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leemina5840 > 시각의 폭력과 구원의 시각
눈의 역사 눈의 미학 임철규 저작집 1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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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규의 <눈의 역사 논의 미학>은 근래 출판된 책중에서 가장 자신의 생각을 명증하게 드러낸 책이다. 서구의 복잡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시각의 폭력이 자행한 흔적을 추적하는 지은이의 글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은 시각은 주체가 자신이 본 것만을 즉 부분을 전체화시키는 오류에 처하게 된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기존의 시각 우위에 종속된 삶의 피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인용의 범주가 범주가 지은이도 말한 것처럼 다양하지만 조금은 난삽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도된 인용의 범위를 정하여 책 구성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자신이 인용하고 있는 책들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떄문에 각 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하게 읽히지 않는 한계를 지닌다.
둘째 눈의 역사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서양의 인류학적인 것에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논의의 진폭을 너무도 서구적인 것에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2장 4장은 특히 서국저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이 독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이러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본다는 것의 의미를 문학 작품, 미술 작품 등 예술의 범위를 동원하여 시각의 의미 즉 봄의 의미를 추적한다. 특히 마지막 장인 '구원의 눈'은 좀 더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아마도 이 책은 이 부분에서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대목은 동감하고, 구원의 시각은 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긍정적인 고통의 차원으로 변용시키는 과정을 통해 생성된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기존에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타자를 영원히 시각의 감옥에 가두기보다 그러한 시각의 실명이 제공하는 절대적인 상황조차도 수용하려는 의지를 우리는 윤리적 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떄문에 이 책이 말하는 눈의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눈의 미학화를 시도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아울러 이 책은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우리 사회에 지닌 긍정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든다. 김상봉의 '나르시즘의 꿈'과 마찬가지로 임철규의 책 역시 한길사같은 출판사가 아니라면 출판되기 힘들 책일 수 있다. 이러한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서 학문하는 인간의 진실된 목소리를 거둘어 들여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출판 이념은 매우 중요하다. 책을 통해 이룩된 인식의 확장이 물질적인 것의 풍요로움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식의 확장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 책을 반드시 구입해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사소한 시작에서 우리 삶의 빈곤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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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연금술 - 바슐라르에 관한 깊고 느린 몽상
이지훈 지음 / 창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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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상상력의 전모를 아주 잘 정리해놓은 책이다. 지은이 이지훈 선생의 필력이 장난이 아니다. 물론 학술서의 고답적인 형식과 어투에서 멀찍이 떨어진 재치 만점의 입말에서 읽는이는 오해된 바슐라르 철학, 신화화된 바슐라르의 상상력이론을, 제대로 꼭바로 만나는 흔치 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바슐라르의 저작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새번역이 나오고 재출간되고 있다. 누가 뭐래도 불멸의 고전이 된 책들이다. "공간의 시학" "촛불의 미학" "공기와 꿈" "대지와 휴지의 몽상" "대지와 의지의 몽상" "불의 정신분석" "불의 시학 단편" 등등. 지금까지 중요한 저작은 거의가 다 번역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바슐라르가 서양의 철학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상상력이론이 어떤 맥락을 띠는 것인지 다룬 연구서는 전무했다. 오래 전에 곽광수 선생이 "바슐라르"라는 연구서를 낸 바 있으나, 거기 소개된 바슐라르는 이지훈 선생의 책처럼 긴밀한 내적 연관성과 밀도를 보여주는 체계잡힌 단행본이 아닌 소논문들의 모음이었다. 해서 이 책은, 지금까지 국내학자의 손을 거쳐 나온 거의 유일한 바슐라르 연구서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놀라운 솜씨로 평이하지만 깊이 있게 바슐라르의 학문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연금술 전통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나 바슐라르의 상상력이론을 알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서 값어치 있는 책이다. 책의 의미만이 아니라 맛깔스러운 문체와 한눈에 잡히는 책의 구성도 장점이다. 두고두고 아껴서 읽고픈 예쁜 책이다. 바슐라르는 그 느리고 완만한 사유의 방식이 자아내는 매력만큼이나 그의 개인적인 생애, 사적인 삶이 흥미로운 사람이다.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그를 다룬 흥미로운 전기를 찾아 번역하지 않는 게 참 이상하다. 우체부에서 시골학교 선생으로, 시골학교 선생에서 프랑스 최고 학부의 교수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딸 쉬잔 하나만을 키우며, 시와 몽상으로 자기 연단(練鍛)의 과정을 수행해갔던, 문자 그대로 '삶의 연금술사'로서의 풍모를 드러내는 바슐라르를 다루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다. 아무튼 다음과 같은 도식이 가능할 성싶다. 바슐라르와 융, 인간의 지적 세계 이면에 숨어 있는 거대한 상상과 신화의 대지, 꿈과 몽상의 대지를 탐사했던 모험가들. 바슐라르와 엘리아데, 낮의 세계(정합적인 학술논리의 세계)와 밤의 세계(정합성이 빛나는 논리 그 너머 꿈과 상상력의 세계)를 오가며 기막힌 균형감각을 보여줬던 진정한 인문주의자들. 이렇게 둘씩 분류해 묶어보면, 바슐라르는 모두에 걸린다. 바슐라르의 품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다. 하얀 턱수염에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을 한 사진의 이미지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삶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엄격성과 염결성이 그려진다. 암튼 이 "예술과 연금술"은 바슐라르의 놀라운 미궁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이자, 아드리아네의 실 같은 책이다. 바슐라르에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서양전통사상의 맥을 짚기 위해서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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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늘연못 > 어쿠스틱 기타의 향연!
My Love My Guitar : The Best of Acoustic Guitar
Various Artists 연주 / 씨앤엘뮤직 (C&L)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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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이라면 연주자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담백하고 맑은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이 앨범은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을 한껏 살린, 뛰어난 연주자들의 아름다운 연주로 꽉 채운 좋은 앨범입니다. 보너스 DVD는 아직 못 보았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서 서둘러 리뷰를 올립니다.

