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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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같이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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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일요일들 - 372일간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주
손수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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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몇 장 넘겨다 보려던 것이 자리를 잡고 앉게 만들었다. 서른 한 살에 떠났던 여행이 서른 두 살이 되어 일년 하고도 일주일만에 끝났다. 비록 저자가 바랬던 29살에 떠나는 세계여행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하는 꿈을 이뤘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솔직하고 털털한 글을 통해서 잠시나마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뭔가 있는 척 포장하고 과시욕이 흘러넘치는 어줍잖은 여행기이나 단순히 정보만 주욱 나열한 감흥없는 여행 안내서를 싫어한다. 세계 여행이 보편화 돼서 마음만 먹으면(물론 약간의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겠지만)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세상이고, 개인 블로그로 단련된 글솜씨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는 일도 너무나 흔해졌다. 당연히 여행관련 글은 넘쳐날 수 밖에 없고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여행관련 책을 내놓다. 그런 책들 중 어디를 다녀왔는지 지리하게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솔직 담백하게 담은 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괜찮다." 대단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도 하지 않는다), 30대 초반 여행을 떠난 당찬 여인네의 솔직함이 폴폴 풍긴다. 그걸로 됐다. 너무 오바하는 것도 싫고 기분 좋을 정도의 유쾌함이면 된다.

여행이 낭만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발리에서 몇 달치의 월급을 털리고 뺵빽한 숲에서 길을 잃을 뻔하거나 벼룩에 물어뜯겨서 고생해서만은 아니다. 책에 담긴 내용은 말하자면 여행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형언하지 못할 만큼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 하기까지 암내나는 버스에서 수십시간을 달려야했다. 듣는 우리들이야 우습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쯤이겠으나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여행에서 저자의 말에 따르면 거의 한달은 그러고 다녔단다. 모두 그렇겠지만, 여행기는 말하자면 정제되고 완성된 영화 한 편과 같다. 영화를 찍기위해 준비하고 좋은 장면을 위해 고군분투 했던, 카메라에 담기지 못하는 숱한 일들은 기억 저 편에 사라져 버린다. 망각이라는 몹쓸, 그러나 축복받은 기능 때문에 나중에 여행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은 영웅담이 되고 지루했던 순간들은 누락되어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이런 경험들 있지 않은가. 여행갔는데 생각보다 유쾌하지만은 않고 내가 왜 이 긴 차들의 행렬에 갇혀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투덜거렸던, 그렇지만 갔다 오고 나면 그런 지루하고 짜증났던 일보다는 즐거운 일을 중심으로 여행이 기억되었던 그런 경험.  

작가라면 누구나 글을 한 편 세상에 내놓고 다 표현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아마 저자도 그럴 것이다. 대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하늘을 어떻게 글로 담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녀의 한계라기 보다는 글 이란 놈의 한계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스스로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나름의 배낭을 꾸려 출발하게 되는 것 아닌가(마음 속으로만 일지라도!). 여행이 낭만이기만 한것은 아니라는 것을 벼룩에 물려 몽땅 옷을 빨래하고 있던, 여행이 끝날 무렵의 글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전세금 탈탈 털어서 떠난 여행이라 한국에 돌아가면 돈은 없고 남들은 자신이 여행하고 있을 일년의 시간동안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일년 간의 해외여행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그녀는 마냥 여행을 아름답게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이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사귄지 백일만에 훌쩍 떠나버린 그녀를 부처처럼 기다려준, 결혼할 사이가 된 G군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담을 유쾌하게 들어줄 친구들이 있었다. 사표내고 떠나왔지만 지금은 카피라이터로 잘 나가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렇게 그녀의 추억을 장식 할 책 한 권 나왔다. 이만하면 괜찮은 결론이지 않은가.  

그리고 거기에 자극되어 여행에 대한 욕망에 꿈틀거리는 나도 있다.  나도 뭔가 스펙터클하고 추억으로 먹고 살 만한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남미도 괜찮고 "개나소나 다 가는" 유럽도 괜찮겠다. 아니면 카오산 로드를 거닐어볼까? 나도 20살 후반쯤에 꼭 그럴 날이 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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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그니토 - 나라고 말하는 나는 누구인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소희 옮김, 윤승일 감수 / 쌤앤파커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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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탈 때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동작 하나 하나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친구와 대화를 할 때 문법이나 어휘를 일일이 의식하면서 말한 적이 있는가? 수능공부를 하던 시절, 나는 언어영역 지문을 속독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그 때 내용이 아니라 읽는 행위 자체에 너무나도 신경을 쓴 나머지 눈동자는 글자 위를 내달리지만 마치 활자가 읽히기를 거부하는 것 처럼 20년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던 읽기를 더이상 할 수 없었다. 그 증상은 두 달여간 지속되었고 절망감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읽는 행위를 더이상 의식하지 않자 증상은 사라지게 되었고 수능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일을 의식의 수면 위로 꺼내어 일일이 살피게 되면 그토록 자연스러웠던 것이 몹시 어려워진다. 아니 이렇게 복잡한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오히려 놀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은 의식을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차적인 능력으로 치부하며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의식이란 것이 이처럼 오히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의식은 사실 정신현상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데이비드 이글먼에 따르면, 많은 일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화된 서브루틴들의 네트워크 (간단하게 말해서 의식시스템, 감정시스템이 있다고 본다)에 의해서 처리되고 단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의식이 "떠오른다". 평소에는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문을 따는 일을 별 생각 없이 하고, 그런 일을 한 것 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오직 문고리 자물쇠가 도둑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었을 때만이 이 일이 우리의 의식 안에 들어오게 된다.

