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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으로 살아가기 - 오늘도 이름 없이 빛나는 당신에게 ㅣ 크리스천 여성작가 시리즈 5
김선영 지음 / 세움북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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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으로 살아가기 (김선영 / 세움북스)
- 오늘도 이름 없이 빛나는 당신에게
자신을 전업주부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여백의 삶이 주는 기쁨과 감사를 노래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명의식도 느껴진다.
저자의 '일상 영성'은 그녀가 만드는 음식만큼이나 웅숭깊다.
저자가 '당신의 삶에 이름을 붙여보라'는 말을 전업주부들에게 심상히 건넨다.
당신들은 측정되지 않는 사랑으로 기꺼이 여백을 살아내지만 오늘도 우주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라며 응원하는 목소리가 살갑다.
전업주부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고르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BTS의 '소우주'의 가사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마을 교육 공동체 "사랑과 꿈을 먹는 아이들"
읽기 공동체 "다북다복"
"성경 묻고 답하기"
영어 원서 읽기 공동체 "TEB(Tuesday with the English Book)"와 함께하는 삶.
그녀의 이력은 '전업주부'보다 '평생교육 활동가'에 더 가깝다.
그녀는 삶의 장르로서의 읽기와 쓰기를 놓치지 않고,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환대를 실천한다.
"인생 후반전에는 음식과 정원이 있는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여백'이라 겸손히 자신을 낮추지만, 삶의 주연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으리라.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대체로 여백이 아니다.
여백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여백이라 표현하고 싶을 만큼 남편과 아이들이 두드러지고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그것은 고귀한 사랑이고 고결한 삶의 지향점이다.
오늘도 이름 없이 빛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집밥 같은 에세이다. 강추한다.
*** 발 췌 ***
시간은 숫자로만 매겨지는 산술이 아님을 새삼 환기한다. 젊어서는 그랬다. 무의미하다 여기는 것들에게 나의 시간은 인색했다. 나의 시간이 타인에 의해 침범될 때 조급했다. 그러나 의미는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는 것이다. 전업주부의 시간은 지루하다. 정체된 듯 제자리인 듯싶지만 오히려 머물러 만끽하는 시간이다. 무용할 것 같지만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유용의 시간, 물질의 언어로는 측정되지 않는 존재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배경 삼아 이웃의 인심과 만족을, 행복한 미소와 추억을 누린다. 시간은 흐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머무르기도 한다. 32-3
(하나님은) 눈과 눈을 맞대고 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곳, 같이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허드레 같은 일상에 함께 계셨다. 일상이 시가 되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다. 36
한 사람의 전체, 그 존재의 인정과 긍정을 전제로 시작되는 것. 성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자꾸자꾸 언어를 고르게 된다. 성장을 위한 언어, 더불어, 함께 살아감이 성장이 될 수 있는 언어들 말이다. 40
그러나 인생을 더 살아가다 보면, 위대하지 않았던 부모가 다시 위대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는데, 허물투성이 속에서도 살아 낸 인생, 그 인생 자체가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될 때이다. 존경은 때깔 나는 성취보다는 허물투성이의 인생이라도 귀하게 여기며 살아 낸 인생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짓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예수님께 집중하는 마음의 태도, 이것이 살아갈 힘이다. 45
쪽파를 다듬는다. 단순 반복적 행동이 결과를 낳는다. 점차 의욕이 생긴다. 시작하기만 하면, 결국 일은 진행되고 마음의 자세도 바뀐다. 50-1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겸손함이 왜 이렇게 이 작은 생명체 앞에서 자연스러운 걸까. 마음의 근원을 살폈다. 사랑이었다. 사랑은, 겸손을 지켜내야 할 도덕적 덕목으로 억지로 규정하지 않았다. 겸손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 72
대의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이라고 하면서 작은 것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자기 확대의 열망으로 충만한 존재들. 더 팽창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들. 힘으로 제패하려는 것들. 공존과 상생을 도외시하는 것들. 나는 큰 것들이 하는 짓이 싫다. 76
영성이란 일상이 반복될 때 피어나는 꽃이다. 사시사철, 희로애락 오욕의 모든 순간에 밥은 반복되고 반복되어 우리 곁에 있다. 어머니의 밥상은 이름을 발하지 않는다. 집밥은 명예를 말하지 않는다. 명분을 밝히지 않는다. 성과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여전하게 말할 뿐이다. 너는 오늘도 내가 해 주는 이 밥을 먹어 마땅하다고. 92
사랑은 존재의 인정과 격려에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진짜 큰 사랑은 결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인정과 격려는 부족했지만 나의 결함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했다. 특유의 참을성으로. 그리하여 나는 나의 왜곡되기 쉬운 해석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살다 보면 '본성을 따른 그의 사랑 방법이 나의 필요를 채우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겠노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터닝 포인트. 내가 그대가 되고 그대가 내가 되는 지점.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지점이다. ... 나와 그의 언어는 길들여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해석으로. 175-6
많은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버둥 치지만 우리의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이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준비는 '죽음'을 도외시하고는 설계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마지노선에서는 버릴 것과 품어야 할 것을 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 살아가지만 죽어 가는 이 역설은 아마도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193
어떤 모습이든, 어떤 위치나 지위든 우리 각자의 삶은 고귀하며, 그 삶을 긍정하고 수용해야 마땅하다. 이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치유와 자유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영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197
새삼 하나님이 생명에게 허락하신 주체성의 의지가 감사하다. 생명을 시작하시되 자동화된 로봇 같은 생을 살게 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응전하고 도전하며 살아가게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장하고 보호하는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임이 분명하다. 210
세상은 우리 자신을 매양 겉옷으로 평가한다. 성과, 성취와 업적을 따라 산술적인 평가를 한다. 이 잣대에서 비켜 가는 인생은 쓸모 없어지기 일쑤고 자괴감에 몸서리를 친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과연 쓸모의 유무를 고민하게 만든다. 바로 저항이 필요한 때다. 우리 자신을 이런 외부 평가 기준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225
* 세움북스로부터 좋은 책 제공받아 개인적인 리뷰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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