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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추리소설 초보 마니아를 위한 이 책만은 꼭!

스텔라님께서 알려달라셔서 한번 만들어 봅니다.

우선 가장 왕초보로서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생각되시는 분들은 무조건 해문에서 출판되는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80권을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그 책만 읽으면 추리소설의 기본 트릭은 완전 마스터하게 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다음에는 동 시대의 작가인 엘러리 퀸, 모리스 르블랑, 코넌 도일이 되겠죠.

아, 순서를 바꿔서 코넌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 작품을 먼저 시작해도 좋습니다.

코넌 도일

모리스 르블랑

   

엘러리 퀸

  

  

이 작가들의 책을 읽은 뒤에는 동서미스터리북스에 등장하는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과 새로운 작품들을 골라 읽으시면 됩니다.

탐정으로 대표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그 뒤를 잇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얼 스탠리 가드너의 페리 메이슨 시리즈가 있습니다.

또한 각 나라별로 상을 수상한 작품도 있고 사회파나 범죄소설로 나뉘는 요즘 작품도 있읍니다.

추리소설도 작가마다 선호도가 다르고 각기 비슷한 내용이라도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각자가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시 바랍니다.

각 시리즈는 시리즈...

작가의 작품목록은 작가의 작품 목록

지금 안 읽으면 후회할 작가로는

기리노 나츠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미넷 월터스

제프리 디버

 

그리고 앞으로 계속 나올 작품들의 주목을 잊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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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kleinsusun > 심각한 오역과 심드렁한 문학동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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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문이 번역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기 전에,
원서로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를 먼저 읽었다.(Vintage Books Edition, June 1989)

원서로 읽었음에도 번역본을 다시 읽은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번역을 했을까?"
참을 수 없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Raymond Carver의 문장은 진정...간결하고도 짧다.
두줄 넘는 문장이 거의 없다. 동사도 아~주 평이한 걸 쓴다.
평이한 동사란 무엇인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동사다.

"집사재"에서 나온 Raymond Carver 시리즈는 잘 읽어지는데
"문학동네"판은 읽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당연할 수 밖에 없다.

왜? Raymond Carver의 문장은 "불친절" 하니까.

"문학동네"에서 펴내고 있는 Raymond Carver 시리즈는 "완역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해설이 부록처럼 들어있는
"집사재"에서 펴낸 시리즈는?
친절한 일본어 번역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듯 하다.

Raymond Carver의 단편들엔 사전을 찾아야 할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하기엔 참으로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들이다...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해서 읽은 정영문 번역의 <사랑을 말할 때...>에서
"심각한" 오역을 발견했다.

[Tell the Women We're Going]에서
제리는 두 여자를 "죽인다".

그런데...<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에서
제리는 두 여자와 "섹스를 한다".


"문학동네"에 전화를 할까, 귀찮은데 그냥 넘어갈까 망설이다가
귀차니스트의 본능을 억누르고 전화를 했다.

난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심각한 오역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런데.....담당자는 전혀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허름한 분식집에서 3천5백원짜리 김치찌개를 먹다가
"여기 머리카락 들었어요!" 말했을 때
주인 아줌마의 반응보다도 심드렁했다.

담당자의 심드렁한 태도는 "오역 첨 봐?" 하고 나를 흘기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한 김에 꾸역꾸역 말을 했다.

"103~104 페이지 보시겠어요?

원문 : But it started and ended with a rock.
오역 : 하여튼 그건 바위에서 시작하여 바위에서 끝났다.

원문 : Jerry used the same rock on both girls, first on the girl called Sharon
and then on the one that was supposed to be Bill's.
오역 : 제리는 같은 바위 위에서 두 여자, 처음에는 샤론이라는 여자와,
그 다음에는 빌리의 몫인 여자와 섹스를 했다.

같은 바위 위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한 게 아니라,
두 여자를 같은 돌로 쳐서 죽인 거예요.
"


실컷 듣고 있던 직원은 여전히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2판 찍을 때 참고할께요."