참고로 어쿠스틱 기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다음 앨범을 한번 들어보세요.

1.스탠다드 모음 : 쳇 애킨스 [Sails]

2.클래식 듀엣 : 쥴리언 브림과 존 윌리암스 [Together]

3.재즈와 플라멩고 트리오 : 알 디 메올라, 죤 맥러플린, 파코 드 루치아 [Friday Night In San Francisco]

4.우리나라 연주자 ; 이병우[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안형수[마법의 성]   잭리[목련꽃]

5.그 밖 : 에릭 크랩튼(블루스) [Unplugged]    제시 쿡(플라멩고) [tempest]   토미 엠마누엘(포크) [Can't  Get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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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9)

오랜만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이 글은 2003년 11월말에 씌어졌다. 나는 한 계절을 건너뛰었다!). 앞으로 한 계절 정도 연재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사이에 나온 책들이 또한 부지기수이지만, 다 생략하고 지난 1-2주 정도에 나온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권에 대한 소감만을 적는다.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책들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 복사하고 제본하는 책들은 쌓여가고 있지만, (인터넷)서점에서 실제로 구입하는 신간들은 일주일에 몇 권 안된다(덕분에 <정의론> 같은 '구닥다리'도 사들이고 있다!).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루소의 <에밀>(한길사)이다. 800쪽이 넘는 분량이고, 3만원이 넘는 책값이다. 이미 정봉구 교수의 완역본(범우사)이 나와 있는 걸로 아는데, 어쨌든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새단장을 해서 나왔다. 얼마전에는 책세상에서도 일부 발췌역 <에밀>이 나왔는데(해제만이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책을 낼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갑자기 에밀 붐이라도 분 것 같다.

루소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개역본(한길사)도 아직 사지 않은 나로서는 이 신간을 사게 될지 아직은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고전의 완역은 반가운 일이다. 루소와 관련해서 가장 기다려지는 책은 단연 <고백록>이다. 아주 오래전에 완역된 적이 있는데, 그건 도서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책이고, 새 완역본이 나왔으면 싶다(범우사판의 <에밀> 역자는 정봉구 교수이다. 알라딘에는 '정범구' 교수로 잘못 표기돼 있다. 미심쩍어서 다시 확인하고 수정했다. *알다시피 <고백>은 작년에 재출간됐다).

루소 입문서로 내가 추천할 만한 책은 로로로 시리즈로 나온 G.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이다. 당대의 경쟁자 볼테르와의 비교가 재미있는 전기이다. 그리고 참고로, <철학이야기>의 저자 윌 듀란트도 루소와 그의 시대에 대한 1,000쪽이 넘는 저작을 갖고 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엄두가 나질 않아서 다시 꽂아둔 기억이 있다. 루소의 연구서로는 토도로프의 얇은 책 <덧없는 행복>(한국문화사)이 번역돼 있고, 문예이론가 야우스의 <미적 현대와 그 이후>(문학동네)에서도 루소가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책(번역되었으면 하는 책)으로는 장 스타로벵스키의 연구서 <투명성과 장애물>이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폴 드 만의 <독서의 알레고리> 등도 번역되었으면 싶지만...