베일러 의대의 신경의자 신경과학자인 그는 생물학적 기반을 토대로 해서 인간의 의식을 이해한다. 인간의 정신과 뇌는 분리될 수 없고 정신이라는 현상은 뇌에 기반한다. 그런데 이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착시현상을 살펴 보면 알 수 있듯이,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들어오는 정보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가설을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주관적으로 "인식"한다. 본다는 어찌보면 단순한 행위는 오랜세월을 통해 정교한 기계와 같이 진화한 뇌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뇌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의 극히 일부만이 의식을 이루고 나머지는 무의식의 깊은 수면 아래 잠겨있다.  

그렇다면 의식의 역할은 무엇인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의식은 바로 자동화된 서브루틴들의 네트워크의 의사소통을 돕고, 자원을 분배하고, 통제권을 할당하는 고차적인 기제"로써 작동한다. 의식은 수많은 직원들 (의식되지 않는 두뇌의 네트워크)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일의 중재하는 기업의 CEO에 비유된다. 여기서 저자는 의식이 발생하는 특정 위치를 콕 찝어 말하고 있지는 않다. 가령 무언가를 훔치거나 도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려는 충동은 전전두엽에서 제어 되는데, 이 과정에서 두뇌 시스템들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의식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것이 특정 뇌 부위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진 않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란 철저히 뇌에 기반을 하여 작동하지만 (유전적 요인이든 환경적 요인이든 두뇌에 변화를 가져오면 이러한 변화에 기반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모를 뿐 만 아니라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남자들은 동공이 확대된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왜냐고 물으면 동공 확대 때문이 아니라(동공 확대를 의식적으로 알지도 못한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여성의 동공 확대는 성적으로 준비되어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남성의 유전자에 의해 설계된 두뇌회로가 그것을 무의식중에 포착하여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행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때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기제에 의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이 작동하고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 나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자유의지를 근간으로 해서 죄의 책임을 묻는 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정신지체라든가 뇌손상을 입었다든가 또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 있을 때는 자유의지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경감되거나 병원으로 보내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두 자유의지에 있다고 보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저자는 아직 과학으로 발견할 수 없지만, 범죄로 이어지는 사회적 병리 현상 자체가 쇠파이프가 전두엽을 관통하거나 종양이 있는 등 뇌손상의 극단적인 상태는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뇌에 문제가 있음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며, 이럴 때 자유의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여기서 그는 자유의지 존재 여부를 논쟁하기 보다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사고가 유전적, 환경적 영향을 받은 뇌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단순히 처벌을 위해 처벌하기 보다는, 그 이후의 갱생 가능성을 뇌에 근거하여 예측하고 전전두엽단련 운동과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주장부터 다윈의 진화론, 양자역학 이론, DNA의 발견 등은 인간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세계상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여겨졌던 존재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접근 할 수 없는 기제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목적을 잃고 헤매야 하는가?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모든 발견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있으며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다고 투덜거리거나 내가 누군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탐험하면서 그 경외감을 만끽 하라고 주장한다. 마음이 심장으로부터 나왔다고 믿었던 때가 있다. 그리고 골상학과 같은 다소 조잡한 이론에서 그리고 현재의 뇌과학을 바탕으로 한 숱한 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뉴런에 의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뇌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들여다 보면 볼 수록 우리의 머리로 좀체 상상이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저자는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마음을 단순히 물질적인 것과 등가적으로 보는 견해와 최절약 원리로 간결하게 두뇌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에도  경계를 표하며 그는 후대의 과학의 발달로 더욱 두뇌와 우리 인간에 마음, 행동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많은 물음표와 함께 책을 마친다.   

데이비드 이글먼이 바라보는 의식은 사실 경쟁하고 있는 가설 중의 하나다. 정말로 의식이 그러한 기제로 작동하는지는 아직은 검증 밖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첨단의 뇌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설득력있게, 비유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보다 쉽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내가 뇌과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매력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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