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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으로 유명한 노자와 히사시의 유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딸이라는 잔혹한 설정 속에서 시작된다.
수학여행날 밤, 친구들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만 내놓은 채 최근에 경험한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교 6학년인 아키바 가나코.
한밤중에 들려온 끔찍한 소식은 이제 그녀가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집에 없던 날 밤 벌어진 살인사건.
가나코는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혼자만 살아남은 것에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금세 시야가 일그러지고, 젖어들었다. 상담의에게도 보인 적 없었던 눈물, 3년 만에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
가나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을 찾아 목소리를 짜냈다.
"살아 있어서, 미안해…… ."
p.136
가나코의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쓰즈키 노리오가 집에 침입해 가나코의 아버지와 엄마, 두 남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 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가나코는 수학여행지에서부터 죽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 '네 시간'을 현실처럼 겪게 되는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2장에서는 범인인 쓰즈키 노리오의 상신서를 통해 그가 아키바 일가에 품게 된 원한과 살인을 하게 된 동기를 보여주는데, 이 시점부터 독자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린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은 나쁘지만 왠지 범인인 쓰즈키 노리오의 살해동기에 마음이 쓰였다.
'XX야……, 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미안하다.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하다. 아버지는 모르겠다.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는지. 너는 살인자의 딸이 되어버렸구나.아버지가 너를 살인자의 딸로 만들어버렸구나. 미안해. 미안해.' p.178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가나코는 범인에게 자신과 같은 나이의 딸, 쓰즈키 미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겪어온 고통의 세월을 범죄자의 딸인 미호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을 지, 자신보더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한다.
나와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남기고 간 아이들이 비슷한 막다른 골목에서 신음하고 있다.
죽임을 당한 측과 죽인 측이 실은 같은 고통으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p.182~183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미호에게 접근한 가나코.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지냈던 미호는 가나코에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가나코는 범인의 딸을 증오하며 미호를 아버지와 같은 살인이라는 원죄를 지우고, 남은 인생을 죄의식과 함께 살아가게 만드려는데...
그런 마음을 품은 가나코의 마음이 가슴 아프게 전해져 온다.
전반부에서는 참극 묘사와 놀라운 전개로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후반부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 조금 긴장감이 늦춰진다.
하지만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결국 사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나코와 미호의 모습과 원수의 딸에게 접근하는 가나코의 심리 묘사를 잘 표현하고 있어 나는 오히려 후반부가 좋았던 것 같다.
책을 덮은 후에도 묵직한 여운이 남을 만큼 몰입도가 높은 책은 참으로 오랫만이었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면서도 노자와 히사시 작가의 작품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진다.
그리고 이미 <심홍>이 2005년에 영화로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지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