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
손길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손기창 (손길)

1994년 청양군에서 태어났다.

발자국을 남기는 삶이 가치 있다고

답을 내려서 글을 쓰고 있다.

 

겨울에 읽어도 좋겠지만,

지난 겨울을 추억하며 봄에 읽는 맛도 좋았던 책.

 

사람도 본디 연어같은 성향을 띄고 있나 보다. 소설 속에서도 힘들 때면 고향으로 돌아가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스토리가 많은 걸 보면 말이다. 달팽이 식당이 그랬고,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그랬다.

 

남은 방학 동안 할머니 댁에 가있기로 했다. 하루 종일 방에만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서 내가 부모님께 부탁을 한 것이었다. 아빠는 쉽게 승낙했다. 비어있는 시골집에 누구라도 가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았다.

시골집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쭉 빈집이다. 할머니께서 일평생을 그곳에서만 사셨기 때문에 아무도 집을 처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p.14

 

할머니 댁은 고속버스로 두 시간을 가야 한다. 잠을 자지 않는다면 꽤나 소모적인 시간이 되기 때문에 시집 한 권도 챙겼다. 정말로 읽을지 확신은 없지만, 손에 들고만 있어도 분위기를 내는 좋은 소품이 될 것이다.

빌딩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섰을 때 나는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을 켰다. 배가 불룩한 가방의 지퍼를 간신히 열자 시집이 숨을 쉬지 못하겠다며 한쪽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p.17

 

<집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빈 집. 주인공은 방학 끝물을 맞아 그 집에 머물기로 한다. 사람이 안 사는 집은 금방 폐가가 되는 법, 아버지가 더 반겨하셨다고 했다. 갑자기 외갓집이 생각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2층 집을 버려두고 1층의 쪽방에서 사셨다. 단독주택이 얼마나 많은 관리를 요하는지, 덩그라니 큰 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울 뿐이었다. 그 시기가 지나선 곳곳에 흩어진 여덟 자식들의 집에 달팽이처럼 번갈아 계셨다. 잊은 듯 지내다 필요한 물건이나 서류를 챙기러 빈집에 가면 얼마나 마음이 스산해했던지. 이제 재개발이 되어 그마저도 빈집은 사라져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잊혀졌던 장기기억이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다. 책의 스토리와는 별개로 그 느낌과 서정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을 반가이 마주했다. 요가가 안 쓰는 근육을 쓰게 만드는 것처럼, 독서 또한 한 쓰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기능이 있다.

 

종교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진리라는 환상의 동물을 오래전에 포획해 자신들의 건물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는 전국 곳곳에 체인점을 늘려가며 진리를 보러올 관람객을 모으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관람이 허용되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직장인들이 쉬는 주말인데, 이때 종교 단체는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관람료를 걷는다. 나는 그 모습이 진리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나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일으킨 것은 종교가 맞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더 깊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철학과에 입학했는지 모르겠다. p.34

 

개인적으로도 종교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무턱대고 빌고, 바라는 기복에서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배우는 관점으로 말이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이사 날짜나 방향을 심사숙고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그 또한 자유로워지고 있다.

때 아닌 코로나 난리를 겪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위생에 힘쓰는 우리의 모습이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듯 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정화수나 무당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고 관람료를

기꺼이 지불했다. 그것은 위안이었을 지는 몰라도 진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총각이 한번 찾아가 봐.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대화가 안 되잖어. 그 양반은 술도 안 잡수고 말이여. 홀몸 되고부터는 통 안 나오니께 걱정도 되고. 고추장이나 좀 갖다 줘버려.” p.48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 불을 켰는데 깜빡거리던 전구가 더 이상 버텨주지 못하고 눈을 완전히 감아버렸다. 전구를 사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하지만 어쩐지 이것을 구실 삼아 선생님 댁에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이 빈 소라 껍데기 같은 전구를 들고서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못 보던 회색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내가 오는 것을 느끼고는 잽싸게 마루 밑으로 들어가서 나를 경계했다. p.52

 

전구값을 해야지?”

최 씨 아저씨 댁에서처럼 일을 시키시려는 것일까? 나는 멋쩍은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전구값으로 자네 이야기를 해보게.”

어떤 이야기요?”

왜 이곳에 머물고 있나?”

밤낮으로 생각해온 것인데 막상 누군가가 물으니 처음으로 생각해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그것을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p.55

 

선생님은요?”

나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화제를 돌리려고 물었다.

나야 자네에게 전구를 주려고 와 있지 않겠나?”

선생님의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에 이런 식의 대화에도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안 사실은, 이렇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첫 번째는, 자신의 마음을 순전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언어 안에 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러내는 쪽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처럼 보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애쓰는 부류다. 후자는 대개 교실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 자리에서 선생님이 나에게 그러실 필요는 없었다. p.57

 

내가 말을 마쳐도 선생님은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단지 고개를 몇 번 끄덕이실 뿐이었다. 그건 내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듣고 있음을 표현해주신 것이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사모님의 노트를 바라보며 괜히 선생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자네 말이 맞네. 자네는 역시 그런 사람이구만.”

그런 사람이 뭔가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지. 좋은 사람들이네.” p.62

 

처음에 주인공이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을 때 내심 연애소설이 시작되는가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곳엔 선생님이 계셨다. 인생 선생님. 철학을 전공한 학생과 글을 쓰는 사람의 묘한 콜라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관계.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생각났음. 그곳에선 바닷가를 배경으로 어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루트라고 하자라고 말한 박사가 있었다면, 이 책에선 본인을 노랑으로 주인공을 빨강으로 칭하는 작가가 있었다는 점이 달랐달까.

 

생각을 적으면 글이고, 그게 모이면 책이지. 자네는 전공이 뭐라고 했지?”

계속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화제를 바꾸셨다. 어쩐지 선생님은 자신이 해온 일들을 뽐내지 않으시는 것 같다.

저는 철학이요. 아직 학부라서 세부전공은 없지만요.”

역시 유별나군. 그거 해서 먹고 살겠나?”

수많은 어른들이 되묻는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음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말에는 그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식의 웃음을 보였다.

그러게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럼. 어떻게든 되지.”p.73

 

뒤를 돌아보며 앞을 기대하는 일, 파괴가 아닌 변화의 시간,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그것이 나의 겨울이었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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