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이라고 이름 붙이고 나도 내 인생을 고뇌할 수 있다면.
부끄럽고 참담한 고백의 중간 중간, 알다시피 이건 소설입니다,
가공된 허구의 이야기죠, 감안하세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공지문을 믿고 더욱 더 격렬하게 슬퍼지고 부끄러워지고
주저앉아지는 감정들을 일부로 극대화해도 된다면,
그 남사스러운 탄로 끝에도 나는 낯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있겠지.

그건 소설가의 특권이자 동경해마지 않는 면책권이다.
누구라고 세련되게만 훑어지지 않는 인생사를
조근조근 정리하고도 너무 부끄러울 필요없는 권리.
죽어가던 메리와 희망을 쥐어짜던 봉순이 언니를 외면했던 과거사가
소설이 되고, 19쇄를 찍어내고, 방송국의 추천도서가 되어
베스트셀링을 기록하고도 작가는 참담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 참담한 제스츄어마저도 상품이 되니 이 얼마나 부럽는가 말이다.

봉순이 언니에게, 내가 다 미안하다.
인류가 미안해해야 한다.

지금도 사람에게 미안한 일들이 나로부터 인류로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것의 어쩔 수 없음을 어찌하면 좋을까.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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