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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평점 :
바람이 분다, 가라
오래간만에 한강의 작품을 접했다. 채식주의자 이후 그녀의 작품을 기다렸는데 새책이 나왔지만 읽다가 도중에 멈춰머렸다. 역시 한강의 작품은 조금은 모호하고 , 외로우며 차갑다는 것이다. 다시 집어들었을 때 그전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까 했지만 기우인듯, 각인된 한강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오면서 다시 작품속으로 빠져든다.그리고 다시 정독하게 된다. 그녀는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집중에서 읽어야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한줄 한줄 정성스럽게 읽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갔다. 그렇게 이 작품을 3개월에 걸쳐 읽었다.
처음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친했던 친구 인주의 죽음이 자살로 미화되어 그녀의 작품과 함께 세상에 나오는 책을 저지하기 위해 이정희가 동부서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인주가 남긴 어린 딸에게 엄마가 공식적으로 자살했다고 알려져 알게되었을때 아이가 맡게될 충격때문에 이정희는 그녀의 자서전을 출판하려하는 강석원을 만나고 , 인주가 죽기전까지의 행적을 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사이 인주와 정희의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모습, 인주의 가정사와 인주가 함께했던 삼촌의이야기, 그리고 삼촌과 정희의 조심스런 사랑등이 중간중간 끼어든다.
하지만 이 책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삼촌의 그림이다.수묵화를 그리는 삼촌의 그림에 대한 묘사가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한지에 수묵의 농도만 조절 될 뿐 검정의 느낌이글을 읽는 내내 먹냄새가 나는 듯 하다.
결국 한 남자의 집착같은 사랑과 40년전 똑같은 장소를 찾았던 딸과 엄마의 운명과삶의 이야기가 자못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한강의 작품은 읽으면서 내내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때로 재미라기 보다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책을읽는 것도 있다. 이 작품도 처음 그녀의 장편을 만났던 검은 사슴과 조금 같은 분위기였다.
그것이 아마 그녀의 느낌을까.저번에 읽은 그녀의 에세이에서 그녀에게도 어린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의 조금 우울하고 외로운 느낌에서그녀가 결혼하지 않았을 거란 나의 생각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 작품을 4년에 걸쳐서 썼다고 한다.
그녀가 공들이고 고민한 만큼 다양한 생각의 흔적이 책에 남아 있고 독자의 마음속에 남는다.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어렸을 때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아 펼쳐보았던 책으로, 그 당시 부커상을 수상하여 막 유명해진 참이었다.
1부는 물 흐르듯이 문장만 넘겨 읽었고 2부는 문장을 넘어오는 역겨움 때문에 채 읽지 못했다.
책을 덮은 후에는 어느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 포르노적인 묘사가 얼마나 불쾌했는지, 채식주의자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뜻 모를 거부감이 다가온다.
결론을 말하자면, 여전히 내용은 역겹고 불쾌했다.
그런데 전과 다른 점은, 그 불쾌함의 원인이 명료해졌다는 것이다.
영혜의 말을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조건적인 순응을 강요하는 그의 가족이나, 그를 이해해 보려 한 적도 없으면서 전과 다른 낯선 면을 발견한 양 놀라던 남편이나, 그를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본인의 추악한 욕망을 실현하려 애쓰던 그의 형부가, 불쾌함의 원인이었다.
1부와 2부가, 그러한 불쾌함을 자아내는 인물들의 시선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영혜의 행동이 제멋대로 해석된다는 점이, 오히려 현실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영혜를 미쳐가는 사람으로 여기는 남편의 시선과 본인의 예술적 욕망을 실현시켜줄 뮤즈로 여기는 형부의 시선은 전부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맴돈다.
인혜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3부의 마지막에서야 결국, 영혜의 숨죽인 몸부림은 조금이나마 이해받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인혜도 영혜와 같이 손찌검을 맞는 딸이었고, 수레에 매달린 개였으며, 이해받지 못하나 그 어떤 것이든 감내해야 했던, 식물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만 보였던 세상이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쌓아올려진 제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제정신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 쳤는데 그것마저 한계에 다다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흉내만 내고 있던 거라면,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데 흉내만 내느라 진짜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삶이라면, 짐승처럼 포효하느니 속으로 움츠러들어 흙과 하나가 되고 싶어지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지만, 끝까지 완독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영혜에게 쏟아지는 모질고 냉정한 시선들, 폭력적인 시선들이 문장을 넘어 나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그를 자신의 이해 범주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행동은 숨이 막히고 맥이 빠지는 것들이었다. 현실의 몰이해와 손가락질이 그대로 재현되는, 허구의 것일 텐데도 결코 허구 속에서 머무르지 않는 감각들을 그대로 받아내는 건 참 고된 일인 것 같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라는 문장이 발화되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라는 시선이 따라붙는 건 언제쯤 변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내 여자의 열매
이책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인 것 같다.
첫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내 여자의 열매에는 채식주의자 연작의 씨앗이 된 내 여자의 열매 등을 포함한 단편 여덟 편이 실려있다.
한강의 장편 소설을 읽다 단편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을 만나게 되니, 글의 짧은 흐름에 숨 고르기라도 하듯 전개되는 단편들 속에서 왠지 모를 심오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타인의 몸을 만지듯이 떨리는 손을 뻗어 아내의 멍든 어깨를 쓸어보았다. 얼마나 아프게 다치면 이런 멍이 드는 것일까? 14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아내는 어디에 부딪혀서 생긴지도 모르는 멍을 남편에게 보여준다. 작았던 멍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고 그 멍이 커짐과 동시에 하나의 행동도 점차 변해간다. 마치 식물이 햇빛을 받으려는 것처럼 알몸으로 햇살을 쬐고 있는 아내. 그런 아내는 어떤 음식물도 삼킬 수 없게 되고 얼굴마저 푸른빛을 띄기 시작한다.
아내가 삼킬 수 있는 것은 단지 물뿐이었을 뿐. 그렇게 아내는 마치 식물처럼 자라나며 씨앗을 만들어 낸다. 그 씨앗을 화분에 심으면 그 화분에서 살아나게 되는 것일까?라느 생각을 하게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떠올리게 하는 내 여자의 열매는사랑 앞에서는 어떤 주저함도 없는 듯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그녀. 그와의 시작은 의외로 쉽고 가벼웠으나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의 고단함과 그녀의 고단함이 만나 쓰디쓴 환멸과도 같은 감정을 안겨주고 있는 어느 날 그는. 집착하는 사랑이 아닌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던 그녀와 단 한 사람 그녀만 바라보던 그가 만들어낸 씻을 수 없는 상처들을 통해 사랑이 쉽지 않음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마치 산다는 일이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아무도 과장되게 웃거나 짜증 내거나 농을 던지거나 분위기를 바꾸어보려 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토록 어렵게 부딪혀가면서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흰 꽃. 그냥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갈 수만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흰 꽃이었다.
우리의 삶은 왜 이리도 고단하고 힘겨울까. 시간의 흐름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은 어떨까.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단순함이 아닌, 온갖 장애물에 부딪쳐 상처로 얼룩지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어진다는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