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 혼란의 역사를 기록하다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11
줄리아노 세라피니 지음, 정지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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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분야방면으로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예술가의 이름과 그의 대표작정도는 눈도장 찍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역시나 나는 이방면으로는 문외한이었음을 느끼게 한 예술가 고야를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고야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고야 이 루시엔테스는 스페인의 혼란기에 궁정화가로써 그 시대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였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ART BOOK시리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로 출간된 고야편은 고야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고야라는 이름은 처음 들은 듯 생소했지만 책 표지의 여성의 눈매와 포즈는 이미 본 적이 있었던 느낌을 받았다. 고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옷을 입은 마하>의 일부분이었다. 이 작품은 <옷을 벗은 마하>와 연결된다. <옷을 벗은 마하>는 당시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화적 요소를 내세우지 않고 당당한 여성의 누드를 그린 첫 누드화였다고 한다. 신비하고 성스런 분위기의 누드화만 접하다가 그 당시에 아무런 신화적 요소 없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여성의 누드란 그 시대상을 생각할 때 논쟁이 휩싸일만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등장하는 여성의 당당한 포즈와 눈매는 자신이 관찰당한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을 보는 관객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듯 대담성과 도도함이 엿보인다. 물론 매우 유혹적이기도 하다.

 고야는 그동안 접했던 어떤 화가보다도 그의 작품 스타일이 독특했다. 그가 스페인 혼란기에 살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표현 영역에는 한계가 없는 듯하다. 그는 작품성을 인정받을 때까지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낸 다른 예술가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처음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바예우를 추종하며 그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아마도 그 결혼은 신분상승을 노리고 이루어졌다는 추측이 사실인 것 같다. 그 후 그의 처세술은 그가 살아가는데 큰 굴곡이 없게 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초기에 고야도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작품들을 공부한다. 혼자 힘으로 이탈리아 여행도 다녀오고 당시 요구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후 궁에 들어가서는 <만사나레스 강가에서 춤을>, <그릇장수>, <양산>등과 같은 대중적 소재를 다루면서 그의 화풍은 성숙기를 맞이한다. 그러던 그가 프랑스의 혁명정신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전해지자 계몽주의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그때에 고야는 궁정화가로 출세한다. 당시 왕과 귀족들의 초상화가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그밖에 <회개하지 않고 죽어가는 자를 임종하는 성프란시스코 보르하>와 <돈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는 특이하다. 그 후『카프리초스』를 예고하듯 괴물의 모습과 어린이 초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맹수의 눈빛을 가진 고양이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는 납중독으로 몸 상태가 악화되고 청각이 상실되어감에 따라 작품도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초상화 외에 작품들은 주로 어둡고 파괴적인 악을 모습들을 많이 담았다. 『카프리초스』에 담긴 판화들도 꿈, 괴물, 주술, 광기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이후 나폴레옹에 의해 스페인이 침략 당하자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남긴다. 말년에 시골별장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그로테스크한 벽화를 보면 암울하고 무서운 분위기에 빠질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다시 밝은 색채를 사용한다. <보르도의 우유 파는 여인>은 그의 최후의 걸작으로 모든 것을 초월한 정화를 위한 시간이었다고 평가된다.

 그의 삶은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신체적 아픔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변혁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초기에는 편안함과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중기에는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그리고 말기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다시 밝은 색채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품들에서 보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화풍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 듯하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작품세계는 혼란기를 표현한 작품으로써뿐 아니라 독특한 볼거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고야의 특별한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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