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독특한 기호들, 문체들, 관계들, 구조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생산되어진 하나의 담론이 그와 유사한 담론들과 구분되어지는 '차이'를 낳게 한다. 이문열의 작품들에서도 흔히 얘기되어지는 '옛 것에 대한 향수'들에 관한 작품들(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등등)은 그의 문학을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나 그를 단지 '양반 지향적 상고(尙古)주의의 이념을 바탕에 까는 당대의 시류를 형성하는 작가'라고 보는 통속적 이해를 낳고 있다.

이문열의 <선택>에서도 역시 조선시대 한 여인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함으로 해서 이러한 계열의 비평들에 덧붙여지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문학작품을 바라보는 기준이 될 수 없는 다소 외적인 편견들에 대해 영향받음으로써 '개인의지와 자유결정' 같은 이문열이 추구한 중심맥이 묻혀버리는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택>에서는 조선시대 여인의 생활상을 우리 시대의 모습과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잡지에서 비판받듯이 페미니즘이 가장 문제시 삼고 있는 노동-가사의 문제, 여성으로서 자아실현의 희생 같은 문제에 대해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불리하기 짝이 없는 평가를 감수해야만 했다.

객관적인 사회의 전통은 한 시대의 노동과 지배의 체재를 포함하는 규칙으로서, 우리가 자신의 욕구를 정의하며 이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이를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통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안에 자신의 기대와 계획이 사회와 부딪힘에 있어 어떤 한계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신만이 시간이나 미래의 주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며, 경험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경험'이 된다. <선택>에서 정부인의 자각은 이러한 한계의 깨달음에 다름 아니다.

정부인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사회를 이해하는 문제와 결부되고, 이는 또 말하고 행동하는 행위자들의 배후에 놓인 조건들을 탐구하는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속해있는 역사에 대한 탐구가 개인의 전망과 관심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파악된 실제는 그 자체로 통일적인 모습일지라도 역사적 사실과는 구별되는 개인적 관심의 영역이 부여된다.

이문열의 <선택>이 삶의 본질적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자유결정'의 원칙에 대한 고려가 드러나 있다는 데 있다.

<선택>의 고백적 문체의 형식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이나 내용들은 이러한 고민과 사색의 과정이고 결과이다. 이는 하나의 선택적 결론을 향한 삶의 변화를 직시하기 위한 상념들이고 그 불연속적인 짜임들을 소화해 내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정부인은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 과거 및 미래와 현재의 모든 여건의 고찰을 통해서 성취되는 바가 사회에 있어서는 그 상이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야 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p139) 점에 의해 있음을 알게 된다.

개인의 선택에 있어 반드시 고려할 점은 어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이 갖는 능력의 실현은 오랜 시간에 걸친 많은 사회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협동의 결과에 의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선택'에 나타난 정부인의 모습은 조선시대 이데올로기의 강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직면하는 보편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며,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이데올로기 비교는 공통된 철학적 문제들의 고찰에서 진정으로 행해질 수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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