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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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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리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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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4
배수연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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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와의 키스에서 보여줬던 상상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오자마자 바로 샀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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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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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사랑과 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 죄로 미끄러지거나 죄가 복숭아 속의 벌레처럼 사랑 안에 깃든다. 그런 일은 흔하진 않지만 드물지도 않다. (49p)

 

사랑과 죄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비밀이 필요하다는 점이 아닐까. 사랑은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형태와 방향을 온전히 찾아간다. 연애가 시작되더라도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매개로 지속된다. 죄 역시 치러야 할 대가를 유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숨겨져야만 한다. 사랑과 죄를 말할 때 쓰는 단어가 고백이란 한 가지 단어이듯 두 행위는 모두 비밀에 연루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이 이야기는 사랑과 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을 때, 이 이야기를 비밀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지상의 노래에 등장하는 사물과 감정, 사건들은 대부분 수면 아래에 은폐된 대상들이다. 소설의 발단이 되는 천산 수도원의 벽서(壁書)부터 가 자신의 사촌 누나인 연희에게 품었던 욕망과 영구집권을 꿈꾸던 장군의 그림자 역할을 맡아 온 한정효의 삶까지 모두 장막 속에 가려진 대상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점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지상의 노래는 무수한 장막을 벗겨내면서 참혹함을 목도하고 구원을 더듬으며 사람은 누구나 시대의 수인”(177p)임을 통감해야만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사진)

 

사슬을 풀어헤치기 위해 시류에 초연하며 세계를 초월하고자 함은 가능한가? 천산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지내던 삶의 방식이 그랬다. 그들은 세상과 단절한 채 기도와 노동, 그리고 성경 필사만으로 일상을 채워 나갔다.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이 그악스럽게 자기들을 알리려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자기들의 존재가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141p)

 

젊은 군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엄청난 일을 했어. 하기야 대부분의 엄청난 일들이 이런 식으로 일어나지.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259p)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지상의 존재들이었기에 지상의 법칙과 불합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바뀐 정부는 위험인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실은 위험인자가 수도원에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으면서)군인들을 동원해 수도사들을 한방에 몰아 넣고 문을 만들어 달고, 잠그고, 그것도 모자라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 버린다.(260p)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사유하지 않음이 악이 되어 벌어진 참상인 셈이다.

은폐된 죄와 욕망을 직시하고 무사유(thoughtlessness)를 경계하기 위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물이 바로 성경, 그러니까 텍스트를 면()으로 하는 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형제는 거울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129p)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은 것은 일그러지고 부서진 자기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221p)

 

연애는 보다 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기도나 요가 역시 외부보다는 내부에 집중하는 과정이다. 텍스트를 읽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텍스트는 사유를 이끌어내고 사유는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글이 아니라 글을 통해 반사된 자신의 생각을 읽는다. 내재되고 함구된 자아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자신을 거울에 비춰봄으로써 는 스스로의 내재된 욕망을 읽었고, ‘한정효는 자신을 감추던 선글라스를 벗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자신은 자신을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거울은 필요하다. 암흑을 살던 한 시인처럼 수치를 응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닦고, 또 닦아야 할 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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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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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리뷰

 

 

 

나는 너를 좋아하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내 말이 모순 같은가. 그러니까 비 오는 날, 너와 함께 우산을 쓸 수는 있으나 네 손을 잡고 빗속으로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일부를 허락하나 전부를 내주기는 싫다는 말이며, 너와 함께 살 수는 있겠으나 같이 죽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모든 사랑은 기형이어서, 언제나 모종의 감정이 더 붙어있거나 덜 붙어있기 마련이다. 너와 나 사이에는 결핍으로 인한 질투도, 충족으로 인한 싫증도 없다. 우리는 현재를 소비하기 위해 서로를 소비할 뿐, 소비의 기원과 종국에는 관심이 없다. 혈실(血室)에서 뛰쳐나온 네 모습은 징그러울 것이고, 차에 부딪힌 네 모습에는 무심할 것이다. 나는 너를 좋아하나, 피투성이의 너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우리와 달리 이들의 이야기는 사랑이다. ‘유선’의 경우를 볼까.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유선은 작가였던 남편 ‘김주현’을 교통사고로 잃는다. 황망히 생을 이탈한 주현의 경우도 딱하다만 언제나 그렇듯 부재는 남겨진 자의 문제이지 않은가. 유선은 “한숨도 못 잔 아침부터 조문객들”(55p)을 맞이해야 했고 “하루 종일 혼자 지내야 하는 현실”(39p)에 내던져진 딸을 챙겨야 했으며, “퇴직금도 없는 도서관 임시직”(73p)과 중학생 과외를 겸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상을 견디며 남편의 부재를 수습하던 유선에게 전화 한 통이 오게 된다.

