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지은이: 박완서

펴낸곳: 세계사

펴낸날짜: 2022118(초판 8쇄 발행)

 

작가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 홀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어머니가 남긴 글을 분명 여러 번 읽었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늘 새로운 발견을 한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내용이나 가족들에게 사랑의 입김을 불어넣어주려고 얼마나 애 썼는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젊은이들이 밝고 자유롭게 미래를 펼쳐가기를 얼마나 기원했는지, 하찮은 것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진실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생의 기쁨과 아름다움에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이 벅찼는지를 남겨 놓은 어머니의 글 속에서 이제야 알 거 같다. 세상이 떠나신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주는어머니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유쾌한 오해

2호선을 이용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내 옆자리가 비자 앞에 서 있던 청년이 밀치고 뚱뚱한 50대 중년 남자가 잽싸게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넉넉하던 자리가 꽉 차면서 치맛자락이 남자 앉은 자리에 깔리게 되었다. 뚱뚱한 몸에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끈끈한 팔로 양쪽 사람을 밀치는 듯 한 그의 자세 때문에 여간 거북하고 불쾌했다. 하품을 하려면 그냥 할 것이지, 호랑이가 우짖는 것처럼 어흥하고 크게 소리를 지으며 가락까지 붙이니까 졸던 사람까지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남자를 잊으려고 방금 탄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아주 화려한 모자를 들고 있었다. 차양이 달린 하늘색 모자, 차양 위에는 다시 금줄이 든 순백의 프릴이 달렸고 망사 베일까지 늘어진, 좀처럼 보기 힘든 황상적인 모자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50대 남성이 그 여성한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50대 남자가 20대의 젊은 여자에게..하지만, 여자는 사양할 줄 알았는데 고개만 까딱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때야 여자가 만삭의 몸임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가 뻔뻔하고 무신경하다는 건 순전히 나의 오해였던 것이다. 다시 한번 쳐다보니 듬직하고도 근사해 보였고 매우 만족스러운 듯 했다.

 

보통 사람

남보다 아이를 많이 낳아 늘 집안이 시끌시끌하고 유쾌한 사건과 잔근심이 그칠 날이 없었다. 늘 그렇게 살줄만 알았더니 하나둘 짝을 찾아 떠나기 시작하고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식구가 허룩하게 줄고 슬하가 적막하게 되었다. 딸애들이 한창 혼기에 있을 땐 어떤 사위를 얻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모여도 화제는 주로 시집보낼 걱정이었다. 큰 욕심은 없었다. 보통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살기는 너무 부자도 아니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으것, 식구끼리는 화목하되 가끔 의견 충돌쯤 있어도 무방함, 부모가 생존해 계시되 인품이 보통 정도로 무던하여 자식에게 보통 정도의 예절과 공중도덕을 가르쳤을 것, 학력은 내 자식이 대학을 나왔으니 대학은 나와야겠지만 일류냐 이류냐 까지는 안 따지기로 하고 그 대신 적정에 안 맞는 엉뚱한 공부를 해서 대학을 나오나마나 하면 절대 안 되고, 용모나 키도 보통 정도만 되면 되지만 건강할 것, 돈 귀한 줄 알고 인색하지 않을 것, 등등 이었다. 이만하면 욕심을 너무 안 부렸다고 생각했다.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내세운 조건이 어쩌면 가장 까다로운 조건인지도 몰랐다.

 

글 내용이 다양하고 소개하고 싶은 글들이 많지만 제한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새로운 이야기 보다는 늘 삶속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공감가고 나도 저렇게 생각하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재미있게 있을 수 있는 에세이다. 박완서 작가님이 남긴 글을 쓰면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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