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불이 잦아들었다고 느낄 때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책 때문에 우그러졌다”(148p)라는 회한 섞인 말을 내뱉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쓴 게 쓰레기가 아님 뭐겠어”(197p)라며 자책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한과 자책의 순간조차도 영인이 희구하는 열망의 범주 내에 속해있다. 사랑과 증오의 양가적 감정, 그러니까 애증은 사랑보다 더 큰 집착과 결속력을 지니기도 한다.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은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 버”(214p)린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분명 순수한 사랑의 감정 외에 수다한 감정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리라.
그러니까 영인에게 글쓰기란 삶을 망가뜨리는 망치이자 동시에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의자인 셈이다. “내가 좇던 것들이 다 우습고 시시”(197p)하게 느껴지는 순간과 “이야기만이 시간을 이길 수 있”(258p)게 느껴지는 순간의 진자운동 속에서 삶은 흘러가고, 우리는 성장한다.
연애와 글쓰기만큼 삶의 일부가 전부를 집어삼키는 행위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어쩌면 전부인,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나를 견딜 수 없게”1)만드는 데칼코마니 같은 그 두 가지.
글쓰기를 함께한다는 연대감이 여자들을 그토록 강하게 결속시켰던 걸까.(191p)
『라이팅 클럽』이 다루는 또 다른 주제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상흔과 가장자리의 존재들이 이뤄내는 연대의 현장이다. 자신을 현직 교사라고 소개한 ‘장’의 등장으로 영인의 엄마인 김 작가가 운영하는 글짓기 교실은 “혁명적인 사건”(44p)을 맞이한다. 영인은 장을 흠모하며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지만, 장의 목표는 김 작가였다. 장과 김 작가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같이 살기로 약속까지 했으나, 장은 “교사도 아니고 문학도도 아닌 그냥 동네 건달”(96p)이었다. 실체 없는 사랑을 미끼로 사람의 삶이 유린당한 셈이다.
사랑은 실체가 없건만 때때로 흔적을 남긴다. 그리워하는 사랑은 편지를 남기고 헌신적인 사랑은 선물을 남긴다. 그리고 폭력적인 사랑(혹은 사랑의 탈을 쓴 폭력)은 “총천연색 멍”(164p)을 남기기도 한다. 영인의 친구인 R의 경우가 그렇다.
폭력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촉발된 비인간적 행태일 뿐이다. 연인을 향한 손은 펼쳐져야 하지 쥐어져서는 안 된다. 주먹을 뻗음으로써 이미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모종의 감정적 덩어리는 언제나 그렇듯 뻔뻔스럽게 다시 사랑이란 호칭을 뒤집어쓴다.“오빠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사실 우리는 너무 사랑하거든.”(165p)
폭력으로 인한 상흔을 수습하기 위한 부단한 손들은 또 다른 손들과 스치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를 맞잡게 된다. 그렇게 연대는 탄생한다. 김 작가가 결성한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은 영인의 눈에는 그저 “종이컵을 든 동네 아줌마들의 결연한 수다방”같은 하잘것없는 소모임에 불과하다.(143p) 그러나 그 모임은 “자식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살던”(81p)세태 속에서 “자식과 남편 얘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씀으로써 객체화되어버린 자아를 돌려놓기 위한 투쟁의 장이다.(187p) 그러한 맥락에서 김 작가의 글쓰기 모임은 버지니아 울프가 제시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 “자기만의 방”의 다른 이름이다.2)
짧은 리뷰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라이팅 클럽』 전달하고 자는 바를 모두 말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글이 길어졌더라도 전부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총천연색 감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듯이, 글쓰기 역시 사람의 삶을 모두 담아내고 있으니까. 그 광륜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그럼에도 불가해 함에 다가가고자 한다면, 오늘부터 ‘라이팅 클럽’의 일원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연애가 끝나도 다시 다른 이의 손을 잡듯이, 그렇게 당신도 펜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1) 김경주, 「비정성시(非情聖市)」,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 2006
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