자신을 ‘차현구’라고 밝힌 남자의 용건은 주현이 남긴 “일기나 메모”, “편지”를 모아 출판하는 것이었다.(16p) 유선은 그러한 행위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남들 보는 데서 발가 벗기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 현구의 제안을 거절한다.(50p) 그러나 제안에 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현구와의 대화는 유선에게 죽은 남편의 컴퓨터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고, 그녀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나의 어디가 좋아?

모르겠어.

말해 줘.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 많이?

고개를 갸웃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32p)

 

 

컴퓨터에는 유선이 주현과 공유하지 않은 언어들, 죽은 남편이 죽기 전까지 다른 이와 나누었던 사랑의 밀어들이 있었다. 주현에게 유선은 “멀어지고 싶은 낡은 행성”이었고, 그가 죽기 전까지 함께 있었을 이니셜‘M’은 주현이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 보고 싶”게끔 느끼도록 만든 여성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연인들에 대해 “침묵까지도 점자처럼 더듬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투명하다”고 쉽게 믿고는 한다.(36p)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유한함과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사랑에 매달리고 집착하게 되는 이유이지 않은가.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도 내가 너무 많건만 어떻게 피부 밖의 너를 완전히 이해한단 말인가.

 

 

대답해 봐, 당신.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묻고 대답해야 할 게 아직 남아 있잖아.(79p)

 

 

죽은 자를 향해 건네는 질문은 무용하다. 죽은 자는 살려낼 수 없거니와, 같은 맥락으로 죽여 버릴 수도 없다.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향해 던진 질문은 이내 메아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언급했듯이, 부재는 남겨진 자의 문제이다. 선택은 유선의 몫이다. 그녀는 “딸에게 영원히 완벽한 아빠”(69p)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기를 숨길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하는 그의 무력함을 한껏 비웃”(54p)기 위해 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유선의 선택은 결국 은폐였다. 유선은 차현구를 불러 주현이 “일기도, 쓰고 있던 작품도 없었”다고 말한다.(85p) 이는 이해라던가 용서가 아니라,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과 “피의 냄새와 잔혹함, 배신과 후회”가 공존하는 양가적이고 기형적인 감정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84p)

 

연인의 뒷모습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 찌르고 싶은 충동이 같은 감정에서 연루되었듯, 타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심정과 가둬놓고 싶은 욕구가 한통속이듯, 고결과 천박과 순수와 욕정과 고마움과 이기심 그 모두가 “그냥 사랑”(85p)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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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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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lawlstjr56/222032138584

 

'그럼에도 써야만 하는'

강영숙, 『라이팅 클럽』리뷰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두 개의 추가 매달려 있었다. 연애와 글쓰기. (171p)

연애와 글쓰기는 닮았다. 두 행위 모두 배타적이어서, 쉽사리 주체가 다른 작업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몰두와 집착을 양식으로 하는 연애와 글쓰기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만큼의 공동(空洞)을 삶 속에 생성시킨다. 그러나 공동으로 인해 삶의 근간이 흔들리더라도, 혹은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더라도 쉽사리 연애나 글쓰기를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필코 떠나겠다는 결심과 그럴 수 없으리라는 예감 사이에서 반목한다.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와 끝말잇기처럼 부재 뒤에 재회가 따라붙으리라는 불안의 진자운동 속에서 삶은 흘러간다.

연애의 계기가 그렇듯 글쓰기의 계기 역시 그리 대단치는 않다.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영인’의 경우도 그렇다. 무명 잡지에 산문 한편을 발표한 경력이 전부인, 자신이 ‘김 작가’라고 부르는 엄마와 계동에서 살아가던 영인은 욕지거리를 담은 편지를 엄마와 엄마의 친구 부부에게 발견 당하고 만다. 영인은 그때 들었던 질책이 아닌 “야, 너 글 잘 쓰더라. 어떻게 그렇게 편지를 길게 쓸 수 있지?”(52p)란 칭찬을 “내 운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최초의 칭찬”(52p)이라고 회상한다.

