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 패밀리 - 로스차일드 250년 부의 비밀
요코야마 산시로 지음, 이용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 동안 다른 책에서 다뤄지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비교적 음모론의 배후로서의 면모가 강조되어 왔다.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세계에는 정말 많은 부자들이 있다.

그 부자들은 끊임없이 욕망을 키워하고 그 부를 대대손손 유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자도 3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듯이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가 물려주신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먹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확인할 수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세계 경제를 여전히 대대손손 주무르는 가문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로스차일드이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듯이 무려 250년 동안을 세계 경제의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사실 이 로스차일드 가문 때문에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어릴 때 탈무드를 꼭 읽어야 하는 줄 알고 여러 번 읽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처럼 자식을 잘 키우려면 탈무드를 읽어야 한다며 서점에 책들이 넘쳐났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도 미국 경제를 쥐고 있는 것이 유대인(로스차일드)이라든지, 유대인들은 가족들끼리만 부를 나눠가진다던지..

등등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것이 모두 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였음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등장한다.

러일전쟁의 배후에는 유대계 미국 자본가 야곱 쉬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폭넓은 협조가 큰 영향을 끼쳤고 그로 인해 일본의 세력이 확대되어 갔다는 것이다.

고종황제는 이 와중에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로스차일드와 만나려 했지만 그것이 무산됨으로서 우리는 결국

일제 강점기 시대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정말 슈퍼리치 패밀리인 "로스차일드 가문"

그들이 어떻게 세계를 주무를 수 있었고 지금도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지 설명하고 있다.

음모론에 입각한 다른 책들보다는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어나갔던 것 같다.

 

 


 “황금에서 와인까지”
부자가 되려면 로스차일드에게 배워라!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로스차일드는 로스차일드라는 성만으로도 충분하다. 기타의 설명이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큰 부를 누리고 있다.
사실 부자들은 많았고, 지금도 많다. 시대를 풍미한 부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2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로스차일드를 ‘부자’가 아닌 ‘슈퍼리치’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50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면 8세대 동안 부가 이어진 것이다. 부자는 3대를 못 넘긴다는 우리 속담에도 있듯이 8대 동안 부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로스차일드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며 이들이 어떻게 부를 형성 유지하는지 잘 보여준다. 로스차일드에 대한 책은 대부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 책은 있는 그대로의 로스차일드를 보여준다. 또한 로스차일드는 우리나라 근대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친러시아 정책을 펼친 고종황제가 일본과 맞서기 위해 로스차일드와 만나려 했던 것이다. 일본의 방해로 만남이 무산되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어떻게 슈퍼리치가 되었나!
저자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지금의 부를 형성,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를 다섯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가족 경영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사라진 메디치 가문이나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록펠러 가문과 달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가족 경영 덕분이다. 로스차일드는 아들만 사업을 계승할 수 있다. 최근 전문경영인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이는 가문의 재산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지만 가문에 충성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 외에는 없다는 것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생각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744년에 태어난 암셀 마이어에 의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원했다. 암셀 마이어의 셋째 아들 나단은 1798년 영국 맨체스터에 진출한 후 런던의 금융가를 장악하였다. 이후 1811년 막내 야곱이 프랑스 파리 분가를 형성하여 독일, 영국, 프랑스를 관통하는 거점을 만들어냈으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도 분가를 형성함으로써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글로벌 경영 네트워크를 창출하였다. 이러한 초국가적인 경영과 연계망은 자연스럽게 로스차일드 가문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족 경영’으로 진화하였다.
둘째는 정보력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은 랍비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당시 랍비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히브리어, 라틴어, 아랍어 그리고 거주하는 지역의 언어들을 모두 섭렵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여러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며 그 지역의 특수성을 역사적 안목과 현실적 상황에서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어 암셀이 아들들을 런던, 파리, 비엔나, 나폴리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보가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이어 암셀은 그의 자손들을 유럽의 요지에 정착시켜 유럽 전체를 아우르고 통합시키는 국제적 지식정보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로 로스차일드는 당시 어떤 국가의 국왕보다도 먼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기도 했으며 가문의 필요에 따라서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때 유럽에서는 로스차일드가 돈을 빌려준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믿었다.
셋째는 생존이다. 랍비 교육을 받으며 글로벌 인재로 자란 로스차일드 후손들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은 히브리 문자에 북동부 독일 지방의 언어를 결합해 중부 유럽의 유대인들이 구사했던 이디쉬어로 소통하는 비밀 정보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유럽과 전 세계에 퍼져 있던 랍비를 중심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암호화된 정보망과 결합해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방위적 ‘네트워크 경영’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이는 생존능력을 극대화시켰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나 미국의 록펠러 가문처럼 단일 국가를 기반으로 경영을 하지 않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본가로 하되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리고 이탈리아 나폴리에 진출하여 글로벌 경영제국을 구축하였다.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가 서로 협력하며 전략적으로 움직였기에 근현대 유럽의 혁명과 전쟁 속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생존 능력 덕분에 로스차일드 가문은 단순한 거부를 뛰어넘어 슈퍼리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넷째는 고난 극복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지역과 국가를 뛰어넘는 전방위적 네트워크 경영과 유대인의 노마드 정신을 융합시켜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렀다. 탈무드는 “기회가 왔을 때 모험하지 않는 사람은 평범한 무리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영국으로 건너간 셋째 아들 나단은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지만 6년 만에 자본금 2만 파운드를 5만 파운드로 늘렸다. 또한 나폴레옹전쟁과 미국 독립전쟁에 깊이 관여해 세계사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로스차일드 가문의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는 데이비드 마이어 로스차일드(1978년생)의 진취적인 모습은 고난을 어떻게 성장의 밑거름으로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2006년 남극과 북극을, 2010년에는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또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녹색경영’의 최전선에서 어드벤처 에콜로지의 주재자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경영은 또 다른 형태의 금융산업이라는 것을 잘 아는 데이비드는 남극, 북극, 태평양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런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수많은 유럽의 혁명과 전란 속에서 가문을 이어온 로스차일드만의 고난극복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다섯째는 변화다. 로스차일드 런던 분가는 2004년 금 가격 결정권을 포기하고는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의 재편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파리 분가의 대대적인 지원 속에 2007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은행 부문을 완전히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통해 스위스에 또 하나의 핵심 본거지를 마련하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비엔나 분가’의 부활이다. 비엔나 분가 근처에서는 매년 다보스 경제포럼 및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글로벌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진 2011년 빌더버그 회의도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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