 

 


 


두번째 책은 강유원의 <서양문명의 기반>(미토)이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폐간된 잡지 <포에티카>에서였지만, 나는 지지난주 문화일보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새삼 그의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이윤기의 <장미의 이름> 개역본은 강유원의 오역에 대한 지적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 <책>(야간비행)으로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 회사원/철학자의 신간은 철학책이 아니라 거시적인 문명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혹은 역사철학책이라고 할까?). 구내서점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아직 사진 못한 책이지만, 사실 이런 제목으로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라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인데, 저자의 대한 신뢰감 때문에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물론 지금의 강유원은 더이상의 소개가 불필요하다. 그의 최신간은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선언>(뿌리와이파리, 2006)이다. 분량 만만, 가격 저렴이라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는 동국대의 스타급 강사였다고 하는데, 요즘도 모처에서 틈틈이 강의를 하는 모양이며, 신간은 그 결과물이라고 한다(그는 <씨네21>에도 기고하고 있다. *지금은 물론 과거형이지만). 그가 빨리 생업을 위한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취업'이 아니라) '초빙'되기를 바란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도록. 참고로, 그의 책으론 헤겔 번역서 <법철학1-서문과 서론>(사람생각)과 절판된 <근대 실천철학연구>(미래글)가 있다. 후자는 홉스와 헤겔의 사회철학 연구서이다(그의 학위논문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 책은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의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코리브르)이다. 교양 수학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이라면 데블린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으론 이미 8권 정도가 번역돼 있는바, <수학의 언어>(해나무), <인포센스>(사람in), <수학유전자>(까치글방) 등이 비교적 많이 팔리고 있는 책들이다. 개인적으론 <수학유전자>란 책 이후에 비로소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게 되었는데, 댓권쯤 꽂혀 있는 그의 책들을 언제나 마음놓고 읽어볼는지...

 

 

 

한편, 수학전문출판사인 경문사에서 새로운 교양수학 시리즈로 'Apple'을 얼마전에 내놓았는데, 1권이 네이글의 <괴델의 증명>이고, 2권이 파울로스의 <수학 그리고 유머>이다. 네이글은 저명한 과학철학자이고, 파울로스는 <수학자의 신문읽기>(경문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수학자이다. 특히 <수학 그리고 유머>에는 르네 톰의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응용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 톰의 주저들이 아직 번역되고 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이정우가 번역/소개한 <카타스트로프의 과학과 철학>(솔출판사)이 유일하다(*이정우의 근작인 <탐독>에는 르네 톰에 관한 내용이 얼마간 언급돼 있다).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발생>, <기호물리학> 등의 책들을 언제쯤 우리말로 읽을 수 있을는지,(크리스테바의 초기 기호분석론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그걸 번역해줄 수 있는 국내 학자가 과연 있는지 궁금하다...

 

 



 

네번째 책은 이경훈의 <오빠의 탄생>(문학과지성사)이다. 부제는 '한국근대문학의 풍속사'인바, 같은 주제의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권보드래의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도 이 같은 부류의 신간이다. 모두 '선정적인' 제목에 힘입어서인지 잘 팔려나가고 있다. 근대문학연구자들이 일종의 노다지를 발견한 셈인데, 물론 신간들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책들이면서 인문학 위기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책으로서도 유력해 보인다.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끝으로 말론 브랜도의 전기 <세계를 매혹시킨 반항아 말론 브랜도>(푸른숲)이 지난주에 나온 전기문학이다. '20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평을 받는 이 대배우의 삶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라고. 나에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과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의 배우로 각인돼 있는데, 책표지로 사용된 젊은 시절의 사진들 또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브랜도의 전기는 푸른숲에서 새로 출간하고 있는 전기물 시리즈 'Prun Soop Bios'의 세번째 책인데, 둘째권이 조너선 스펜스의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이고, 첫째권이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자 붓다>이다(*동양학 권위자인 암스트롱의 책으론 <마호메트 평전> 등도 출간돼 있으며, 자서전 <마음의 진보>(교양인, 2006)도 연초에 나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 소개한 기억이 있다). 모두 주목할 만한 전기물들이다...

