑하고 격려하며 그가 잘 살아남기를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김훈이 쓰러지면 나도 쓰러질 것 같아서, 늘 그랬듯 첨단과 광속과 폭발만이 살아남아
"역시 그렇구나. 역시 안되는 게 맞았구나" 하며 헤어날 수 없는 비탄에 빠지고
또 오롯이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아서
나도 김훈의 글들에게 말없이 응원을 보내는 한 축이다.

글쓰기란 노동을 나처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산중 칡뿌리나 시상의 포도주, 영감의 만찬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나같이 밥 먹어 근력을 만들고 뇌와 어깨죽지의 근육을 놀려
문장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쓰기라는 노동에
응전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 선배 노동자에게 감사와 감격의 인사를 보낸다.

(200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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