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연꽃의 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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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큼만 가지고 가진 것만큼만 쓰던 시절이 있었다.
싸움도 슬픔도 두려움도 없던 깨끗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결핍을 알게 되었다.
필요한데 갖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이고 가여움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심봉사의 젖동냥이 시작되었다.
후에 청이의 예기로 보아 어쩌면 심학도는 젖을 얻는 대신
노랫자락을 들려주거나 성접대로써 거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선땅 복사골에서도 거래라는 것이 생겨나자
그 다음부터는 못 팔 것이 없었다.
쌀로 바꿔준다하면 딸의 목숨도, 이름도, 몽뚱아리도 팔았다.

청이는 그렇게 젖내기서부터 거래를 깨닫게 되었다.
그네는 돈이 안되는 이름은 그때 그때 적당히 고쳤고
돈이 되는 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팔았다.

힘이 세고 목소리가 크다 뿐이지 양물 한토막에 쩔쩔매는 사내들도
결국은 그 돈 되는 여자 몸 안에서 난 것을 알았다.
어느 나라 어느 난중 어느 협박에도 그네는, 하여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네는 여자 몸 안에서 난 것이라면
사내고 아기고 할 것없이 어엿비 여겼다.

그중에서도 거래할 밑천이 없는 천애고아들을 거두어 키웠다.
근대화의 상징, 경제개념의 기본인 'give & take'의 순환고리가
끊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반 개를 내주고 반 개를 받겠다고 아둥대는 우리 잡배들이
관음보살님의 그 굽어살피는 시야를 어찌 가늠하랴.
뿌리에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피는 연꽃의 원대함이다.
각자 마음 속 오그라붙은 '연민'이란 이름의 관음보살이 이와 같다.

(200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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