화가 나기 보다는... 허무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시간 낭비람? 쓸데 없는 짓을 했다.삽질!

담당자는 내 연락처도 물어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소설을 사랑하는 선배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런건 출판사에 전화하지 말고 번역가에게 직접 알려주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잠시 정영문에게 멜을 보낼까...생각하다가 접었다.
삽질은 한번으로 충분하기에.

누구나 오역을 할 수 있다. 그 어떤 훌륭한 번역가라도.
하지만... 오역이란 2판 찍을 때 "참고할" 만한 한가한 사항은 아니지 않을까?

오역으로 인해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제리는 친구도 옆에 있는데 혼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했을까?
제리는 욕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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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25)

지난 1월에 나온 책으로 가장 꼽을 만한 건(* 이 글은 2004년 2월 하순에 씌어졌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이제이북스)이다. 리쾨르, 가다머에 이어서 한동안 또 헤겔 자료를 수집하는 우연히 겹쳐서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직 책을 통독하지는 못했지만, 이 신간은 헤겔과 스피노자의 이름이 들어간 책 가운데, 가장 장정이 유려하며 번역 또한 가장 신뢰할 만하다. 물론 방점이 더 들어가야 하는 쪽은 후자이다.

 

 

 

 

역자 진태원씨는 스피노자 전공자로서 데리다에 대해서도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고, 곧 <법의 힘>을 역간할 예정으로 있다(*물론 <법의 힘>은 2004년 여름에 출간됐고, 이어서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도 작년에 역간됐다). 역자의 '자신감'은 상당한 분량의 해제와 역주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바디우의 <존재의 함성>(이학사) 정도가 이에 대적할 만하다(내가 요즘 한밤중에 몇 페이지씩 들춰보고 있는 책이다). 당분간은 스피노자보다는 데리다 번역에 더 전념할 계획인 것으로 보이는데, 언젠가는 <에티카>의 새로운 번역을 출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발리바르와 함께 알튀세르 사단을 형성하고 있는 피에르 마슈레의 책들로는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백의, 1994)와 <문학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동문선, 2003)가 이미 번역돼 있는바, 두 권의 책은 문학론에서 마슈레의 주저일뿐만 아니라 알튀세르 사단의 문학론을 집약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1970년대에 나온 전자는 진작에 영역되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책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국역본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역자는 보드리야르 전문 번역자로 나서고 있는데, 보드리야르로서는 불운한 일이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론 레닌의 톨스토이론에 대한 비평문과 바르트의 구조주의 비판 등에 흥미를 갖고 있지만, 쥘 베른이나 미셸 투르니에에 관한 글들도 관심이 있는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하다. 후자는 생각없는 책값 때문에 아직은 구매할 생각이 없는데, 뒤져보니까 영역본인 <문학의 대상>을 내가 이미 갖고 있었다. 나중에 '휴양지'에서나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나중에 읽어본 바에 따르면, <문학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는 무슨 생각으로 번역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책이다).

 

 

 



마슈레의 책에 이어서 2월의 책으로 꼽을 만한 인문번역서는 부르디외의 <중간예술>(현실문화연구)이다. 지난주에 나온 이 책은 부르디외가 1/3 가량을 쓴, 사진에 관한 공동연구서이다. 부르디외의 책이야 간간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 유독 반가운 것은 먼저 동문선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단골' 번역자들이 번역하지 않았다는 점 등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나 정말 그간의 사정이 그럴 만했다.

