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파괴자 1
안병도 지음 / 피앙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스토리텔링의 귀재 안병도 작가의 신작. 장르파괴적 상상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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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한국에서의 일 년
베라 홀라이터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KBS에서 방송중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베라는 독특한 말과 행동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를 인터넷상에서 다른 이슈로 만나게 되었다. 바로 '한국 비하'사건이었다. 문제의 책은 그녀가 한국에 대해 쓴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당시 독일어로 출판된 서적을 본 몇몇 네티즌들이 특정 문구를 의역해 인터넷에 올렸는데 이것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관련 링크(바람나그네님)

이와 관련되어 좀더 알고 싶은 분들은 위에 링크한 포스팅을 권한다. 이제부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미수다>에 출연해 우리에게 ‘베라’로 익숙한 베라 훌라이터는 1979년 독일 하일브론 태생으로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에서 문학, 정치학, 역사학을 공부했다. 또한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력이 강해 스물여섯살 때 베를린, 뉴욕, 파리에서 살아봤고, 일본와 아르메니아는 물론 카메론에서 일한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을 지나 중국까지 여행했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그녀와 한국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다. 다른 독일인처럼 그녀 역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88올림픽과 서울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한 아시아 학생이 내놓은 설문지 때문이었다. 한국에 대해 묻는 설문지를 보고 그녀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고, 한달 정도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한달이 하필이면 한참 더울 8월이라 그녀는 찌는 듯한 더위에 고생하고,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이용할 식당을 찾지 못해 편의점에서 며칠 동안 두유와 단팥빵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 한달 기간동안 그녀는 ‘조’라는 한국청년을 만났고,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한달 뒤 독일로 갔던 베라는 조를 만나기 위해 다시 20킬로 짐을 싸서 서울로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 방송에 <미수다>란 방송이 생겨난 계기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알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궁금해 하는 동양인의 속성이 <미수다>가 탄생하게 된 계기일 것이다. 실제로 이웃 나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미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나와서 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미수다>와 일본 프로가 다른 점중에 하나는 일본에선 외국인 패널들이 적나라하게 자신이 본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미수다>는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린 어느 순간부터 <미수다>에 나오는 ‘미녀’들이 각 나라를 대표할만한 인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저 한국말을 더듬더듬하는 외국 처녀가 한국 문화를 겪으며 느낀 재밌는 에피소드를 듣는데 열중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나라에 올만큼 견문이 넓고 생각이 깊은 이들이 많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카테고리 시/세이
지은이 베라 홀라이터 (문학세계사, 2009년)
상세보기

어 쩌면 우리가 그녀의 책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전에 친한파로 알려졌던 미즈노 교수가 나중에 ‘혐한류’ 책을 내며 험한파였음이 드러난 ‘배신’에 대한 경험이 떠올랐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폄하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해서 오히려 느끼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책이다. ‘에세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과학저서로 분류해도 될 정도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베라가 쓴 <잠 못 이루는 밤>은 한 독일여성의 비춘 서울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거기엔 우리가 감추고 싶거나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베라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위해 애쓴다.

가령 예를 들어 베라가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 중에 하나는 책을 통해 알던 ‘아시아인의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는 인상은 여지없이 깨지는 부분이다. 고작 십오분 남짓한 이화여대 첫 등굣길에서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녀를 밀치고 가는 경험을 해야했다. 그것도 한마디 사과없이. 지하철도 마찬가지. 빈자리가 생기면 서로 밀치고 밀리는 경험을 처음 당한 베라는 당혹감에 휩싸인다.

한국어를 모를 거라 생각하고 외국인을 보면 시시콜콜 외모에 대해 감상평을 늘어놓고,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대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당혹감은 늘어만 간다.

SKY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피나는 노력과 고난 그리고 그걸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분석하고, 한국식 ‘블라인드 데이트’인 맞선과 미팅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해나간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수필이지만,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베라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통찰력이다. 그녀는 그냥 재밌는 경험 혹은 불쾌한 경험으로 끝날 수 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쓴다. 마땅한 답이 없을 때는 ‘왜’ 그런지 자신만의 이론을 세워본다.

200페이 지가 조금 넘는 책은 빨리 읽는 사람은 두어시간만에 읽을 만큼 분량은 만만한 편이다. 그러나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베라는 한국인과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대해 메스를 대고 예리하게 해부해낸다. 그 과정에서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무시하고, ‘한류’를 통해 우리가 일본을 앞섰음을 기뻐한다는 사실등이 드러난다.


베라가 책에 쓴 톤은 객관적인 입장을 띠려한 탓인지, 불편함을 넘어 종종 불쾌해질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정보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우리 앞에서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관련 전문가는 아니지만 베라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해 상당히 깊고 넓은 폭으로 분석과 통찰을 해낸다.