 

 

 



덧붙임: 작년에 제6회 다산기념 철학강좌에 초빙되어 내한했던 찰스 테일러 교수의 강연/대담집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이 출간됐다(*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영어원문과 번역문이 나란히 실린 강연문 외에도 저자의 40쪽 분량의 서문이 실려 있다. 이번에 내한했던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은 제7회 철학강좌였다. 그것이 의미하는바는 내년 이맘때쯤 이번 강연문들이 책으로 묶여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 생각보다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그래도 조잡한 번역문들이 대폭 수정되어 말끔한 책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알다시피 지젝의 내한강연은 작년 6월에 책으로 나왔다).

한가지, 철학과현실사의 신간에는 <자유주의의 원류>도 있는데, 부제가 '18세기 이전의 자유주의'이다. 나는 이 부제가 좀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루어진 내용의 절반은 18세기 사상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제는 '19세기 이전의 자유주의'라고 해야 옳다. 18세기 이전이라면, 1700년까지이기 때문이다(*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200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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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29)

탄핵정국 속에서도 눈에 띄는 책들이 여럿 출간됐다(*이 글은 2004년 3월 중순에 씌어졌다). 저녁엔 시위에 나서더라도 책 읽을 시간은 충분하므로 여기에 몇 권을 소개한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 연재의 마지막일 듯싶다(*해서, 이 에피소드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30)번을 채우지 못했지만, 사정이 그렇게 돼버렸다. 혹은 여운을 그렇게 남겨두기로 한다. 하긴, 누가 등떠미는 것도 아닌데...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작고한 철학자 박홍규 교수(법학자 박홍규 교수가 아니라)의 전집 3, 4권으로 각각 <형이상학강의2>(민음사)와 <플라톤 후기 철학강의>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전집의 1, 2권은 지난 95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바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나머지 책들이 출간된 것이다(‘나오단 만 책들’의 대표적 사례의 하나였다). 10주기를 맞은 고인의 기일이 지난 14일이었다고 하는데, 이후에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를 다룬 강의록이 마저 출간된다면, 하나의 ‘철학사적 기념비’가 세워지는 것이 되리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이지만, 박교수는 서양철학사 전체가 플라톤과 베르그송, 두 철학자에 의해 집약되는 것으로 보는데, 그의 철학관은 <형이상학강의1>에 실린 ‘고별강연’에 잘 드러나 있다. 고전철학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라도, 그 강연문은 일독을 권할 만하다(*<탐독>의 저자가 구상중인 책에는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도 포함돼 있다. 소은과의 만남에 대해서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므로 박홍규 철학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탐독>을 슬쩍 참조할 수도 있겠다).

 

 

 


두 번째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 - 사유>(푸른숲)이다. 원제가 'The Life of Mind'인 이 책은 아렌트 철학을 집약하고 있는 만년의 대표작인데, 그녀는 1권인 ‘사유(Thinking)’와 2권 ‘의지(willing)’까지를 완성하고, 3권 ‘판단(Judging)’은 첫 페이지만을 타자기에 끼워놓은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재작년쯤에 김선욱 교수의 번역으로 (흔히 3권 ‘판단’을 대신하는 것으로 일컬어지는) <칸트 정치철학 강의>(푸른숲)이 소개된바 있는데, 오랜만에 아렌트의 주저가 번역되어 반갑다.

그해에는 김교수의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푸른숲)까지 출간되어, 나로 하여금 (월드컵의 해였던) 2002년을 아렌트와 지젝의 해로 기억하게끔 했다. 그 ‘옛날’의 감흥이 약간은 되살아나는 듯하다. 정치의 계절에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인 아렌트의 주저를 읽어보는 일도 뜻 깊을 듯싶다(*<정신의 삶> 2권이 출간될 때도 되지 않았나? 또다시 월드컵의 해인 만큼).

 

 

 



<정신의 삶>의 역자는 홍원표 교수인데, <아렌트와 하이데거>(교보문고)를 번역한 서유경 박사, 김선욱 교수와 함께 ‘아렌트 3총사’로 불리는 이로서, 레오 스트라우스의 <자연권과 역사>(인간사랑), 로이 보인의 <데리다와 푸코>(인간사랑) 등의 역서를 갖고 있으며(후자는 평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주저인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인간사랑, 2002)에서도 아렌트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아렌트 전문가의 한 사람이다(*이후에 <혁명론>도 역간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렌트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모든 번역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아렌트 번역의 최악으로 일컬어지는 책은 <폭력의 세기>(이후)이고, <인간의 조건>(한길사)도 평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권 나와 있는 아렌트 입문서 가운데 (분량으로나 가격 면에서도)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김선욱의 <진리와 정치>(책세상, 2001)이다. 참고로, 김교수는 작년 지젝 방한시에 통역을 맡기도 했었다.