역자는 주형일씨이고, 그간에 <문화의 세계화>(한울, 2000), <소리없는 프로파간다>(상형문자, 2002) 등을 우리말로 옮긴바 있다(*이후에 <사회보장의 발명>, <섬광세계> 등이 역저로서 더 등장했다) . 재미있는 책들을 번역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공갈 번역자는 아니다. <중간예술>의 한 장은 이미 오래전에 <사진의 사회적 정의>(눈빛, 1989)로 번역 소개된바 있다(물론 영역본도 당연히 나와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사진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보완해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세번째 책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의 정치>(백성)이다. 레이코프는 마크 존슨과 함께 인지언어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의 저작은 우리말로도 여럿 번역/소개돼 있다. 대표작인 <삶으로서의 은유 Metaphors we live by>(서광사, 1995)를 비롯해서, <인지의미론 Women, fire, and dangerous things>(한국문화사, 1994), <시와 인지 More than cool reason>(한국문화사, 1996), <몸의 철학 Philosophy in the flesh>(박이정, 2002) 등이 그것이다. 아직 제대로 독파한 적은 없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그의 책들은 사모았었는데, 이번에 나온 이 '언어학자'의 '정치론'은 가장 뜻밖의 책이다(원저는 'Moral politics'이고,1996년에 출간됐다).

언론인인 역자도 그리고 두서없이 책을 내는 출판사도 모두 생소하지만, 저자의 지명도 때문에 서점에서 이 책을 주저없이 사들었다. 책의 부제는 '보수주의자들은 알고 있는데, 진보주의자들은 모르는 것들'인데, 보수와 진보의 논리를 인지언어학적인 논리에 따라 차별화시켜서 논하고 있다고. 방법론은 좀 단순해 보이지만 한번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다(*알다시피, 최근에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출간됐고,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다룬 바 있다).

 

 



 

네번째 책은 권영민 교수의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민음사)이다. 거의 77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지용의 시 거의 전편을 다시 읽어나가는 책이다. 오래전 김학동 교수의 선구적인 <정지용 연구>(민음사, 1997) 이래로 1987년에 해금된 이 대표적 근대시인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축적돼 있는바, 신간은 그간의 성과를 집약하면서 지용시 연구와 해석의 새 단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 해설서의 저자가 전공이 한국근대소설인 것도 약간은 이채로운데, 서문을 잠깐 읽어보니까 지용시와의 인연은 학부시절 헌챙방에서 우연히/어렵게 구한 시집 <백록담>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고 있었다(*정지용 관련서들로는 최동호 교수의 <정지용 사전> 등이 필독서이다).

어쨌거나 시를 읽고 음미하는 일의 기본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찬찬히 따라읽어봄 직하다. 그간에 표나게 지용주의자를 자처했던 비평가로 유종호 선생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번 저서에 대해서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아울러 다른 시인들에 대한 '자세히 읽기'도 이참에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싶다(나는 시를 여기저기 부분부분 인용하며 쓴 연구논문들보다는 이런 류의 전작 읽기를 더 선호하며 신뢰한다). 참고로, 문외한으로서 시를 한번 읽어볼까 하는 이들에겐 유종호의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를 일독하고, 바로 이런 류의 책으로 돌진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시쓰기가 그렇듯이 시읽기에도 무슨 정도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시 전집이 나온 김춘수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김춘수 전집은 예전에 문장사에서 오규원이 편집/기획하여 낸 데 이어 두번째인데, 시전집만을 놓고 보면 그간에 민음사에서 <김춘수시전집>(1994)이라고 한번 더 나온 적이 있다). 그의 무의미시와 무의미시론은 지용시와는 전혀 딴판이다(한국현대시론은 이 무의미시론과 김수영의 반시론, 딱 둘밖에 없다. 후배들이 분발할 일이다!) 그러니까 시 또한 단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들', 즉 복수로 존재한다고 봄이 옳다. 각자의 길은 각자가 내는 것이다. 참고로, 작년에 나온 이 분야의 성과로는 이남호가 엮은 <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과 대표시 해설서 <이 쓸쓸한 날에 저 어지러운 구름 그림자>(현대문학, 2003)가 있다.

