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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와 헤어지는가 -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켈리 마리아 코르더키 지음, 손영인 옮김 / 오아시스 / 2019년 5월
평점 :
우리 세대는 여성과 여성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여성상에 너무 부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여성성에 관한 모순을 따지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역할이라는 부여된 틀 밖에서 선택할 수 있는 (불행한) 특권을 처음으로 부여받았다.
우리는 좋든 싫든 개척자인 것이다.
손에 쥔 이 특권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켈리 마리아 코르더키는 서른 살 때 1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남자와 헤어졌다.
내가 품은 나를 위한 꿈은우리를 위한 꿈보다
크고, 시끄럽고, 강렬했다.
로맨스는 발명되었다.
자유연애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은 사실 18세기가 되어서야 생겨났으며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 우리는 관계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고자 첫발을 내디디는 것이 자유라는 걸 인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행복해질 때까지 행복한 척하라. '성공할 때까지 성공한 척하라'라는 오늘날 흔한 주문처럼 말이다.
Chapter 6. 이별을 선택할 권리
신나게 으르렁거리던 1920년대는 결국 지나갔다.
노예제도는 사라졌고 인종과 무관하게 여성은 법적인 보호 아래 개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상황은 완벽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에게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는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분위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불행해도 대부분 참고 살았다. 하지만 1950년대에 '성공과 행복은 자신이 행동한 결과'라는 믿음이 가족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이혼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됐다.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부일지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는 전례가 없는 특권을 누렸다는 훅스의 말은 맞지만, 내가 아는 어머니 중 육아와 살림을 '여가'와 비슷한 표현으로 사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누군가 해야 하는 주부의 일을 다른 노동자에게 맡기게 될 텐데 이 노동자는 인종, 성별, 계층 사다리의 더 아래쪽에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얘기다.
예전에도 그랬도 지금도 그렇듯, 대체로 이혼을 제기하는 쪽은 남성보다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 사회학자들은 이를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불만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보상이 없는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데, 이는 매우 지치는 일이다.
무급 노동으로 가사를 책임지고 있음에도 주부는 자신의 유용성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너무나도 많은 미국 여성의 마음을 휘젓고 있는 '이름 없는 문제'는 여성성을 잃어서, 교육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또는 집안일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게 아니다.
(...)
"난 남편과 아이들과 집보다 더 많은 걸 원해"라는,
여성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목소리를 더는 무시해선 안된다.
왜 나는 너와 헤어지는가 p.145
베티 프리단의 책 《여성성의 신화》는 많은 백인 중산층 여성 독자의 눈을 뜨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남자와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 비해 덜 행복하다.
여성은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담당해야 하고, 일정과 약속을 관리해야 하며, 식구들이 옷을 입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여성이 이혼 신청을 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이혼을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여자 쪽이다
(남자는 그 반대다).
왜 나는 너와 헤어지는가 p.188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때때로 더 많은 수고를 의미함을 기억해야 한다.
결혼은 더는 자녀를 키우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 역시 결혼을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아니게 됐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만족은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다만, 문제는 돈이다.
....
나는 30대 초반에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육아와 살림을 하며 30대 청춘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이를 먹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결혼생활에 환상을 갖고 있던 것도 아닌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애와 결혼은너무 달랐고,
해본적 없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해도 티 안나고안하면 티나는 그런류의 일들.
이전 시대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고 특권을 누리는데 왜 징징거리냐는 사람들도 있다.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본 게 아니라면 그런 말은 하지 마시길..
누구든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길을 걷거나 여행을 가서 마주하는
60~70대 이후의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여성들은 허리가 휘고 남성들은 정정하게 잘 걸어 다닌다.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도 있다.
엄마도 그렇게 살기 싫었을거다.
나의 부모 세대는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저 꾹 참고 살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다.
딸의 자아실현을 위해 황혼육아도 마다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들..
기관이나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하는 엄마들..
그들은 행복할까?
나는 행복한가?
인생은 선택이다. 이것 또한 나의 선택.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의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