사랑의 발단과 지속시간, 그리고 더께는 서로 무관하다. 엉겁결에 시작된 연애라 한들, 그것에 대한 열망의 연료가 언제 사그라들지는 아무도 쉬이 짐작하지 못한다. 영인의 글쓰기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현실, 현실이 문제”(106p)인 세계에서 글쓰기는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을 약속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가난은 때때로 글쓰기와 연애 앞에 숭고함이라는 수식을 붙여줌으로써, 그것에 대한 열망의 불꽃을 더욱 크고 세게 키우는 매개로 작동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 꿈조차도 가만 내버려 두지 못”(146p)하는 상태에서, 쓰고자 하는 욕구는 현실 원칙을 땔감으로 몸피를 키워나간다.

어쩌면 불이 잦아들었다고 느낄 때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책 때문에 우그러졌다”(148p)라는 회한 섞인 말을 내뱉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쓴 게 쓰레기가 아님 뭐겠어”(197p)라며 자책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한과 자책의 순간조차도 영인이 희구하는 열망의 범주 내에 속해있다. 사랑과 증오의 양가적 감정, 그러니까 애증은 사랑보다 더 큰 집착과 결속력을 지니기도 한다.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은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 버”(214p)린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분명 순수한 사랑의 감정 외에 수다한 감정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리라.

그러니까 영인에게 글쓰기란 삶을 망가뜨리는 망치이자 동시에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의자인 셈이다. “내가 좇던 것들이 다 우습고 시시”(197p)하게 느껴지는 순간과 “이야기만이 시간을 이길 수 있”(258p)게 느껴지는 순간의 진자운동 속에서 삶은 흘러가고, 우리는 성장한다.

연애와 글쓰기만큼 삶의 일부가 전부를 집어삼키는 행위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어쩌면 전부인,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나를 견딜 수 없게”1)만드는 데칼코마니 같은 그 두 가지.

글쓰기를 함께한다는 연대감이 여자들을 그토록 강하게 결속시켰던 걸까.(191p)

『라이팅 클럽』이 다루는 또 다른 주제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상흔과 가장자리의 존재들이 이뤄내는 연대의 현장이다. 자신을 현직 교사라고 소개한 ‘장’의 등장으로 영인의 엄마인 김 작가가 운영하는 글짓기 교실은 “혁명적인 사건”(44p)을 맞이한다. 영인은 장을 흠모하며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지만, 장의 목표는 김 작가였다. 장과 김 작가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같이 살기로 약속까지 했으나, 장은 “교사도 아니고 문학도도 아닌 그냥 동네 건달”(96p)이었다. 실체 없는 사랑을 미끼로 사람의 삶이 유린당한 셈이다.

사랑은 실체가 없건만 때때로 흔적을 남긴다. 그리워하는 사랑은 편지를 남기고 헌신적인 사랑은 선물을 남긴다. 그리고 폭력적인 사랑(혹은 사랑의 탈을 쓴 폭력)은 “총천연색 멍”(164p)을 남기기도 한다. 영인의 친구인 R의 경우가 그렇다.

폭력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촉발된 비인간적 행태일 뿐이다. 연인을 향한 손은 펼쳐져야 하지 쥐어져서는 안 된다. 주먹을 뻗음으로써 이미 사랑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모종의 감정적 덩어리는 언제나 그렇듯 뻔뻔스럽게 다시 사랑이란 호칭을 뒤집어쓴다.“오빠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사실 우리는 너무 사랑하거든.”(165p)

폭력으로 인한 상흔을 수습하기 위한 부단한 손들은 또 다른 손들과 스치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를 맞잡게 된다. 그렇게 연대는 탄생한다. 김 작가가 결성한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은 영인의 눈에는 그저 “종이컵을 든 동네 아줌마들의 결연한 수다방”같은 하잘것없는 소모임에 불과하다.(143p) 그러나 그 모임은 “자식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살던”(81p)세태 속에서 “자식과 남편 얘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씀으로써 객체화되어버린 자아를 돌려놓기 위한 투쟁의 장이다.(187p) 그러한 맥락에서 김 작가의 글쓰기 모임은 버지니아 울프가 제시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 “자기만의 방”의 다른 이름이다.2)

짧은 리뷰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라이팅 클럽』 전달하고 자는 바를 모두 말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글이 길어졌더라도 전부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 인간의 총천연색 감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듯이, 글쓰기 역시 사람의 삶을 모두 담아내고 있으니까. 그 광륜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그럼에도 불가해 함에 다가가고자 한다면, 오늘부터 ‘라이팅 클럽’의 일원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연애가 끝나도 다시 다른 이의 손을 잡듯이, 그렇게 당신도 펜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1) 김경주, 「비정성시(非情聖市)」,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지성, 2006

2)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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