 

 

 



다섯번째는 사전류이다. <이진영의 동시통역 기초사전>(이대출판부) 같은 것도 요긴해 보이지만,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개념 사전이다. 잘 알다시피, 사전은 그 나라 지식문화의 결산이면서 집약이다. 그런 의미에서 3권까지 출간된 <우리말 철학사전>(지식산업사, 2001-3)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적극 격려되어야 한다(*2005년에 4권이 나왔다).

 

 

 

 

이번에 나온 건 <우리말 철학사전> 같은 공동작업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 저작인데, 하나는 박이문의 <사유의 열쇠 - 철학>(산처럼)이고, 다른 하나는 이정우의 강의록인 <개념-뿌리들>(철학아카데미)이다. 박이문 선생의 48번째 책이라는 신간은(나는 그의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20권이 안될 거 같다), 아마도 저자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된 책인 듯싶다. 그 장점이란 건, 사유의 시작단계에서 마치 농부가 밭을 고르듯이, 개념들을 잘 정돈해 줌으로써 옆길로 새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걸 미리 방비해주는 것이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할 만하지만, 그들이 이런 책의 재미를 음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김성곤 교수의 <사유의 열쇠 - 문학>은 올초에 나왔다).

이정우의 신간 역시 서양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뿌리(그리스철학)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음미해본다(*2004년에 2권이 나왔다). 사실 하이데거-가다머 라인의 철학이란 그러한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기' 이상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이런 작업의 의의는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책들과 더불어서 사유의 기초가 되는 이 개념들과 그 번역의 문제에까지 일반의 관심이 확대/심화되기를 기대한다...

기타, 일본근대문학과 관련된 무게있는 저작들이 두어 권 더 나왔지만, 당장의 관심을 벗어나기에 제외한다. 전공인 분들의 '열렬한'소개가 더 나을 거 같기에...

2004.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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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온라인 저널인 '자율평론' 제16호(06. 04. 19)에서 하승우씨의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오해와 차이'를 옮겨온다(필자는 폴 애브리치의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맑스 새롭게 읽기'라는 기획하에 진행된 강연원고로 보이는데(맑스의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 읽기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하여 러시아 인민주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해서이다(오늘날 가장 유명한 아나키스트 지식인으로는 노엄 촘스키와 머레이 북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참에 나도 한번 읽어보고. 참고로, 인용문 전체에 대해서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의 군말에 대해서만 (*)를 표시했다. 모든 강조와 이미지는 나의 것이다.  

1. 들어가며
오늘 같이 얘기할 텍스트는 아마도 이번 강좌 중에서 가장 짧은 글이자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진 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짧고 분명한 글이기에 우리는 이 글의 맥락을 짚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글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즘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난 뒤에 비판하지 않고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런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아나키즘에 대한 우리의 오해부터 먼저 해소시킬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2. 하나의 아나키즘? n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하나의 단일한 이론적 내용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인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골드만, 베르크만의 사상은 조금씩 그 결을 달리 했습니다. 더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론적인 노력보다 실천적인 투쟁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의 이론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대충 4가지 정도의 유파로 아나키스트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①아나키스트-꼬뮨니스트: 국가만이 아니라 사적인 소유권을, 조직을 거부하고 꼬뮨을 통한 대안사회 건설에 역점을 둠(대표적인 사상가로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아나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을 통한 집산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삼음(대표적인 사상가로 미하일 바쿠닌)

③아나키스트-개인주의자: 꼬뮨과 노동조합 모두를 의심하며 자율적인 개인의 직접행동을 주장(대표적인 사상가로 막스 슈티르너)

④ 소박한(just plain) 아나키스트: 자신에게 어떤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이길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대다수의 익명의 아나키스트들)

 

