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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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강하다.
어느 가족들이 사연이 없을까.
 
겉에서 보기에 정말 평범해보이는 집안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뭔가를 갖고 있다.
어쩔때는 정말 남보다 더 상처를 주면서도 그러면서도 무엇보다도 제일 소중한 그들.
 
난 엄마의 성격과 아빠의 성격을 어느 정도씩 물려받았다.(성격이 유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다분히 개인주의적 성향은 엄마의 영향이다.
 
우리 엄마는 딸,딸,딸,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압박에 엄마는 내 나이때 다분히 질곡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엄마의 모습은 냉정했다. 엄마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를 대자면 내가 어렸을 때 엄마의 팔짱을 자연스럽게 꼈는데 엄마는 탁! 쳐낸것이다.(정말 귀찮다는듯이)
 
내가 대학교때 엄마가 나의 팔짱을 꼈다. 내가 팔을 빼내며
나 : 왜 이래~
맘 : 넌 왜케 애가 냉정하냐
나 : 머야 이건 다 엄마의 영향이야.
 
그러면서 나의 트라우마 얘기를 했다. 상당히 어렸을 때 꽤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개과천선했다. 막내를 키울 때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와는 다른 정서를 가졌음을 알았다. 젊었을 때 엄마는 차가운 얼음 같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드러워졌다. 긍정적인 생활태도와 웃는 모습이 더 늘어났다. 엄마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숙했다.
 
난 고3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길게는 3개월에 한번씩 엄마를 보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난 항상 엄마한테 얘기했다.
 
나 : 엄마 진짜 개과천선했네.
 
우리 엄마는 강하다. 내가 아무리 핼쓰를 열심히 해서 팔근육을 키워도 엄마에게 팔씨름을 못당한다. 같이 수영장을 가도 그 체력을 내가 따라갈 수 없다.
 
우리 엄마는 좀 쿨하다. 내가 뭔가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넌지시 말하면 그냥 쿨하게 답변을 준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말했다.
아빠 : 야 너네 엄마 베란다에서 보고 있다 손 흔들어줘라.
나 : (그 모습에 놀라서)아 진짜 엄마 나이들었나봐 청승맞게 왜 저래
 
난 그 때 엄마가 나이 들어간다는 걸 느꼈다. 왠지 짠했다..
 
우리 집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는 수술을 많이 하고 아프셨다. 그리고 아픈 할머니는 집안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대학생때 내가 방학 중 내려가면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게 일이었고 솔직히 할머니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기 싫은 적도 있었다.
 
난 그렇게 도피를 하면 되지만 난 엄마한테 미안했다. 나도 엄마의 성격을 아니깐 엄마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모든 것을 당연하듯이 요구하고 집안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아무도 할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못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동생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밤에 병간호를 한 적이 있다.
 
아침에 내가 교대를 하러 갔을 때 동생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밤새 할머니가 이거해라 저거해라 주물러라 소변마렵다 이래서 잠도 못자고 시달린 것이다. 난 정말 화가 나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 : 나 잘 때 뭐 시키지마 . 할머니 침대 복도에다 내다 놀꺼야! 왜 자기 생각만 하는데!
 
할머니는 아빠한테 일렀고 아빠는 나한테 타이르듯이 말했다.
 
아빠 : 할머니한테 말이라도 다정하게 해드려. 아프셔서 그러는데.
나 : 아빠는 아빠 엄마니깐 그렇지만 난 우리 엄마를 더 생각해. 아빠가 다 받아주니깐 할머니가 더 저러시는거 아냐.
 
가족 중 나만 악역인 것 같았다.
 
난 가끔 상당히 엄마에게 정떨어지게 행동하고 말했다.
 
엄마가 전화했을 때
맘 : 뭐해?
나 : 서울 좀 가고 있어.
맘 : 누구 만나?
나 : 친구.
맘 : 친구 누구?
나 : 아 왜 그러는데?
 
맘 : 어디야?
나 : 밖에
맘 : 뭐하는데?
나 : 그냥 친구들이랑 놀고있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소설을 보면 전형적인 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가 전화해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고
'어디 좀 가고 있어요''일이 있어서요.'
이런 식이란다.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좀 찔렸다.
 
아빠와 엄마가 건강검사를 했다. PET CT라는 것도 찍으면서 좀 비싸게 했다.
 
아빠는 암도 없이 건강했다. 엄마도 암이 없었다. 그런데 뇌 혈관에 안좋은 게 있었다. 꽈리라고 했다. 그게 터지면 사망, 아니면 풍을 맞는 거라고 했다. 평생 문제가 안될 수도 있지만 뇌에 시한 폭탄을 갖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난 수술하기 전까지 3일 정도 엄마와 병원에 같이 있었다. 멀쩡하던 엄마가 환자가 됐다. 엄마는 속상해하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너무 속상했다.
 
3일동안 계속 둘이 붙어있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해주는 건 별게 아닌 거 같다.
 
엄마는 나의 연애 얘기를 듣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연애를 하면 엄마도 설렌다고 했다.
 
같이 밥을 먹고 TV를 보고 옆에서 잠을 자고 수술 전 준비들을 하면서 3일이 지나갔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각 의사들한테 4번 정도 들었다. 집도의에게 설명들을 때는 아빠와 함께 있었다. 집도의는 긍정적으로 설명했다. 엄마는 의사들과 상담하러 갔다 올때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아빠와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수술전날 난 두 개의 동의서에 싸인했다. 두 명의 의사는 수술중 불의의 사고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얘기했다.
 
"수술중 혈관이 터지면 사망할 수 있습니다. 혈전이 다른 혈관을 막으면 그 부분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계속 사망할 수도 있다. 안 보일 수도 있다. 뇌가 손상될 수 있다. 이런 식의 얘기를 줄줄이 읊어갔다. 난 들으면서 계속 눈물을 참았다.
 
병실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또 불안하듯이 물었다. 난 그냥 쉬운 수술이래. 잘 될꺼래. 이렇게 얘기했다.
 
난 수술이 끝날 때까지도 사고나 부작용에 대해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다.
 
수술은 아침 8시부터 시작됐다. 아빠, 나, 동생 세명이 모였다.
 

나 : 환자 한명이 생기니깐 정상인 세명이 출동했네.
하고 말했다.
 
집안 사람 한명이 아프면 한 사람분의 경제력만 잃는 것이 아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난다.
 
우리 집은 할머니때문에 그것을 너무 잘알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엄마니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더 건강해질 것 같았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은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많은 환자들이 수술실에 들어가있었다.
 
환자가 수술이 끝나면 스피커에서 환자이름을 대면서 보호자들을 회복실로 불렀다.
 
3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의사가 나왔다.
"전은순 씨 보호자분"
 
난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회복실로 부르는데 우리는 왜 수술실로 부르는지. 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도의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앉아 있었다. 엄마의 뇌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수술 과정을 보여주느라 보호자를 부른 것이 었다. 의사가 설명하는 동안 난 또 나오는 눈물을 참으려고 입을 꽉 물었다.
 
수술은 정말 잘되었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엄마는 마취에서 깨어나며 헤롱댔다. 난 엄마한테 첫마디
나 : 잘 보여?
그랬더니 엄마는 끄덕거렸다. 한 30분쯤 지났을 때 엄마는 거의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아빠는 옆에서 엄마를 위로해주고 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나 : 내가 나중에 보여줄께. 대땅 웃길걸.
 
엄마는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맘 : 살았다.
 
아빠가 죽을 것도 아니었는데 뭘 그러냐고 엄살이라고 그랬다.
난 얘기했다.
 
나 : 나만 엄마가 수술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엄마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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