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내 앞에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내가 나타났다. 그런데 가짜는 자기가 진짜라고 우긴다. 가족들은 헤깔려 하기 시작한다. “여보, 애들아, 내가 진짜 당신 남편이고 아빠야”라고 주장해 봐야 소용없다. 옛추억을 얘기해 봐도 몸 깊숙이 숨겨진 흉터를 들이밀어도 가짜는 그것마저 똑같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진짜임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나는 여자로 태어났다. 사회는 여성에게 맞는 옷차림, 가정에서의 역할, 직업을 요구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젠더(gender)를 벗어 던져버렸다. 남자들의 옷이 나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직업도 군인을 택해서 남자들을 지휘하고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다. 사회는 나를 가둬두려 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의 저자 조현우 선생님은 「옹고집전」,「정수정전」을 자기정체성을 묻는 글로 해석하고 있다.
 
잠시 삼천포로 빠지면, 내가 옹고집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마누라에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눈빛’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눈빛이란 교감을 뜻하지 않는가. 배우자의 눈빛을 알아 볼 수 없다면 그 둘 사이는 어느새 멀어졌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옹고집전」은 부부 사이의 친밀도를 테스트 해 보라는 교훈을 주는 글은 아니란다.
 
오랜만에 주말 산행을 다녀왔다. 정수정에 대한 강의를 들어서인지 한참 동안 사람들의 옷 색깔을 살펴봤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여자들은 99% 붉은 계열, 반대로 남자들은 푸른 계열 옷을 입었다는 것. 국가대표 축구 경기 응원할 때는 여자건 남자건 다 붉은 옷을 입는데 왜 산에 갈 때는 여자만 붉은 옷을 입는 것일까?
 
사람들의 삶은 어쩜 정수정이 처해 있는 상황과 그리 비슷한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의 삶이란, 사회(가정)의 지속적인 요구에 개인이 부응하는 과정의 연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사회화 과정’이라고 하나? ‘모범생’이란 사회화 과정을 훌륭하게 해 내 사람들을 뜻하는 거고, ‘군대 가서 철들었다’는 건 권위에 복종하고 순응하는 삶을 체화했다는 뜻이지.
 
우리사회의 좀 지나친 사회화 과정을 살펴보면,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만 가면 되고 선생님은 시키는 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되고 주부는 우리애만 잘 키우면 되고 직장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만 잘 벌면 되고. 물론 남자에게 복근은 기본,  여자에게 S라인과 성형수술은 에티켓.
 
충실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옹고집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말하기 힘든 때가 오지 않을까? 그러기에 정수정처럼 치열하게 자기만의 삶을 찾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좀더 실용적으로 바꾼다면 ‘나는 누구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 ‘내가 죽고나서 지인들이 문상을 왔을 때 내 자식에게 배우자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해 주기를 원하는가’ 라고 고쳐 볼 수도 있겠다.
 
문상 온 지인들이 ‘너희 아버지는 우리 친구 중에 가장 부자였다’ , ‘당신 남편은 대기업 사장이 된 뛰어난 분이었다’ 보다는 ‘너희 아버지는 주위 사람에게 배려가 많고 자상한 분이셨다’ , ‘당신 남편은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상사였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좀더 찡하지 않은가?
 
각 장마다 더 읽을 만한 책을 친절하게도 소개해 주신 오세정, 조현우 선생님의 스타일을 베껴서 나에게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감동을 해 준『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마나 마하리쉬, 청하, 2007)에 나오는 글 중 일부를 소개하면서 마친다. 좀 어렵다.
 
●<나>는 누구입니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중략)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순수한 앎〕(Awareness)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
 
●어느 때에 진아 진아 眞我(진정한 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현상계(現象界) 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
 
●어느 때에 현상계가 사라집니까?
현상계에 대한 모는 인식과 행위의 원인은 마음이다. 따라서 마음이 사라지면 현상계도 사라진다.
 
●진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중략) 진아는 <나>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바로 그곳이며 <침묵>이라고도 한다. 진아가 곧 현상계이고 진아가 곧 개인이며 곧 신이다. 진아는 모든 것이다.
 
(이하는 과감히 생략)

 

 출처 : 독서대학 르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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