맑스가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루동은 ‘역설의 사상가’(a man of paradox)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지 않겠다”, “나는 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체계적인 이론보다 신문을 만들고 정세를 비판하는 언론인, 평론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평론을 쓰면서 비아냥과 역설을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의 말만 가지고 프루동을 읽을 경우 오해의 소지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엥겔스가 “권위에 관하여”에서 비판했던 바쿠닌 역시 마찬가지의 인물입니다. 바쿠닌은 “어떤 이론이나 이미 만들어진 체계, 이미 씌어진 책이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 나는 어떠한 체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참된 탐구자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계급들에서 혁명의 잠재력을 보았고 이론보다 본능적인 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혁명을 주장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던 바쿠닌 역시 역설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
아나키즘의 토대를 마련한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모두 러시아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귀족이었으나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했던 농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혁명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 모범이 되었던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짜르의 전제정치는 많은 반란을 자극했고, 스텐카 라친(*'라진'이다)과 에멜리안 푸카체프(*'푸가초프'이다. 영어식 표기는 'Pugachev'인데, 모음 'e'는 여기서 'yo'로 소리난다)의 반란이 대표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푸가초프에 대한 최초의 역사서를 쓴 사람은 시인 푸슈킨이었다). 이런 농민반란은 현실에 대한 저항과 증오를 자극했고, 나로드니끼라 불리던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짜르에 대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귀족층을 중심으로 했던 인민주의자들의 활동은 테러를 비롯 짜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용하는 과격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과도 연관되는데, 이들은 러시아 인민이 로마법적인 재산관념, 즉 사유재산의 절대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았고 평화로운 농민공동체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국가는 적이었고 모든 권력은 악이고 죄라는 생각이 인민주의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특유의 기독교 전통도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습니다. 두호보르 종파처럼 “신의 자식들에게는 짜르나 통치권력, 그밖의 어떤 인간의 법률도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종파도 있었습니다(*이 두호보르 종파가 탄압을 받게 되자 캐나다로의 이주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쓴 소설이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실상 작가 톨스토이의 사상 자체가 아나키즘과 친연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레오(*Leo는 Lev의 영어식 표기이다) 톨스토이처럼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인민주의를 실현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박한 영혼을 지닌 러시아 인민이야말로 역사의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인민에 대한 이런 신뢰를 이어받았고 대중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봤습니다(*이때의 '인민'은 물론 '농민'이다.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맑스-레닌은 농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 인민주의의 전통은 러시아 급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인민에게 깊은 신뢰를 품었다는 점에서 동일했지만 그 신뢰를 드러내는 방식, 즉 혁명을 추구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톨스토이처럼 평화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도 있고 트가체프처럼 짜르의 암살과 폭력만이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1881년 3월에는 인민주의자들이 실제로 짜르 알렉산드르 2세(*사진)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테러를 혁명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이런 급진주의자들에는 인민주의자,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전통에는 네차예프라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바쿠닌은 <인터내셔널>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흥미롭게도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에 따르면 레닌은 이 인물이야말로 조직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칭송했다는군요).


 

 

 

 

4.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사실 아나키즘과 맑스주의의 차이점은 목표보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아나키즘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에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살피려 합니다).

첫째, 아나키스트들은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전위조직이나 계급독재를 거부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이 스스로 ‘직접행동’(direct action)할 때에만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히 아나키스트들은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힘으로”, “농민해방은 농민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지요. 서로간의 연대는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실천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반드시 그 당사자들이어야 하고 그 현실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반 대중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특정한 계급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거나 의사결정과정이 중앙으로 집중된 조직을 반대하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생활의 혁명, 즉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가 특정한 발전법칙(역사적 유물론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라 실현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미리 마련될 수 없다고 봤고 새로운 사회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집단적인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아나키스트들이 과학적인 합리성과 의식보다 대중의 본능과 연대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바쿠닌은 대중이 지닌 반란의 본능과 파괴적인 충동에 희망을 걸었고, 크로포트킨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본능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는 냉철한 이성이나 지성보다 창조적인 파괴를 지향하고 서로 보살피는 본능에 바탕을 뒀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의 중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때문에 지식인-아나키스트는 지식인-맑시스트와는 사뭇 다른 '애매한' 포지션을 갖는다).

