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일요일들 - 372일간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주
손수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몇 장 넘겨다 보려던 것이 자리를 잡고 앉게 만들었다. 서른 한 살에 떠났던 여행이 서른 두 살이 되어 일년 하고도 일주일만에 끝났다. 비록 저자가 바랬던 29살에 떠나는 세계여행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하는 꿈을 이뤘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솔직하고 털털한 글을 통해서 잠시나마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뭔가 있는 척 포장하고 과시욕이 흘러넘치는 어줍잖은 여행기이나 단순히 정보만 주욱 나열한 감흥없는 여행 안내서를 싫어한다. 세계 여행이 보편화 돼서 마음만 먹으면(물론 약간의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겠지만)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세상이고, 개인 블로그로 단련된 글솜씨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는 일도 너무나 흔해졌다. 당연히 여행관련 글은 넘쳐날 수 밖에 없고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여행관련 책을 내놓다. 그런 책들 중 어디를 다녀왔는지 지리하게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솔직 담백하게 담은 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괜찮다." 대단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도 하지 않는다), 30대 초반 여행을 떠난 당찬 여인네의 솔직함이 폴폴 풍긴다. 그걸로 됐다. 너무 오바하는 것도 싫고 기분 좋을 정도의 유쾌함이면 된다.

여행이 낭만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발리에서 몇 달치의 월급을 털리고 뺵빽한 숲에서 길을 잃을 뻔하거나 벼룩에 물어뜯겨서 고생해서만은 아니다. 책에 담긴 내용은 말하자면 여행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형언하지 못할 만큼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 하기까지 암내나는 버스에서 수십시간을 달려야했다. 듣는 우리들이야 우습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쯤이겠으나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여행에서 저자의 말에 따르면 거의 한달은 그러고 다녔단다. 모두 그렇겠지만, 여행기는 말하자면 정제되고 완성된 영화 한 편과 같다. 영화를 찍기위해 준비하고 좋은 장면을 위해 고군분투 했던, 카메라에 담기지 못하는 숱한 일들은 기억 저 편에 사라져 버린다. 망각이라는 몹쓸, 그러나 축복받은 기능 때문에 나중에 여행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은 영웅담이 되고 지루했던 순간들은 누락되어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이런 경험들 있지 않은가. 여행갔는데 생각보다 유쾌하지만은 않고 내가 왜 이 긴 차들의 행렬에 갇혀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투덜거렸던, 그렇지만 갔다 오고 나면 그런 지루하고 짜증났던 일보다는 즐거운 일을 중심으로 여행이 기억되었던 그런 경험.  

작가라면 누구나 글을 한 편 세상에 내놓고 다 표현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아마 저자도 그럴 것이다. 대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하늘을 어떻게 글로 담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녀의 한계라기 보다는 글 이란 놈의 한계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스스로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나름의 배낭을 꾸려 출발하게 되는 것 아닌가(마음 속으로만 일지라도!). 여행이 낭만이기만 한것은 아니라는 것을 벼룩에 물려 몽땅 옷을 빨래하고 있던, 여행이 끝날 무렵의 글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전세금 탈탈 털어서 떠난 여행이라 한국에 돌아가면 돈은 없고 남들은 자신이 여행하고 있을 일년의 시간동안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일년 간의 해외여행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그녀는 마냥 여행을 아름답게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이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사귄지 백일만에 훌쩍 떠나버린 그녀를 부처처럼 기다려준, 결혼할 사이가 된 G군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담을 유쾌하게 들어줄 친구들이 있었다. 사표내고 떠나왔지만 지금은 카피라이터로 잘 나가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렇게 그녀의 추억을 장식 할 책 한 권 나왔다. 이만하면 괜찮은 결론이지 않은가.  

그리고 거기에 자극되어 여행에 대한 욕망에 꿈틀거리는 나도 있다.  나도 뭔가 스펙터클하고 추억으로 먹고 살 만한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남미도 괜찮고 "개나소나 다 가는" 유럽도 괜찮겠다. 아니면 카오산 로드를 거닐어볼까? 나도 20살 후반쯤에 꼭 그럴 날이 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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