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이번주 신간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동아시아, 2006)이다. 지난번 <자유론>(아카넷, 2006)이 출간되었을 때 '이사야 벌린과 우파적 교양'이란 제목으로 관련 페이퍼를 적으면서 언론리뷰들을 옮겨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사야 벌린의 1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됐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리뷰가 올라와 있지 않다.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가 쓴 소개 정도가 예외적인데,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은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1909~1997)의 1주기에 맞추어 열린 추모 학술회의의 발표문과 토론 내용을 엮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 ‘다원주의’ ‘민족주의와 이스라엘’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영국과 미국 등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해 심도 높은 논의를 벌였다."

 

 

 

 

그 세 가지 주제를 편집한 이들이 각각 마크 릴라, 로널드 드워킨, 로버트 실버스이다. 실버스는 생소하지만(<숨겨진 과학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실버스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크 릴라와 드워킨의 경우는 이미 다른 저서들이 소개돼 있다(특히나 로널드 드워킨은 존 롤스 이후의 가장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이름이 높다). 이들 외에도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쩌 같은 걸출한 철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리뷰의 내용을 마저 옮기면, "고슴도치와 여우’란 벌린의 논문에서 따온 개념으로, 거칠게 구분하자면 고슴도치와 여우는 각각 일원론과 다원주의에 해당한다.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강조한 벌린은 물론 다원론적 여우의 손을 들었다. 벌린의 생전에도 그러했지만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다원주의를 지향한 벌린이 그 자신 유대인으로서 유대 민족주의인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해 애착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의 지인이기도 했던 아비샤이 마갈릿 예루살렘 헤브루대 교수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아야 하고, 이스라엘 내 무슬림 성지들은 무슬림 당국의 치외법권 아래 두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은 무력을 통해서라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벌린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했다."

이사야 벌린의 최초의 저작이 <칼 마르크스>(1939, 1978 4판)이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에세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고슴도치와 여우>(1953)는 그의 두번째 책이다(얇은 책이다). 고슴도치와 여우가 각각 일원론과 다원론을 상징한다고 돼 있는데, 벌린이 비유하고 있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는 높이 평가하지만 그가 선호하는 작가는 톨스토이이며,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아마도 투르게네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투르게네프와 마르크스는 생몰연대(1818-1883)가 동일하다. 그런 우연의 일치 때문만은 아니지만(사실 벌린이 <칼 마르크스>를 쓰게 된 계기도 아주 우연적이다), 나는 이사야 벌린을 이해하고자 할 때 핵심적인 키워드 두 가지는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가 아닌가 싶다.

사실 러시아 태생(리가 출신이다)의 유태인이기도 하지만 벌린은 러시아 문학과 사상에 정통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시켜주는 저작이 <러시아 사상가들>(1978)이다(책 표지에 실린 이들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게르첸과  벨린스키, 그리고 투르게네프이다). 벌린의 지적 유산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나는 이들 작가/사상가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그가 받은 영향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더불어 바라는 바는 이 책 또한 번역/소개되는 것이다.  

얼마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브라이언 매기가 편집한 <현대철학의 쟁점들은 무엇인가: 거장들과의 대화>(심설당, 1985/1989)를 들춰볼 기회가 있었는데, 전체 15장(15명의 철학자들과의 대화)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장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바로 이사야 벌린 경과의 대화이다('아이사야 벌린 경'이라고 표기돼 있다). 철학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란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신념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가정들에 대해 비판적인 검색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벌린은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든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바로 일상적인 견해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위대한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입센의 희곡의 주인공과 투르게네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혹은 포스터의 <가장 긴 여행>들에 나오는 주인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어서 보다 '철학적인' 대담이 오고가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벌린이 입센, 투르게네프, 포스터 등의 작품들을 거명하는 태도이다. 명망있는 철학자이지만 그는 위대한 문학에 대한 존경 또한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하니, 벌린을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투르게네프 정도는 읽어주는 게 좋겠다. 포스터의 책은 <기나긴 여행>으로 올해 번역돼 나왔지만,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은 진작에 번역/소개돼 있잖은가. 그러한 기본적 태도가 빠지게 될 경우 <전야> 혹은 <전날밤>이라 소개돼 있는 작품 'On the Eve'를 <크리스마스 이브에>라고 엉뚱하게 옮기게 된다(영역본 제목의 'Eve'는 크리스마스와 전혀 무관하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전야>(1860)는 결과적으론 러시아 농노해방(1861)의 '전야'를 보여주게 된 작품이다). 문학에 대한 무지는 철학도의 자랑이 아니라 근심이어야 한다.    

 

벌린의 관한 자료와 이미지들을 뒤적거리다 보니까 존 그레이의 <이사야 벌린>(1996) 같은 책도 눈에 띈다.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기에 입문서로서 유용할 듯싶은데, 영어권에서도 고작 세번째로 출간된 관련 단행본이라고 한다. 이왕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을 챙기기 시작한 바에야 이 정도는 금방이라도 소개해줄 필요가 있겠다...

0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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