셋째,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나키즘 이론은 노동계급보다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 이후의 사회를 구상했습니다(프루동 역시 프랑스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죠). 물론 아나키스트들도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로 인한 생산양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봤지만 대규모 공장체제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했고 농민공동체가 가진 본능적인 측면에 주목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아나키즘은 러시아의 전통사상 내지는 자생적 사상이며, 러시아 맑스주의는 (수입된) 서구의 사상이다. 오늘날 이것은 '농민의 사상' 대 '노동자의 사상'으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한 사회를 중앙화된 권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인 이론틀이나 이론적인 청사진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아래 그림은 프루동과 바쿠닌).

4. 맑스는 왜?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맑스는 프루동과 프루동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합니다. 정당을 구성하지도 않고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맑스의 말처럼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맥락을 조금 더 세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맑스는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통찰력이 뛰어난 책”이라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고, 그 뒤 <신성가족>에서도 프루동이 “위대한 과학적 진보이자 정치경제학을 혁명화하여 비로소 참된 정치경제학을 가능케 한 진보”를 이루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에는 파리에서 프루동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맑스와 엥겔스가 주도하던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에 프루동의 동참을 요청했는데, 프루동은 그 취지에 동의했지만 “우리가 운동에서 앞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편협성을 드러내는 지도자가 되지는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척 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고 “문제제기를 결코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라고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프루동은 혁명적인 행동을 개시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했습니다.

프루동은 “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성 바르돌로뮤의 밤[대학살]을 거행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것보다 소유를 천천히 불태우는 쪽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이후 프루동과 맑스의 관계는 깨지고 <철학의 빈곤>으로 맑스는 프루동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죠.



프루동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정당합니다. 프루동은 선거참여를 비판했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그 당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던 프루동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라는 점이죠.

사실 프루동이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은 이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1848년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자, 보통선거권이 가지는 약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보통선거권은 반(反)혁명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르 레프레젱탕 뒤 페플>이라는 자신의 신문에서 프루동은 “공화국은 모든 의지가 자유롭고 국민이 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통치형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의 이기주의이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선거권이 더 늘어나고 합리화되고 자유로워지는 한 이 모든 건 더 분명해진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프루동은 1848년 선거에 출마했고 의원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프루동은 1848년 6월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카베냑의 군대가, 노동자들의 군대가 자신의 형제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난 뒤 의회에서 다른 의원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프루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정치적인 수단에, 더구나 선거라는 수단에 맡기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이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를 구원해야만 한다. 하층 부르주아지를 배고픔으로부터, 중간층 부르주아지를 파멸로부터, 상층 부르주아지를 그 악마같은 이기주의로부터 구원해야만 한다. 6월 23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는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문제와 동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참 역설적인 문체이죠. 언론인으로서 프루동은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프루동은 의원직을 제명당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선거를 통해 예견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 프루동은 “정치에 몰두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짓”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보통선거권을 이용했을 때, 프루동은 선거와 정당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수단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프루동은 정부의 책략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인민이 정부당국과 인민의 본질적인 갈등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다고 선언하며 투표거부주의자들(abstentionists)과 함께 했습니다.

이 운동은 적어도 두 가짐 점, 즉 정치행태에서 지배적인 요소이던 편의주의(expediency)를 거부하고(필자주: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그 순간만을 적당히 넘기려 하는 주의. 근대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보편적인 정치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민주주의의 신화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특히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프루동은 계급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프루동은 부르주아지에게 그들이 과거에 혁명적인 세력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부르주아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노동자 모두를 해방시킬 혁명을,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프루동의 부정적인 생각은 노동조합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조합이기주의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루동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조합이 독단으로 여겨지기에 잠재적으로 자유에 해롭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고 봤습니다. “노동자들의 조합은…그들이 달성한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가가 아니라 사회공화국을 옹호하고 세우는 그들의 조용한 추세에 따라서 판단되어져야 한다.…노동자들의 노동의 중요성은 조합의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않고 남겨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런 뒤에 정치적인 거짓말을 극복했을 때…노동자 집단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상속물인 대부분의 산업을 접수해야 한다.”

