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지만 꼭 필요한, 파란 시간

파란 시간을 아세요? ㅣ 베틀북 그림책 49
안느 에르보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베틀북 / 2003년 9월

1.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시간.
읽던 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채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는 시간.
펼친 책장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시간."

작가는 파란 시간을 정말 아냐고 묻습니다.
요즘처럼 해가 긴 날에는 새벽같이 지나치는 파란 시간을 보기가 힘들고요.
늦게 일어나니까 그렇겠지요?ㅎ

정신 없이 하루를 살다 보면,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은 그냥 지나치기 마련입니다.

그냥 지나쳐 보내니까, 잠시 멈춰 서서 뭔가 생각하는 시간, 잠잠한 시간, 고요한 시간은 갖지 못하네요.

실은 "그림자가 빛나"는 이 시간에, 산책을 하거나 걸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식물에 마음을 빼앗겨서, 잘 보이지 않으면 가까이 가서 고개를 숙이는 수고는 마다하지 않았지만, 잠잠히 생각에 잠기지는 못했네요.

작가의 질문에 그 시간을 안다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2. 파란 시간은 장대발을 신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발을 딛고 자리를 잡지 못해서였을까요?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은 서로 자리를 잡고 티격태격 합니다.
그냥 떠돌아다니면 그렇지 않을 텐데, 자기 소유가 있으면 다툼이 생기나 봅니다.

지혜롭게도 파란 시간은 둘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물론 들키지 말아야겠죠.
대부분의 시간은 가로등 기둥 뒤에 숨어 있습니다.

땅거미 질 무렵뿐만 아니라, 새벽에 태양이 뜨기 전에도 파란 시간은 있습니다.
작가는 이것을 파란 시간이 새벽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합니다.
매우 로맨틱하군요.^^

새벽마다 공주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파란 시간은 그때 조금 더 슬프고 아름다워집니다.

이제 파란 시간은 장대발을 벗고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죠.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니까요.

3. 파란 시간이 골무 모자를 쓰고, 큰 바늘로 웃옷을 여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과 밤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네요.
존재와 세계 사이를 그림자로 부드럽게 이어주기도 할 것 같고요.

완충 역할을 하는 파란 시간.
그래서 파란색이 아름다운가 봅니다.

사실 완충지대의 핵심 시간은 '무지개 시간'입니다.
태양이 막 지고 온 세상이 빨강게 물드는 '빨간 시간'을 지나면 잠시나마 '무지개 시간'이 옵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파란 시간이 찾아오죠.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낮-빨간 시간-무지개 시간-파란 시간-밤'
이렇게 되겠네요.

'무지개 시간'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날을 무지개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4. 파란 시간은 일과 쉼 사이에서 생각이라도 좀 하라고 하는 듯합니다.
가끔은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펼친 책장이 하얗게 빛"날 때,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는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세상이 멈춰진 듯, 숨이 멎을 듯한 이 시간,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에게는 그림책 보는 시간이 파란 시간쯤 되는 것 같습니다.^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