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 - 소설가와 아나운서가 만나 세종을 이야기하다
정도상.최재혁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소통하지 않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

 

" 그의 판단 기준은 오직 백성이었고, 조선의 미래였다. "

 

요즘 돌아가는 정치판을 바라보면 제일로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600년전 세종대왕께서는 백성을 섬기며 그들의 고통이 뭔지를 헤아리며 오로지 그들과 소통하기를 언제나 바래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 정치를 하시는 그분들은 과연 어디에 판단 기준을 두시는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목소리는 과연 귀담아 듣는지 아쉬울 뿐이다.

항상 백성들을 위해 근심을 내려놓지 않으셨던 분이고, 중국과 다르기에 우리의 우리나름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

 

어찌 그 위대한 세종대왕께서도 시련은 없으셨을까?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셔서 국본이 될수 없었기에 자칫 우리는 한글을 만날수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종의 결단으로 그분은 제왕이 되실수 있었고, 우리는 그분이 창조하신 과학적인 한글을 만날수 있었다.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에 대한 이야기는 충녕이 뛰어난것을 알고 일부러 미친짓을 했다든가, 원래 왕의 제목이 아니었네라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어 솔직히 어느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후자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왜 우리 역사는 모든걸 미화만 시키는 것일런지... 어렸을적 학교에서 배운 것은 어째 들어맞는 것이 이리도 없는지 한스럽다. 어쨌든 충녕이 제왕에 오를수 있었던 이유가 전자이든 후자이든 충녕은 이미 제왕으로서의 학식과 자질이 충분하였다고 볼수 있겠다.

 

세종대왕은 엄청난 독서가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본인은 물론 신하들에게 '사가독서'라는 일종의 재택근무를 명하기도 했다. 이는 학자들이 어느 전문분야에 대한 깊은 독서를 해야만 연구에 전념할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씽크탱크의 역할을 할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결단이었다.

 

알면알수록 세종대왕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왕인듯 싶다.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존경스럽고, 엄청난 독서가였다는 사실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카리스마가 존경스럽다. 언제쯤 우리는 그런 정치인을 다시 만날수 있을런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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