또한 프루동은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맑스가 인용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프루동은 “정치적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의식하게 하고, 이 의식의 결과로 이념을 확정하며, 그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런 세 가지 조건을 결합한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실제로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시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프루동은 노동계급의 이념을 상호의존의 이념으로 봤습니다. 프루동에게는 상호의존이라는 이념만이 (농민을 포함하는)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지와 분리시켰고 노동계급에게 진보적인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호관계가 발달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사회의 경제생활에 정의를 도입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反상호주의적 정신이 실행을 막아왔던 평등주의 기반 위에 사회를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상호주의는 인민의 참된 주권을 보장할 연방주의로 표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공화국에서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일련의 대표들이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행하는 조절위원회들에 결합하는 ‘자연스런 집단들’에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자유의 건전한 성장에 해롭다고 여겼던 내전의 폭력 없이도 전체 공동체가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회의 분할구조를 인식하고 사실상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지만, 프루동은 이 투쟁의 유동성에서 상호주의의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루동은 계급투쟁을 공식화해서 영원한 분할을 만들지 모를 어떠한 방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파업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얘기하자면 프루동의 인민은행 계획에 대한 비판은 주로 화폐와 소유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으로 얘기됩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프루동이 추구했던 것을 오해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프루동이 폐지하고자 한 것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소유의 축적이었습니다. 노동거래소를 통한 노동권의 유통은 단지 화폐를 노동권으로 교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노동권이 축적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5. 엥겔스는 왜?
엥겔스는 “권위에 관하여”에서 바쿠닌을 겨냥해 비판을 가합니다. 그런데 바쿠닌은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바쿠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고?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화에 관한 한 나는 장화 만드는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집, 운하, 철도에 대해선 건축가나 엔지니어와 협의한다.…그러나 장화 만드는 사람이든 건축가든 내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것을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온당한 존경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나의 이성, 나의 자유, 그리고 내 과업의 성공에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믿음은 나를 즉각 어리석은 노예,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의지와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엥겔스는 바쿠닌을 비판했을까요? “권위에 관하여”가 씌어진 1872년과 1873년 사이의 시기는 <인터내셔널>을 놓고 맑스, 엥겔스와 바쿠닌간의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다 결국 1872년 9월 헤이그 대회 때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된 시기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은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부에 분파를 만들고 조직을 장악하려 한 악당이라고 주장합니다. 소련공산당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펴낸 <맑스 전기>는 바쿠닌이 “무력하고 억압받는 인민 대중들과 농부들 및 쁘띠부르조아들의 회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에 분파를 만들고 테러와 관련된 비밀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제명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필자주: 그리고 바쿠닌이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은 러시아 짜르의 오크라나라는 비밀경찰제도를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럽의 혁명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망명 이후에도 끊임없는 체포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였죠 *오크라나? '오흐라나okhrana'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아나키스트 작가인 조지 우드콕은 맑스와 바쿠닌의 대립을 개인적인 대립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자와 반권위주의적 자유인의 대립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우드콕은 <인터내셔널>의 다수를 차지했던 조합주의자와 상호주의자들이 바쿠닌을 지지한 반면 맑스의 총무위원회(general council)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인터내셔널>을 지배했다고 비판합니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 글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아나키스트의 분류에 따르면, 개인주의자나 소박한 아나키스트들은 분명 정치적인 권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나 아나코-꼬뮨니스트들은 정치적인 권위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의 권위에 대한 생각은 우크라이나에서 농민꼬뮨을 건설하려 했던 마흐노(N. Makhno, 1889-1934)의 연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흐노는 마을에서 백군과 지주들을 몰아낸 뒤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는 지주들과 그들의 마름들을 따랐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여러분끼리 땅을 분배하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십시오.”

 

 

 

 

그리고 1936년 스페인 시민전쟁 때 국제의용군으로 자원했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얘기는 권위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은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1995)에서도 잘 표사된다.)