오늘날 우리에게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책이 나왔다는 건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비록 서두에 밝힌 것처럼 베라는 이 책의 한국판이 나오기 이전에 언론의 호돌갑으로 잘못된 오역과 인용등이 넘치는 바람에 네티즌과 언론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말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날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베라의 시선을 통해 우린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갖게 된 것이다.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거리를 주는 단순한 수필로 볼 수 없는 무게의 책이다.

미수다 베라 논란이 하나의 논란으로 끝난 다면 매우 곤란하다. 우린 베라논란을 통해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네티즌 문화와 언론 플레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말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날의 한국을 제대로 그려낸 책이라 여겨진다. 단순히 IT기술강국이거나 유일한 분단국가로 막연하게 알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생생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살아있는 한국’을 편견없이 바로 볼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흠 없는 나라’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단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에겐 불편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낸 책이 독일에선 나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스캔들을 일으키긴 했지만, 우린 <잠 못 이루는 밤>을 꼭 읽어봐야 한다. <미수다>의 출연진이 어느샌가 연예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그들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을, 그녀의 책이 대신 더욱 훌륭하게 우리를 비추는 창으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가히 일본인들을 논한 베네딕트 교수의 <국화와 칼>에 비견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다. ‘한국사회와 한국인론’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책이다. 베라 논란을 넘어서 오늘날의 우리를 보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리라 본다.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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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마음에 안드는 상대에게 먹이면 2시간 동안 내내 실수만 하게 만드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겼을때 먹이면 100% 확실한 노 땡큐 사브레 쇼꼴라, 시험이나 출장처럼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서 도와주는 마인드 커스터드 푸딩...
 

실제로 있다면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은 음식들. <위저드 베이커리>는 판타지와 동화 그리고 호러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어린시절 엄마에게 이끌려 청량리역에 버려진 경험이 있는 열여섯 살의 주인공은 그 이후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의 자살 이후, 아버지가 재혼한 새어머니와 딸은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긴 새어머니는 여러 가지 자잘한 핑계를 들어 그를 못살게 군다. 그러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새동생 무희가 강간을 당한 것. 새어머니의 추궁을 견디다 못한 무희는 범인으로 주인공을 지목하고, 그는 쫓기듯 나가 위저드 베이커리로 들어가게 된다.

알고 보니 마법사인 점장이 온갖 마법의 효능을 지닌 빵을 만들어내고, 인터넷 등을 통해 그 효능을 체험하고자 오는 군상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마음이 동해 빵을 이용해 연인이 되었지만, 이내 졸업 후 백수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우등생인 동급생이 싫어서 설사를 하게 만들었다가 그녀의 자살로 인해 괴로워하는 여고생 등.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통해 보여지는 현대인의 모습은 흉칙하기짝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진심으로 뉘우치지도 않는다. ‘그저 호기심에 했다’란 식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보여지는 설정과 이야기들은 기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써먹은 소재들이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는 재밌고, 새롭다. 그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학벌지상주의에 빠져버린 부모와 아이들. 무한경쟁에 내몰려 친구를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로 보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이기심의 끝을 달리는 현대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들을 향한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나는 이에 반대한다. 이건 청소년용 소설이 아니다! 현대인을 위한 우화다.

구병모 작가는 세밀하고 농익은 묘사로 <위저드 베이커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금방이라도 한입 베어먹고 싶은 빵과 과자를 묘사하며,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식객>의 그것처럼 세세히 묘사한다. 빵에 얽힌 개개인의 사연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다중결말을 취한 방식은 새롭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 마음에 든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슨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 ‘존재’니 ‘철학’이니하며 현실의 독자를 외면한 채 자신들끼리 ‘예술’하는 듯한 경향을 보여왔다. 그런 탓에 현실의 독자들과 괴리되어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해버렸다.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한국 소설이 아니라 일본 소설을 찾는 이유는 그런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렇지 않다. 바로 우리 근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시에 짓눌린 아이들. 삐뚤어진 욕망에 몸을 내어맡긴 어른들.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씁쓸하다.

동화라면 아름답게 포장될 이야기들이 여기선 핏빛으로 물든 잔인한 현실로 묘사된다. 그런 탓에 우린 더더욱 <위저드 베이커리>에 가고 싶어진다. 작품의 소재와 이야기 구성에 참신성은 아주 높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붙여내어 현실감을 높였다. 오늘날 우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있는지 작가는 애정을 가지고 써내려갔다.

비록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상관없는 판타지가 아니기에 읽는 이의 마음은 더더욱 아파온다. 별 다섯 개는 주지 못하겠다. 그러나 흡인력 있는 묘사력과 스토리텔링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런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보면 국내 소설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기대 없이 본다면 꽤 재밌게 볼만한 책이다.

