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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일 - 재수 x 오은 그림 시집
재수.오은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2월
평점 :
나는, 둘이 친구가 될지 몰랐다.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하기 바쁘더니 어느 날 둘이 같이 책을 쓴다고 했다. 무조건 기뻤다.’는 유희경 시인의 소개 글을 읽으며 두 사람이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림 시집이라니, 이건 무조건 성공일 거라고 생각하며 책을 받아들었고 예상대로 그림을 만난 시는 더 가까이 와닿았다. 두 사람이 친구라 그런지 서로의 빈틈을 꼼꼼하게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시는 정말 이상하다. 너무 좋거나, 혹은 전혀 읽을 수가 없다. 너무 좋아 마음에 콕 박히는 시어를 만나면 언어의 경이 같은 걸 느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자주, 시를 읽으면 헤매는 기분이 든다. 분명 내가 읽고 있는 게 한글인데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시어들이 공중에서 흩어져 재편집되는 것처럼 띄엄띄엄 읽힐 때가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주 시 한 편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겐 이보다 안성맞춤이 있을까.
그림이 내게 지도 역할을 해주었다. 길을 잃지 말라고, 여기로 오면 문이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문을 열면 내 안에 있던 유년과 청춘, 그리고 현재와 미래까지 조금씩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다 보물처럼 발견된 시구 앞에서 문이 활짝 열리기도 하고, 가만히 닫혀 있기도 하면서 마음을 쓸어내렸다.
[수첩을 펼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수북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허약한 단어들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단단한 문장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선선히 움직인다. 기꺼이 방황한다. 이제 문 속의 문을 찾는다.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를 만나는 시간. ... 중략... 이 많은 문들 중에서 어떤 문을 열어야 할까. 어떤 문이 나를 반겨줄까. 어떤 문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줄까.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문은 또 얼마나 많을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움직일 뿐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크게 포문을 여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나의 오늘과 나의 어제, 나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40편의 시를 만나며 결국 다시 오늘의 나로 돌아와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했다. 천천히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들이었다. 편지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한 시를 읽는 동안 다정한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 같았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었으며, 진심을 다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