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관하여
남원정 지음 / 렛츠북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남원정

남자, 두 명의 딸, 한 명의 아내와 사위를 두었다.

대학 및 대학원 시험에 낙방한 경험이 있으며, 운전면허 시험에 최소 10번 이상 떨어진 경험도 있다. 커피 연구원, 웹프로그래머, 운전사, 컨시어지, 미화원, 공원 안내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독일에서 제법 긴 실업급여 수급 생활을 하던 중, 레너드 코헨의 <If it be your will>을 우연히 듣고, 상상에 빠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성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뭔지 모를 감성에 젖어든다. 같은 성별을 가진 것만으로 갖게 되는 공감의 선율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내가 아는 남자들을 떠올려본다. 친정아빠, 친정오빠, 신랑... 그들의 삶 역시 내가 모르는 부분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갖게 된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역할을 벗어나 개인이 되고 보면 관계가 더 편해진다.

 

나는 노트북 파워를 넣고 부팅을 기다린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많은 글을 남기고 싶다. 나는 끝없이 내 머리에서 솟구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채색되고 가공된, 옛 추억이 버무려 낸 순간에 상상의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불현 듯 스치는 놀라운 인간의 재치를 탐구하는, 이른바 찰나의 순간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p.10

 

그게 단지 후회스럽다.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일을, 덜 경쟁할걸. 그냥 그저 하늘과 구름 한 번 더 보고, 잽싸게 마로니에 나무 뒤로 사라지는 청설모 부부가, 내 방 네모난 창에 다시 나타나 길 기다리는 설렘이나 진작 배워둘걸.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내 삶의 종착역에서 비로소 느끼게 된 걸까? p.15

 

그리고 나는 글이 주는 놀라운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음악에 빠진 것처럼 이제 문학에 푹 빠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독서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는 자연히 뒷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두꺼운 책 하나를 꺼냈다. 나의 누이가 예전에 좋아하던 소설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사실 독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이었는데, 그 두께에 압도되어 감히 선택할 수 없었던 거였다. 게다가 나의 독서 속도는 아주 느린 편이었다. 나는 한 줄 한 줄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가며 읽었으며, 그 뜻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두꺼운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좋은 글이 우리의 내면에 미치는 놀라운 힘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글을 통하여 더 많은 자극을 받고, 그러한 과정에 내 삶의 깊이를 늘려나가는 것에 아무런 주저함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위고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p.230

 

출판하는 마음을 읽고 나니 단편을 대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어떤 편집자냐에 따라 책의 운명이 갈리듯, 작가들도 글을 소재를 어떻게 버무려낼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단편 소설 속에 작가의 생각은 얼마나 담겨있을까를 가늠해보기도 하였다. 아마도 책과 글에 대한 애정은 고스란히 녹여져 있는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얼마 전 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확진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지만, 나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삶의 무수한 자국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술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가 갈수록, 또렷한 듯 보이던 것들도, 어느 추리 소설에서처럼 내 머릿속 뇌가 꾸미고 부풀리고 왜곡하여 만든 가상세계로 치장된 모습들도, 급속히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단 하나의 느낌으로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그녀의 눈, , , 얼굴형, 뒷모습 등을 정말이지 아무것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느낌만이 가득하다. p.29

 

나는 재작년에 은퇴하였다. 내가 은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병세가 절망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년 봄, 유채꽃 향기가 절정을 이루던 즈음에, 결국 내 곁을 떠났다.

아내는 마지막에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같이 살았지만, 그녀는 낯선 이를 대하듯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였다. 나는 그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면, 솔직히 그 고통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어린애가 되어, 잠을 자듯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뒀다. p.124

 

배우자의 와병은 또 다른 배우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내가 아팠을 때 신랑의 불안은 어땠을까. 아빠가 아팠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둘 다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주말 아빠의 고향에서 행사가 있다. 내가 보기엔 하등 필요 없는 잔치, 그리고 거길 꼭 가야하는 아빠,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게 지켜야 하는 엄마. 그중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마다의 가치가 다르듯, 개개인에게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본인들에겐 배우자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니까 말이다. 마음이 편해진다. 꼭 상대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단편소설은 잘 안 읽는 분야였다. 아직도 집중도가 낮다. 그러나 가만히 읽다보면 점점이 박히는 부분들이 있다. 나 역시 이해하려 했지만 내가 볼 수 있는 부분만으로 집중도 낮게 이해하고 지레짐작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같은 사람을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입체적일 수밖에 없다. 함께 해야 하는 사람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이라면 보다 애정의 시선으로 애민의 시선으로 배려하고 인정해야겠다는 그래서 늘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간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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