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달달한 연애소설은 아니다.

마치 독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소설이다.

아마도 희곡작가 최인석의 글이기 때문에 더욱 영화적인 느낌이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애하는 날은 그 가볍고 로맨틱할 것 같은 제목과는 영판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끈적하고 답답하고 괴로운 그런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무엇알까?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가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남녀간의 사랑, 그것도 일반적이지 않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사랑의 방향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계산적인 그런 사랑 말이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이 점점 계산적이 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5분 더 공부하면 아내(남편)이 달라진다"라는 고등학교 급훈의 내용이 떠오른다.

웃고 넘길 수 있을만도 하지만 현세태를 빗대고 있는 것이라 씁쓸하기도 하다.

서로의 조건을 끼워 맞추고 그것에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가정이 있으면서도 쾌락을 위해서 윤리를 벗어던진 사람들...

나에겐 모두 부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네 인생 중의 한 일면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번 사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데로 즐기며 살자~라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나도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꼭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가족간의 사랑, 신뢰, 내 자녀들의 보호자로서의 책임의식...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것조차 다 벗어던질 수 있다면 그는 어디까지 온 것일까?!

 

슬프고도 잔인한 연애소설 속에서 혼란스러움이 더 커졌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째서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일까

2010년 가을, 계간 《문예중앙》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화제를 모으며 일 년간 연재된 최인석의 장편소설 『연애, 하는 날』이 출간되었다. 연애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연애 그 자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연애로 인해 파멸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의 구석구석을 포착해낸 리얼리즘 소설로, 열 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중견작가 최인석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는 여자와 애초에 사랑보다는 물질의 논리에 길들여진 남자, 그리고 그들을 얽고 있는 다중의 관계들 속에서 은밀한 연애가 꿈꾸게 하는 것, 맛보게 하는 것, 또 그것이 돌려주는 것,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묻고 있는 이 소설은, 매혹적이면서도 파멸적인 연애들이 꽃피고 스러져가는 참혹한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욕망과 절망의 공간에서 붙드는 삶의 한 장면

『연애, 하는 날』은 무언가를 가지기보단, 더 많이 잃어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달콤한 연애, 구원하는 연애는 경험한 ?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연애, 연애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참혹한 현실의 풍경이다.

연애라는 것은 어찌 보면, 기대하기로는 가장 은밀하고 가장 친밀한, 어쩌면 결혼보다 사회적 인지를 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은밀하고 사적인 인간관계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인간관계가 집, 이라는 것과 더불어 물질이나 물적 관계로 하여 어떻게 피폐하고 참혹한 지경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인석(《문예중앙》 127호 대담에서)

그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욕망하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고 또 거듭 상실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딘가 익숙하다. 지금 현실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삶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숙하다고 느끼는 순간 또 한없이 낯설어진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그들은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원하고 또 몸을 섞지만, 그 순간에도 서로 다른 감정과 이면의 목적을 헤매고 있다.
이 시대의 부정할 수 없는 한 풍경들, 뜨거우면서도 한없이 냉정한 연애의 두 얼굴을 그려내면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일그러진 욕망의 추악함이나 절망의 나락, 혹은 맹목적인 희망이 아니다. 그것을 견뎌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장면들, 결국 삶을 버텨낸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슬픔,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 감당해내야 하는 세계, 그런 자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난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를 봅니다.
―최인석(《문예중앙》 127호 대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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