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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4년 9월
평점 :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 이중원 감수 / 김정훈 옮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 던져졌다. 세 번째 책이 나에게 왔을 때, 저자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또 네 번째 책이 나에게 왔다. 책에게 선택당했다고나 할까. 블랙홀만큼 신기한 일이다.
이번 책은 화이트홀에 대한 책이지만, 그동안 로벨리가 천착해 온 '시간'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으로 보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그의 말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워낙 쉽게 설명되어 있어 이해가 가능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의 이론도 완벽하게 확실하지는 않기에.
블랙홀과 연결된 화이트홀이기에, 이 책의 처음은 블랙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화이트홀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웜홀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과 가깝다. 블랙홀로 들어가 웜홀을 지나면 화이트홀로 나가는 것. 그렇게 순간 이동, 시간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 이 이론은 <콘택트>나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와 달리, 로벨리는 블랙홀 자체가 화이트홀로 바뀐다고 한다. 그 변화(도약) 사이에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은 양자 역학이 담당한다(루프 양자 중력). 이에 대한 연구와 증명은 앞으로 수많은 학자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이 증명된다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빅뱅은 우주의 기원이 아니고, 이전 우주의 재탄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블랙홀이 바운스를 통해 화이트홀로 도약할 수 있다면, 빅뱅은 빅바운스(Big Bounce)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 우주가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중력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드러낸 '암흑 물질'의 일부가 화이트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주의 비밀을 한꺼풀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꽉 차 있으니까.
이론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외에도 삶과 연구에 대한 로벨리의 철학을 엿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아인슈타인처럼, 최고의 과학자는 자신의 주장을 자주 철회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놀랍다. 세상에는 자기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별만큼 많은데 말이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만약 그렇다면 맞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은 세상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자기주장에만 매몰되어 불통하고 대립하는 자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작금의 현실에 한탄스럽다.
로벨리는 "의사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고,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대상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의사소통을 하려는 이유는 관계를 맺기 위함이다. 서로 사랑하기 위함이다. 연구도 그렇다. 로벨리는 자신이 연구하는 블랙홀, 화이트홀과 관계를 맺고 사랑한다. 로벨리가 연구할 때 기쁨이 넘치는 이유다.
저 멀리, 우리가 도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연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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