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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의 여행 - 개정판 ㅣ 미래그림책 135
라스칼 지음,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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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의 여행
(라스칼 글/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최고 인기 광대 듀크는 스타 서커스단에서 일합니다.
듀크가 무대에 오르기 전, 곰인 오리건은 재주를 부립니다.
어느 날 저녁, 오리건은 듀크에게 말합니다.
"듀크, 나를 커다란 숲속으로 데려다 줘."
듀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기 짐마차로 돌아와 혼자서 생각합니다.
듀크는 오리건이 가문비나무 숲에서 곰 식구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둘은 오리건으로 길을 떠납니다.
커다란 공장들, 매연이 가득한 하늘, 폐수가 시내처럼 흐르는 피츠버그를 떠납니다.
(피츠버그는 20세기 중반까지 제철과 석탄 산업으로 번성했던 도시입니다.)
둘은 오리건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ㅁㅁㅁㅁㅁ
1. 오리건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둘은 인디언 여관에서 하룻밤을 잤고, 오리건은 삼백 개의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바닥났지만, 듀크는 행복했습니다.
듀크는 오리건을 커다란 숲속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고,
갈 길도 아직 멀었습니다."
새벽같이 길을 떠났고, 우박이 내리면 맞으며 걸었습니다.
드넓은 들판의 거센 바람에 떠밀려 걷기도 했습니다.
달리는 기차의 맨 뒤 칸에 올라타기도 했지요.
오리건은 숲에 도착하자 마자 네 발로 뛰기 시작합니다.
"갇혀 지낸 나날을 모두 잊은" 듯이 말입니다.
2. 이 여행은 오리건을 숲에 데려다주는 여행이었지만, 듀크 자신에게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혹시 나도 그곳에서 백설공주를 만나게 될지..."
어렸을 때 곰 인형조차 가지지 못했던 듀크는 난쟁이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채, 빨강코에 분칠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죠.
오리건을 오리건 숲에 데려다 놓고 듀크는 빨간 코를 떼어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가는 듀크의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습니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칠도 다 지웠을 겁니다.
새하얀 눈에 벅벅 문질러서 그랬을 겁니다.
듀크는 그곳에서 백설공주를 못 만났지만,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3. 오리건이 듀크에게 부탁을 한 것은, 듀크의 상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기 싫다는 마음속 울림이 오리건의 입을 통해 들려졌을 겁니다.
오리건을 오리건에 데려다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듀크의 생각이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더 가까운 숲이 분명 있었을 텐데, 오리건까지 데리고 간 걸 보면 듀크의 의지가 강하게 작동했을 거란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펜실베니아에서 오리건이면 그 큰 나라 미국을 동에서 서까지 횡단하는 일이었거든요.
피츠버그를 떠나는 둘의 모습이 왠지 닮아보이는 건 저만 그런 건가요?
오리건은 듀크였을지도 모르죠.^^
4. 마음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가는 구절들이 있네요.
"우리는 한 식구였어요."
"우리는 새벽에 길을 떠났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모습이 그 차보다는 나았습니다."
"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트럭 운전수 스파이크는 흑인이었고, 그의 삶은 난쟁이 듀크만큼이나 녹록치 않았습니다.
흑인으로 사는 건 쉬운 일 같냐는 스파이크의 물음에 듀크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삶을 사는 스파이크와 듀크와 오리건의 표정이 똑같습니다.
그런 듀크가 "그래, 이제 나는 새 삶을 사는 거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라는 현실이, 깊은 숲속 눈보라처럼 표현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약속을 지키는 삶을 살면, 누구나 가볍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온 세상이 우리 것"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듀크와 같이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어서 오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