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공부, 사람공부 - 옛 그림에서 인생의 오랜 해답을 얻다
조정육 지음 / 앨리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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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만폭동 


<문제1>우리나라 최초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린 사람은?

①김홍도 ②신윤복 ③정선 ④장승법 ⑤신사임당

<문제2>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미술사적 의미를 쓰시오.(주관식)

<문제1>의 답은 ③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에 귀가 닳도록 듣고 외웠기에 아직까지 지식으로(?)으로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2>에 대해서는 답을 못쓰겠다. 그냥 백지 제출이다. 이게 20년 전 내가 받은 교육의 한계였다면 요즈음은 좀 나아졌을라나? 이에 대해 조정육선생님의 답변을 들어보자.

“정선 이전의 화가들은 조선의 산도 중국식으로, 그림 속 인물들도 중국 복장으로 그렸다. 조선 산천은 조선식 필법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때에 정선은 지도를 그리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 산천을 그렸다. 철저하게 조선 산천에 어울리는 필법을 새로 개발하여 가정 조선적으로 그렸다.
그 까짓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각히 생각하지 못한 혁명적인 사고였다. 그림은 중국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상식의 세계에서, 그림을 조선식으로 그릴 수있다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실제 경치를 그린 ‘실경산수’라는 대신에 ‘진짜 우리 산천을 그린 실경산수’라는 의미로 특별히 ‘진경산수(眞景山水)’라고 부른다. 진경산수의 선구자에 걸맞는 예우인 것이다. 정선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수많은 후배 화가들이 진경산수의 꽃을 피웠고, 결국 김홍도 같은 거장이 탄생하기에 이른다.”(p.161)

조선말 유학자들조차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했던 시기에 중국과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사상검증이 필요한 불순분자로 의심받을 일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정선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정선에 대해 좀더 공부해 봐야겠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과 손자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생을 승승장구 하며 살아가던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쓴 글이라기에는 너무소박하지 않은가? 온갖 산해진미(山海珍味)와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맛보았을 법한 김정희가 좋은 반찬이라며 추천하는 게 고작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라니. 먹거리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풍족하고 기름진 삶을 꿈꾸는 생활인들에게 단촐하고 소박한 삶 속에 참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을 때 제일 후회스러운 일을 꼽으라고 하면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하던데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는 사회 생활로 바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시간 씀씀이를 돌아 보라는 메시지를 주는 글귀다.   

 http://www.renai21.net/bbs/board.php?bo_table=0509&wr_id=124&page=1&sca=&sfl=&stx=&sst=&sod=&spt=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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