마음만 먹으면 두 세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도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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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청소년문학 28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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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당신이 이 책을 뽑아들고 10분내에 빠져든다는데 10만원을 걸겠다. 내가 읽은 책이 23쇄인데, 책을 읽고나니 왜 이렇게 많이 찍혔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속의 화자는 이제 겨우 열한 살 소녀는 조지나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그녀에겐 믿기지 않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남기고 간 것은 거대한 유산이나 통장이 아니라 겨우 25센트 동전 꾸러미 세 개와 1달러짜리 마요네즈 한통 뿐.


결국 엄마와 조지나 남동생은 자동차에서 사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인 루앤에게 들킬까봐 두려워 이야기조차 못하는 조지나. 여기까지 묘사해놓고 보면 이 책의 분위기는 한결같이 어두울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이책의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다. 게다가 유머스럽다. 조지나는 어려운 생활속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며 당당하게 행동하고 싶어한다. 물론 한없이 위축되고 도망가고픈 순간들이 그녀를 곧 찾아온다.


그녀의 친구는 자동차에서 온 식구가 생활하는 것을 알아내고, 세탁소에서 엄마는 잘린다. 거듭되는 불행에 조지나는 우연히 개를 찾는 포스터를 보고 영감을 받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은 조지나가 불행에서 벗어날 돈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이 책의 미덕은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 데 있다. 물론 이 책은 도덕적이다. 결말은? 물론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읽는 내내 가슴이 떨린다. 과연 이 다음에 조지나는 무슨 행동을 벌일지, 그녀가 벌일 일 때문에 불행한 결말을 맞진 않을지 상상하며...


이 책은 플롯이나 메시지를 놓고 보면 이 전의 성장소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문체는 더없이 유쾌하고 경쾌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매력적이며 매우 사실적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는 시시때때로 욕을 퍼붇고 절망하고, 철없는 동생은 조지나의 앞길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그러나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넘치는 사랑으로 그녀를 보아준다.


책을 읽는 내내 ‘어른’의 모습에 감명받고 부러웠다. 살아오는 내내 어른다운 어른을 별로 만나볼 일이 없었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어른들은 ‘나이만 성인’ 아이들이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기를 원하고, 다른 이에게 애정을 베풀 줄 몰랐다.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기만 한 무키 아저씨. 더 없는 애정으로 조지나를 감싸주는 카멜라 아줌마. 참으로 이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즐겁고 따스하고 안타까웠다. 열한 살 소녀 조지나의 모험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 땅위에 서 비슷한 상황에 허덕이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과연 여기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녀들을 이끌어줄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있을까?’란 생각이 맴돈 탓이다.


책은 매우 얇고 가볍고 활자는 큼직하다. 작심하고 본다면 두세시간에 독파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두고두고 씹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판타지지만 여기에 비극적인 결말을 담겼다면 아마도 나는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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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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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런 무어의 <브이 포 벤데타>는 한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다. 그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항상 세익스피어 희극의 대사를 읊조린다. 허나 칼을 휘두르고 폭발물을 터트리고 사회혼란을 획책한다. 정권에선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책은 3차대전이후 파시즘으로 물든 영국의 가상 미래를 담고 있다. 앨런 무어의 <워치맨>이 그렇듯 말풍선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대사와 그 글자보다 더 숨막힐 듯 채워지는 의미부여는 '만화책 아닌 만화책'으로 다가온다. 

지난 10년간 우린 자유를 누리면서 다신 예전의 독재가 불가능하리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이 집권을 한지 불과 1년만에 10년 아니 20여년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유는 공기와 같다. 누릴땐 그게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빼앗기면 그제서야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을 브이라 부른 사내는 원래 실험실의 모르모트같은 존재였다. 어느날 그가 예기한 사고로 인해 자유를 되찾고나서야 삶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 작품의 위대한 점은 파시즘으로 물든 한 국가내에서의 인간들의 군상을 잘 그려냈다는 점에 있다. <브이 포 벤데타>는 노골적으로 자유를 찬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시즘 국가의 면모를 예리하게 파헤쳐 냄으로서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지 일깨운다. 

물론 우린 브이의 방식에 찬동할 순 없다. 그는 정보를 교모히 바꾸고 사람을 유괴해 죽이고 심지어 여주인공 이비를 감금해 고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평화시위만으로 과연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3.1 운동은 물론 훌륭한 정신을 지닌 비폭력 운동이었지만 문화 통치로 이름 바꾼 교모한 통치가 우리 민족을 기만했을 뿐이다.  

작년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불태웠던 촛불 시위도 결국 명박산성에 의해 소통이 막힌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물론 촛불은 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다시 타오르기 까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브이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테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끝은 자신의 목적과 사회의 목적을 일치시킨다. 맘만 먹으면 그는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주인이 아니더라도 꽤 영향력 있는 인물로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버렸다. 과감히... 

그는 세상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른채 죽어 사라졌다. 허나 그의 정신만큼은 이비를 통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통해 계속 계승될 것이다.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유의지이자 어떤 독재권력에도 꺾일 수 없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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