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완 신칸센 프로젝트...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고속철도지만, 그 속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인연들은 차가운 선로를 지나가다 만나는 따뜻한 간이역 같은 느낌이다. ​

열정적인 사랑도, 뭉근한 사랑도,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되는 사랑도 모두 담겨있는 듯한 이야기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 인스턴트식 사랑이 아닌 진심으로 추억되는 사랑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은 일생에 몇 번 안 될 수도, 어쩌면 단 한번의 사랑도 못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이렇게 메말라가는 "사랑 부재시대"에 조용히 사랑이라는 감정의 단맛을 던져주고 있다. 또 요시다 슈이치는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책 전체에서 대만 타이베이에 대한 애정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면 어느 순간 나와 영혼으로 통하는 도시를 만나게 된다. 나에겐 오스트리아의 솔라시티(solar city)가 그랬다. 그곳에 들어서서 떠날 때까지 벅찬 감동이 퍼져,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대만의 타이베이는 작년에 다녀왔었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대만 사람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5일 정도되는 짧은 체류기간 동안 대만 사람들의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좋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길게 체류한다면 작가처럼 더욱 많은 걸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점점 더 흘러가는 시간을 무심히 즐기는 여행이 좋다.

"이 소설은 타이완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하는 작가 역시 이런 무심한 시간을 보내면서 타이베이의 매력이 빠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배경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입혀 "사랑"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

 

​책, 밑줄긋기...

우연히 동행하게 된 단 하루의 타이베이 여행으로 서로를 잊지 못해 상대의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 여자 다다 하루카와 타이완 남자 료렌하오. 아내와의 불화에다 매사 계획대로 일이 진행돼야 한다는 강박으로 괴로워하는 타이완 주재 일본 상사원 안자이 마코토와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현지인 호스티스 유키.

 

사랑 때문에 상처를 입히고 만 친구에게 돌아가 드디어 용서를 구할 용기를 낸 일본 노인 하야마 가쓰이치로와 그런 그가 다시 찾아오길 묵묵히 기다려준 타이완 벗 랴오총.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타이완 청년 첸웨이즈와 그런 그의 앞에 일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미혼모로 돌아온 소꿉친구 창메이친. 이들은 모두 인생길의 어느 한 교차점에서 이미 만났다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한번 엇갈렸지만 그렇게 각자 접어든 길조차 마치 서로를 향하는 길이었던 것처럼 재회하고 함께 걷기 시작한다.

타이베이라는 도시는 밤이 되면 거리의 냄새가 바뀐다. 스쿠터나 자동차의 소음이 줄어든 만큼 가로수들이 활기를 띠는지, 도시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변한다. 실제로 런아이루나 둔화베이루 같은 큰 거리는 도로에 가로수를 심은 게 아니라 가로수 속에 도로를 만든 것처럼 보일 만큼 나무가 많아서, 밤이 되면 도시의 네온 불빛에 반사된 환상적인 남국의 숲이 떠오른다. 밤에 여기 런아이루를 걷다 보면 하루카는 왜 그런지 맨 처음 이 거리를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이미 육 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때는 설마 자기가 훗날 이 거리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p.51

 

두 사람 사이에 육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놓여 있는 건 아니었다. 공항 한 귀퉁이에서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는 머나먼 날에 둘이 함께했던 농밀한 시간이 보였다. 찌는 듯 무더워서 잠들지 못했던 여름날 밤, 기분 전환 삼아 산책이라도 나가자며 데리러 왔던 나카노의 얼굴이 떠올랐다. (…) “……나, 왔어”라고 가쓰이치로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래, 잘 왔어”라고 나카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내미는 나카노의 손을 가쓰이치로가 부여잡았다. 그 감촉을 서로 확인하듯 힘껏 움켜잡았다. 그 힘이 남아돌아 나카노의 가슴이 부딪쳐왔다. 가쓰이치로도 지지 않으려고 그 등을 꽉 끌어안았다. 그 순간, 가쓰이치로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흘러나왔다. “요코가, 요코가 죽었어”라고. (…) 가쓰이치로는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요코가 죽은 후로, 아니 육십 년도 더 전에 이곳 타이완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날 이후로 줄곧 가슴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뭔가가 지금 별안간 쏟아져 나왔다.

--- p.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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