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놀이터 모래가 버적버적 박히 고리땡 바지 위에 신데렐라 책을 올려 놓고 읽을 땐
나도 나중에 브레지어를 할 때쯤이면 생의 질적 변화가 다가오리라 믿었고 소망했다.

그날 그날의 에너지를 닥닥 긁어 쓰기와 말하기에 쏟아붓던,
그리고도 다음날 다시 읽고 듣고 써도 마르지 않던 감성범람의 열여덟살엔
나는 은희경을 읽고 내 생의 체계적인 양적 축적을 시작해야겠다 마음 먹은 것 같다.

체계적이래야 대학시절, 직장시절 가끔씩 황활한 성취감에 사로잡혀
나의 소명은 전공분야, 전문업무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순간에도
은희경과 소설책 읽기를 본능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정도?

그녀의 글이 누구라도 소설가가 되겠군, 할 정도로 성찰이나 기교가 얕아서가 아니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어디 발생확률이 높아서 다들 동경하며 살겠는가.
다만 누구도 덜하고 더하고 할 것 없이 수억만년전부터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자라면
글의 주인공이 되고 그 소재의 관찰자가 되고 모사자, 변사가 될 수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과장된 고독이나 돈오의 잔소리가 없고, 허무를 부르짓거나 희열에 대해 시크한 척 굴지 않는다.
잘난 체도 방관도 없다. 도덕강박증 환자도 속물도 아니다.
그래서 나도 꿈꾸게 된다. 희망하여 몇 자 진척해본다.
아홉번째 그녀의 책에서 희망적 단서는 더욱 평화롭게 느껴진다.
그 단서들은 또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용서, 공감과 불완정성을 감싸는
포용의 레시피이지도 않을까.

(2008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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