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독일소설은 아주 오랜만에 읽어 본 것 같다.
그리고 추리소설도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 속에 빠져들어 버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영화판권도 판매되었다고 하니 나중에 극자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자극적인 영미계, 일본계 추리소설을 주로 읽었던 나에게 실존적인 성찰이 담겨있는 유럽의 추리소설은 확실히 색다르다.
서양철학이 꽃피웠던 서유럽답게 인간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도 다분히 실존주의 철학이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심리란 결국 도저히 원인이나 이유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소설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묘사 자체가 간결하고 인위적이지 않다.
이 소설의 소재 자체는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인질극, 정신과의사, 범죄심리학자, 자살, 죽음의 게임...
어느 하나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확실히 신선하다.
이것이 작가의 역량이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개인적으로 빠른 템포로 사건이 전개되어 나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앞부분은 조금 늘어졌지만...
정신과의사와 범죄심리학자의 대결...
둘 다 다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고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 책에서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즉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단순한 사이코패스인 인질범이 아닌 정신과의사...
사랑하는 딸을 잃고 정상적인 상태의 협상을 벌이기 힘든 범죄심리학자...
그만큼 서로를 향한 심리게임이 쉽지 않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나오면서 파헤져지는 사건들의 이면과 반전... 충분히 스릴 넘친다.
오랜만에 읽은 추리소설이 만족스러웠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런 소설류를 탐닉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과의사 얀 마이가 “그들을 믿지 마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약혼녀가 사라진 뒤 라디오 방송국에서 광기의 인질극을 벌이며 시작된다. 그는 생방송 전화연결 중 무작위로 선정된 청취자가 인질범이 원하는 구호를 외치지 못하면 인질을 한 명씩 사살하는 ‘캐시 콜 라운드’를 시작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죄심리학자 이라 자민이 투입된다. 그녀는 첫 딸의 자살로 인한 고통을 못 이기고 자살을 감행하려던 찰나였다. 결국 두 사람의 심리 게임이 시작되고 이를 멈추기 위한 협상 조건은 오직 얀의 약혼녀를 데려와야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8개월 전 사망한 상태임이 밝혀진다. 그사이 상부의 조치로 폭력 진압이 이루어지고 마피아까지 약혼녀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면서 사건은 더 큰 미궁에 빠진다. 사건의 종국에 얀 마이의 죽은 약혼녀의 비밀과 이라 자민의 자살한 딸의 비밀이 동시에 밝혀지며 소설은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한 사람은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남는다”는 관계의 이면성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작가는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인질극이라는 소재를 정신과의사와 범죄심리학자가 펼치는 고도의 심리 게임을 통해 간결한 문체와 빠른 템포로 전개한다. ‘주로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재미를 추구하는 영미계 스릴러와 달리 유럽의 스릴러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영혼의 상처를 파고들면서 삶의 현실을 드러내는 경향’이 강하다.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는 스릴러 특유의 극적 긴장감 속에 인간의 심리와 실존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냄으로써 유럽 스릴러 문학의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