아나키즘은 이를 위해 먼저 거대화된 권력을 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은 크게 뭉칠수록 통제에서 벗어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반세계화운동과 아나키즘을 연관짓는 숀 쉬한(Sean M. Sheehan)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나키즘은 스스로 없애려고 하는 권위주의의 씨앗을 내포한 관료제를 낳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흔히 반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흐름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친지역화(pro-localization)는 탈중앙화한 공동체들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동체들은 엘리트나 관료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크로포트킨은 스위스의 <쥐라연합>을 통해 이런 구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엥겔스의 비판,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들이다.”라는 비판이 조금 어긋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6. 오해를 넘어서 차이로
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은 분명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로 묶었던 것은 사회주의였고, 적기와 흑기가 함께 휘날렸던 적은 아주 많았습니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의 가장 큰 적대자는 맑스주의 자체라기보다 그 지류인 볼셰비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중네트워크에 모인 분들도 볼셰비키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레닌을 제거한 맑스주의? 지젝식의 비유를 빌자면, '니코틴 없는 담배'나 '카페인 없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과제는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계속 낯선 이방인으로 배제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때로는 그 상대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벗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맑스주의나 아나키즘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누가 더 올바른가라는 점보다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어나갈 단초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고민을 허투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직 가지 않은 길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0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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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hengken > 중세 천년의 침묵을 깨는 소리 단테
단테 - 중세 천년의 침묵을 깨는 소리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6
R.W.B. 루이스 지음, 윤희기 옮김 / 푸른숲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읽다 보면 피렌체의 시성 단테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 인상적인 문장들을 종합해보면, 단테는 중세와 근세 혹은 근대를 명확히 가르는 하나의 이정표이자, 그야말로 '새로운 인간'이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길래 이 위대한 역사가가 이 정도의 평가를 했던 것일까. 오래 전부터 이 매혹적인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속에 자리잡았지만, 불멸의 고전이라는 <신곡>에는 감히 손이 가지 않았다. 그 방대한 양에도 기가 죽었고, 크리스천도 아닌 내가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집대성이라는 작품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쉬워만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일단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눈에 확 들어오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또 표지에 적혀 있는 "<새로운 인생>에서 <단테>에 이르기까지, 문학적인 전기란 바로 이런 것"이란 문장에 마음이 동했다. 단테를 읽는 동시에, 그동안 겁내기만 했던 <신곡>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단테야말로 처음으로 나타난 완전한 의미에서의 예술가였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룰 때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삶과 사랑과 좌절을 저본으로 삼은 작가였다. 신이 정해준 질서로 꽉 짜인 중세의 세계관 속에서 끊임없는 자기탐구의 의지를 보인 단테에게서 영혼을 바쳐 자아를 구현했던 예술가의 초상, 그 첫번째 초상을 볼 수 있었다.

문학적인 전기라는 표현대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단테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테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새로운 인생>이나 인생의 중반에서 그때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쓴 <신곡>처럼 모든 작품에서 자전적인 요소를 강하게 드러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은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단테의 모든 저작들을 단편적으로나마 죽 짚어본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용기를 내어 <신곡>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단테의 작품들이 하나둘씩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고, 뒤이어 이렇게 평전까지 출간되었다. 서양사에서의 그 중요한 입지에 비해, 우리에게는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이  인물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 그에 대한 제법 명쾌한 답을 볼 수 있기에 여기 옮겨 놓는다.

"끝으로, 새삼 '왜 단테인가?'라는 물음이 가능한 것은, 그가 비록 당시 피렌체 사람들을 겨냥하여 그들의 삶의 조건을 추적하고 기록했지만 그의 그러한 행보는 오늘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아니 이상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질서와 조화의 세계, 진정한 자유인을 향한 단테의 꿈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하기 때문이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영원히 천상의 영역에 묻어두어야 하는 우리 인간의 안타까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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