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 오늘의 세계문학 2
미셀 투르니에 지음, 신현숙 옮김 / 지학사(참고서) / 198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군대 시절 무척 어렵게 생각되던 책 중에 하나가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101가지 개념>인가 하는 책이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제대한 후에야 제대로 알았지만......

'징표는 자율성을 되찾고 징표를 보유하고 있었던 사물에서 빠져 나가게 돼. 그러면 가장 무서운 상태, 즉 <징표가 사물을 책임지게 되는>상태에 이르게 돼. 그것처럼 사물에게 불행이 없어. 자네 예수의 수난이 생각나나.

오랜 세월 동안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어. 그러다가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지. 그러자 신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태양의 빛은 꺼지고 말았어. 상징이 상징을 나타내는 사물을 흡수해 버릴 때, 십자가를 진 자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말았을 때 , 악의에 찬 전위가 짊어지는 기능을 뒤바꾸어 놓았을 때 시간의 종말이 가까워 온거지.'

괴테나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유명한 마왕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까지 우리의 삶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을까. 그러한 신화나 상징(가문의 문장, 인간의 행동들, 자연의 풍경이나 동물들, 아마 이런 점에서 그가 레비 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이고 그것은 현재 어떻게 변용되어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를 끈질기게(여기서 바슐라르의 영향, 후기 예술철학에서의 바슐라르는 너무나 끈질기게 자신의 사상에 대한 실례를 든다는 것이 기억난다) 담고 있는 책.

자신의 운명의 식인귀라고 자각한 주인공 티포쥬는 2차 대전이 일어나자 본질과 신화 상징의 나라인 동프러시아로 포로로 잡혀 가게 된다. 거기서 화석인간(1세기), 고라니(선사시대), 야생들소(중세 이전) 등과의 만남을 통해 차츰 시간을 초월하면서도 반복되고 있는 구조들에 대해 알게 된다.

'한 아이를 안아들 때' 느끼는 무게감에서 해방감을 맛보게 된티포쥬의 식인귀적(마왕적) 특성은 사실 거대한 식인귀들에 비하면 차라리 희극적 의미마저 가지고 있다.

황제의 전용 사육터인 로민텐의 관리 책임자이자 독일 나치 공화국 2인자인 고링의 식인귀적 모습. 그는 항상 사냥 고기들을 날 것으로 사자와 나누어 먹고, 사슴들을 즐겨 죽이며 특히 배변 연구(눌러만 보고도 이것이 누구의 똥이며 얼마나 지났으며 건강상태는 어떤지 기가 막히게 알아 맞히는)에 몰두해 있다. 또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전 독일의 열살 소년 소녀들을 바치도록 요구하며 온 유럽 유태인의 피를 요구하는 식인귀인 히틀러.

방드르디보다 먼저 쓰여졌으나 훨씬 더 오래 만져진 소설답게 인용되는 범위가 엄청나다. 최근에 이 책과 같이 읽은 김영하의 소설집 '호출'과 비교할 때 그 소재들의 차이란 구역질이 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김영하의 팬들에겐 죄송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