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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23 영어 공부 - 1일 2시간 3개월의 기적
이성주 지음 / 차이정원 / 2018년 5월
평점 :
▶ 이성주
2002년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했다. 열일곱 살에 한국에 와서 난생처음 영어를 봤다. 중학교 첫 영어시험 점수는 0점. 개교 이래 신기록이란다. 꼴찌탈출을 위해 된다는 방법은 다 해보기로 했다. 영어 1등 친구가 단어장을 외우라고 해서 무작정 외웠고 잘 소화되라고 씹어 먹기까지 했다. 문장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문법책도 이워봤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았지만 계속했다. 고등학교 원어민 선생님이 매일 영어를 공부하라고 해서 되든 안 되든 매일 했다. 호주에서 만난 홈스테이 주인아주머니가 영화를 20분씩 끊어 보라고 했을 때는 매일 20분씩 영화를 보며 스크립트를 일고 썼다. 만난사람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씩 성공하고 실패하며 자기만의 영어 공부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 2시간씩 3개월쯤 공부했을 때, 원어민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열일곱 살에 난생처음 영어를 ‘봤다’. 이전까지 아는 영어라고는 ABCD. 알파벳 네 개가 전부였다. 알파벳이 총 몇 개인지조차도 몰랐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영어를 공부하는 요즘 시대에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p.27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알파벳을 외우기 시작했다. 시작이 늦어서인지, 방법이 잘못되선지,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 모든 것에 해당된 것인지 영어는 내내 내 발목을 잡았다. 교무실에서 영어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의 실갱이가 계속되었다. ‘쟤는 머리가 좋아’‘쟤는 공부 감이 없어’ 본의아니게 두 선생님을 싸움 붙이며 중고등 시절을 보낸 듯 싶다.
여기 영어를 정복한 탈북민이 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영어를 접했고,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더 높은 영어의 경지에 오른 저자가 있다. 책을 읽어보면, 그가 ‘머리가 좋아서’,‘운이 좋아서’영어를 잘하게 됐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더 꾸준히 시간을 쌓아서 그 자리에 올랐기에 나는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에 앞에서 1등인 친구에게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와 펜까지 준비한 채 친구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영어의 핵심은 단어고, 단어의 핵심은 무조건 외우는 거야.” p.37
공부를 잘하는 요령은 무얼까?
누구나 이런 방법을 찾는다.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실력을 쌓는 것.
그러나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공부란 그런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들이 하나하나 늘어간다. 머릿 속에서 연결고리가 하나 둘 생기다 보면 부스터의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고보면 그동안의 실패와 쓸모없어 보였던 시도들도 시간을 두고 싹을 틔운 듯 나의 공부를 밀어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타인이 나를 강제하는 건 결국 스트레스가 됩니다. 스스로 그 목표를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결국 포기하게 될 거예요. 가장 좋은 강제력은 스스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p.64
문제는 공부였다. 검정고시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한 실력이다보니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따라가기는 어려웠고 어린 친구들이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효과적인 공부법에 대한 책을 수없이 읽었지만 공부에 대한 ‘요령’만 늘 뿐 ‘실력’은 쌓이지 않았다. 요령을 토대로 한 공부는 지식의 깊이를 만들지 못했다. p.79
자투리시간을 이용해 과목별로 정리된 노트를 3일마다 반복해서 봤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서 다시 질문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한 주 동안 배운 내용을 A4 용지 한 장에 도식을 그려가며 과목별로 정리했다. 한 과목을 3일마다 반복해서 복습하고 일주일마다 총정리한 덕분에 시험기간에는 열 장 미만의 종이들만 훑어보면 충분했다. 나는 이것을 ‘1-3-7 전략’이라고 불렀는데, 한 과목을 3일마다 반복해서 보고 7일마다 총정리했다는 의미에서다. ‘1-3-7 전략’덕분에 시험공부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었고 벼락치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p.83
나는 석두였기 때문에 돌에다 글을 새기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포기로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한, 노력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고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p.86
앵무새는 틀리는 데에 두려움과 창피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앵무새 전략을 구사하면서 내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과 창피함이었다. 영어를 공부할 분명한 목적을 설정했다면 다음 단계는 두려움과 창피함을 극복할 의지를 키우는 일이다. 그때 내가 도입한 것이 이른바 ‘철판 전략’이었다. ‘내 얼굴은 철판이다’,‘나는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곤 했다. p.91
공부를 하는 데에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공부가 된다. 공부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지, 공부를 하다 만나는 난관들을 극복하는 것에서도 우리는 큰 공부를 하게 된다. 그것이 성적을 내는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그런 공부를 통해 나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니까.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창피해 나이와 고향을 속인 채 열일곱 살에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했지만, 결국 1학년도 마치지 못한 채 자퇴하고 방황했던 나다. 그러니까 지금의 모습은 15년 전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꿈 덕분이다. 10년 전에 발견한 꿈을 소중히 여겼고, 스스로를 그 꿈에 복종시켰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있다. 바로 영어다. 영어는 나의 꿈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p.28
존재를 알리는 것, 내겐 너무도 간절한 일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전교 꼴등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북한 출신인 것을 숨기기 위해 강원도 정선에서 왔다고 거짓말했지만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정선 촌놈’으로 왕따를 당했다. p.52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My name is Sungju Lee, and I am from Korea”라고 하자, 한 친구가 손을 들면서 “Which Korea?”라고 질문했다. 순간 답을 할 수 없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북한인지 남한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고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였다. “Both Korea.” p.104
영어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깊은 관계를 맺어가려면 나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제 ‘관계로서의 영어’라는 새로운 화두가 주어진 것이다. p.105
영어는 나에게 정말 취약한 과목이었다. 대학을 가기위해 억지로 억지로 공부했지만, 대학 입학과 동시에 꼬부라진 글씨는 쳐다보기도 싫어졌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영어가 재밌다. 영어가 등급을 재는 자로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유롭게 다가온다. 언어란 그렇게 ‘관계’속에서 배우는 거였나 보다.
누군가에게 완벽한 내 모습을 보이겠다는 그 생각이 나에게 ‘영어를 시작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나를 온전히 비워야 한다. 비우고 비워서 받아들일 준비를 할 때, 새로운 것을 채울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긍정하고, 머릿속의 성능 좋은 지우개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발 한발 공부를 하다보면 어제의 나보다는 나은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북민이라는 처지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탈북민이기에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은 작가처럼, 나 역시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존재의 이유를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