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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사람 노릇 못하게 하는 세상에 갇힌 우리
집 근처 구립 도서관에 예약 도서를 찾으러 갔다가 때마침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사업으로 선정된 이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털이 수북하고 살집이 울끈불끈 솟은 거대한 고릴라 옷을 입고 조롱하듯한 눈빛으로 뒤돌아 보는 빨간 머리칼의 사내. 표지 그림은 ‘굿바이 동물원’이라는 제목과 겹쳐져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직원의 이야기인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책을 고를 때 표지와 제목, 그리고 책 뒷표지의 추천인의 글을 읽는 편이다. 사실 읽을 책을 3권이나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 책을 더 빌려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심사 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제 1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소설가 박범신의 추천글이 있어서 함께 빌려오게 되었다.
소설은 직장을 잃은 남자가 마늘 까기 부업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돼지엄마’라는 부업 알선업자 통해 곰인형 눈알과 바비인형 속눈썹을 붙이기도 하고, 종이학과 공룡 알을 접는 부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에서 운영하는 세렝게티 동물원의 직원으로 채용되어 ‘고릴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세렝게티 동물원’은 야생 느낌 물씬 나는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동물이 사실은 동물의 탈을 쓴 사람들인 독특한 동물원이고, 주인공은 비인간적인 이 생활 속에서 오히려 인간미를 찾아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와는 달리 실망한 작품이었다. 본드 중독 장면이나 동물의 탈을 쓴 사람들이 있는 동물원 이야기라는 설정이 나에게 썩 와 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탈을 쓴다고 관람객들이 속을까 싶기도 하고, 성과금과 관련된 동물원의 규칙, 후반부의 만딩고의 탈출(?), 만딩고의 전화를 받은 다른 동물(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솔직히 작위적이고 너무 현실감이 없다고 할까? 물론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며 내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F나 판타지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소설은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가?
물론 주인공을 비롯한 중심 인물인 고릴라 4명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 취준생 대표 앤, 잘 나가는 중산층에서 냉혹한 구조조정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생계형 가장을 대변하는 조풍년, 철 지난 이념의 산물인 만딩고, 실직한 가난한 취약계층인 주인공 영수. 그들이 각 집단을 대표하기는 하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그 집단의 옷을 입고 있어서(그 집단이 겪는 모든 어려움과 감정을 총체적으로 갖고 있는)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후반부의 다른 동물들(갈라파고스거북, 히말라야불곰, 개미핥기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작가가 직접 경험하거나 취재한 것이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 등으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들의 작품들은 본인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치밀한 취재와 조사를 통해 쓰여졌기에 책 속 인물이 현실감 있고 입체적으로 그려졌는데, 이 작품 속 인물들과 그들이 겪은 사건들은 이미 기사나 방송으로 접했던 (다소 극단적인) 내용이라 오히려 신선함이 없고,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인물의 경험과 생각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달까? 소설을 읽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들인데, 그런 평범한 삶 속에서 작가만의 통찰을 발견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 감동과 재치로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정말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래도 훌륭한 작가와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며 수상작으로 뽑았기에 일개 독자이며 부족한 내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솔직히 왜 수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원 밖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살 때는 사람노릇을 못했는데, 오히려 사람이 아닌 동물의 삶을 살 때 사람노릇을 할 수 있다는 소설의 메시지는 인상 깊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노릇’이란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고, 남들 앞에 떳떳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삶을 뜻한다. 또 ‘그럴듯한’ 동물 연기란 오히려 그 동물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즉 동물원을 관람하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실로서 다가왔다. 가령 우리가 고릴라에 대해 기대하고 상상하는 이미지는 영화 ‘킹콩’에서처럼 가슴을 쿵쾅쿵쾅 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는 모습인데, 실제 고릴라는 그런 행동을 잘 하지도, 자주 하지도 않는다는 것!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는 부자연스럽지만) ‘사람’의 시선에서 자연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동물들이 실감나다고 느끼고, 동물원의 인기도 올라가는 점은 뼈아픈 진실인 것이다.
밖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사회와 자신의 지위에서 도태되거나 낙오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를 짓밟고 희생시키는 비인간적인 삶이 아니라, 서로 돕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진정 ‘사람답게’ 살고 싶은 것은 계층과 소속집단을 떠나 우리 시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동물원 우리 밖이라는 새로운 철창 안에서 관람객이 기대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