번역과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소개한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도 좋은 평을 얻고 있다. 아직 완독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꼼꼼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 인물 소개 등 옮긴이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번역서이다(그런 점에서 드물게 보는 ‘인문번역서’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앞으론 그런, 역자, 그런 책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지난주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그의 저작 가운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책”이라고 잘못 소개했는데, 자신의 ‘감’에만 의존하는 건 기자로서 불성실한 일이며, ‘폭탄’맞을 일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정보과학의 폭탄>(울력)이 번역돼 있다.

 

 

 



세 번째 책은 냉전사 연구의 대가라는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의 <역사의 풍경>(에코리브르)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역사학을 바라보는 현대적 해석을 담은 책.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뒤를 잇는 역사학 입문서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고 소개되는 이 책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복잡성이론이나 카오스이론 같은 비선형 과학의 통찰을 역사연구와 적극 접맥하고자 하는 시도 때문에 나의 눈길을 끌었다.

개디스 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 대학원을 옮기기까지 한 역자는 그의 세미나에 직접 참석한바 있는데, 첫 학기 내내 쟁쟁한 현역 과학자들로부터 새로운 과학이론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이건 부러운 일이다). 그런 역자의 번역인 만큼 신뢰감이 느껴진다. 개디스 교수의 주저 가운데는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사회평론, 2002)가 이미 번역돼 있는데(역사학쪽이라 나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680쪽이 넘는 분량이다.

 

 

 



네 번째 책은 개이비 우드의 <살아있는 인형>(이제이북스)이다. 이 책은 영감을 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정보를 주는 책으로 분류될 만한데,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호프만의 <모래인간> 때문에 이 주제에 나는 더 흥미를 갖게 됐는데, 인간과 인형(기계)란 주제에 관해서 한번 숙고해 보고자 할 때 아주 요긴한 참고문헌이 되어줄 만한 책이다(그러니까 책을 쓸 때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몰아서 얘기하도록 한다. 버지니아울프학회에서 단편집 <유산>(솔)을 번역 출간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사실 이 번역서나 버지니아울프도 아니라, 이런 작업을 꾸준히 ‘책임감 있게’ 해내고 있는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이다. 아마도 가장 단합이 잘되는 학회인 듯싶다. 유사한 사례로 한국카프카학회에서 (역시 솔출판사를 통해서) 카프카전집을 펴내고 있지만, 일부 번역의 수준이 들쭉날쭉이어서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버지니아울프전집은 안정감을 준다. 곧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올 것 같다.

그리고, 폴 오스터 입문서로 인터뷰와 그의 작품세계를 다룬 <폴 오스터>(열린책들)가 번역돼 나왔다. 편저자들은 일본의 소장학자들이고, 역자는 고진의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의 역자이다. 별다른 이유없이 '감'으로 내가 오스터과로 분류하고 있는 윤대녕의 작품집 <누가 걸어간다>(문학동네)도 이번에 나온 신간이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찔레꽃 기념관> 외 5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나저러나 오스터과에 속하는 작가/작품들을 내가 당장에 읽을 계획이 없으므로, 이들과의 본격적인 조우는 순전히 미래의 것이다.

 

 

 



끝으로, 정진홍 교수의 <잃어버린 언어들>(당대)을 지난주의 산문집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의 말을 잠시 빌면, “삶은 학문보다 큽니다. 잊어 잃어버린 언어들에 대한 회상은 그렇다고 하는 것을 제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새 언어를 낳는 학문하는 자리를 버리거나 그런 삶을 의도적으로 낯가림할 필요는 없습니다. 차디찬 이성으로 그 자리는 그렇게 완성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바탕은 아무래도 잃어버린 언어들에 대한 향수가 낳는 새로운 현실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삶은 학문보다 크며, 당연히 책보다 넓다. 하지만, 그걸 아는 건 책을 통해서이다. 불행히도 나의 경우엔 그렇다. 이건 고질일까, 불운일까? 그 고질을 떨치지 못하고, 그 불운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할 운명이라면(혹은 팔자라면) 나는 (당신이 지겨워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I'll be back!(나는 당신의 등짝이 되겠습니다!)...

2004.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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