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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7월
평점 :
살육에 이르는 병 X 밀랍천사(자우림)
※스포일러 함유량 99%! 고수위 단어남발 100%! 감상에 주의해주세요!
이번 리뷰는 왠지 모르게 경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여러 의미로 놀라운 작품이에요.
일단 <악의 교전>이후로 이렇게 읽으면서 기분이 거북해지는 소설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악의 교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아요. 보통 범인의 시점에서 쓰이는 형식의 소설들은 좋든 싫든 행적을 동행하다 보니,
범인의 심리와 동기에 조금씩 동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은 명백히 독자와 범인을 분리시켜줍니다.
절대 동조나 공감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달까요. 예를 들어 <악의 교전>의 하스미는 적어도 자신이 저지르는 일련의
끔찍한 행위들이 범죄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고, 죽음에 이르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인지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그는 범죄행위를 하나의 수단으로써 사용합니다.
그런데 <살육에 이르는 병>의 김춘배(가명. 전국의 춘배씨께 사죄드립니다.)는 시쳇말로 '정신승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고, 시간하고, 사체까지 훼손하는데도,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서"라며 철저히 자기최면을 겁니다.
아니, 본인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점이 더 경악스러웠고, 경멸스러웠습니다. 범인의 개인적인 망상을 걷어내
보면 정말 졸렬하고, 악랄하고 추한 범죄행위에 불과한 것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기분을 똥뚯간에
뒹굴리다가 하수처리장에 클린히트 시키는 것처럼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달까요. 어찌 됐든, 세상이 어떤 평가를
하든 간에 소설 속 김춘배는 체포되어 심판을 받기 전까지, 자우림의 <밀랍천사>의 가사처럼, 자신만의 유토피아에서
'선택받은' 여인들과 사랑을 하며 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과의 행복했던 관계의 순간을 음미합니다.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 돋네요, 정말.
이 소설을 읽기 전, 리뷰를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더랬습니다. "경악할 만한 반전", "마지막 한줄을 읽는
순간 책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서술트릭 소설의 마스터 피스". 덕분에 강제로 스포일러 당한채로 소설을 읽게 되었달까요.
'서술트릭'과 '반전'이라는 키워드들로 소설의 전개와 뒷통수를 치는 방식이 어떤 것일지 싫어도 짐작이 되었거든요.
딱히 제가 똑똑하다거나, 추리소설의 내공이 깊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서술트릭을 이용한 <Who done it>형태의
추리소설은 패턴이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범인 은폐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대개,
① A를 B처럼 묘사한다. A를 A라 특정짓는 확실한 표현없음. A,B 모두 해당되거나 A를 B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모호한 묘사.
② A의 1인칭 시점. 다만 A가 누구인지 확실한 표현없음. A를 B,C,D...∝ 중 하나로 착각하게 만드는 표현 or 전개를 펼친다.
이런식으로 흐름이 이어지기에, 분명 소설 속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범인에 대한 힌트를 곳곳에 뿌려두었을 거라 예상하고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소설을 읽게 되었거든요. 사실 이런 방식은 추리소설에서 흔하게 보이지요. 일명 불공정 미스터리.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살육에 이르는 병>은 대단히 공평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힌트를 비스킷 조각
뿌리듯이 공들여 여기저기 뿌려놓은 흔적이 잘 보이거든요. 범인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하는 한방 키워드도 종종 보이고요.
다만 걸출한 필력과 뉘앙스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세련된 방해공작을 펴는 것뿐. 그런 의미에 보면, 불공정 미스터리
보다는 야바위 미스터리라 불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껄껄. 물론 속아넘어가도 기분 좋은 류의 속임수 말이죠.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는 서술트릭의 수작(秀作)"
저는 이 <살육에 이르는 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월의 흐름이야 어느 소설이든
시간이 지나간 다면야 거쳐가야할 수순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보다 더 세월의 흐름이랄까...유난히 과도기적 한계가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이랄까요. 소설에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이 개인의 선천적 결함, 성향의 문제가 아닌 핵가족화로 인한
사회적 병폐의 문제로 풀어나갑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이 어머니를 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성적자아성을 네크로필리아라는 이상성욕 및 정신적인 성불능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써놓고도 헷갈리는 개념;;) 이런
성적 전이 현상이 과연 정말 가능한 것인지, 실제 사례가 있어 연구되고, 입증된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아비코 작가님은 당대의 유명짜한(?)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들을 죄다 짜깁기해서 악질적인 콜라주를
탄생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악마가 탄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가정과 사회적 병폐,
이 모든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더 무리수가 된 건 아닌가 싶어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억압과, 부모의 성교행위를 목격한 일종의 정신적 트라우마(아자세 콤플렉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머니를 사랑하고, 죽이고 싶은 양가감정이 네크로필리아라는 이상성욕으로 이어졌다...가
오이디푸스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네크로필리아, 사체훼손과 수집, 화룡점정으로 선민사상까지.
이 정도 키워드만으로도 역사 속의 악명 높은 살인마들이 여럿 떠오르지 않습니까? 소설 속에서도 작중 인물을 통해
언급되기도 하고요. 소설의 배경이었던 1988년대 전후의 사건들의 범인들도 콜라주의 한 조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사가와 잇세이 사건, 포르말린 절임(...)사건 등등. 뭐 이쯤 되면 범인은 거의 걸어 다니는
엽기 살인마 테마파크 쯤 되지 않나 싶네요. 일상생활 가능하셨어요? 묻고싶을 정도로.
어째 사설이 길어지는데, 어쨌거나 아쉬웠던 건 위에서 말했듯이 세월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랄까요.
지금은 비판과 함께 고전 취급을 받고 있는 프로이트 심리학 이론이나, 현시대의 프로파일러들이나 심리학자라면 거품을
물고 달려들만한 때 지난 이론들도 간간이 보이고, 무엇보다 동성애를 이상성욕으로 취급할 정도면...세월이 흐른 작품이긴
하구나, 싶었습니다. (마치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를 읽는 기분?)
뱀발)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던 것 또 한가지. 춘복씨(가명)가 어떻게 해서 춘배씨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되지 않아 되게 아쉬웠습니다. 서술트릭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뒷부분에 후일담 식으로라도 넣어줬다면...싶었어요. 가장 불쌍하다고 느낀 인물이 춘복씨
였었거든요. 범인으로 의심받질 않나, 범인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맘고생을 하질 않나, 게다가 마지막까지 그리 고통받고
끝나니...아마도 범인 때문에 가장 심적으로 고통받았을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춘배씨. 엄청 동안이신가 봐요! 껄껄. 아니면 거의 제레미 아이언스 급의 마스크를 지니고 있다던가...
소설을 읽다 보면 얼마나 동안 or 미남이길래 저런 구리디 구린 작업기술이 먹히는 거여...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