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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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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X  돌이킬 수 없는 걸음(장화, 홍련 OST)





     
 
시간과 공간, 생과 사에 대한 확신마저 몰아치는 모래바람에 의해 희미해지는 메마른 사막과, 몸과 영혼을 짓누르는

후회의 무게- 그에 맞먹는 용인될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의 고통에 의해 악몽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외딴 집.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두 장소엔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으로 인해 삶의 방향마저 틀어진 두 주인공들이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내디뎌선 안될 한 걸음을 내딘 <모래바람>의 진구와, 반대로 사랑하는 이의 상실로 향하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내디뎌선 안될 발걸음을 재촉한 <장화, 홍련>의 수미가 그 주인공들이다.  
    
 
     
     

    

 

 



 
<진구 시리즈>4번째 작품인 <모래바람>. 작품의 초반 부분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의아해졌다.

작품의 도입부- 진구는 학창시절부터 서로 선의의 경쟁과 지적 자극을 충족시켜주며,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소꿉친구

연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회장에게서 그녀의 치부를 조사해 달라는

질 낮은 의뢰를 받는다줄거리에서 보이듯, 단순히 인간의 욕망과 그에 따른 추한 이권 다툼을 핵심적인 줄거리로 다루고

있는 듯 보이는 작품의 제목이 왜 하필 <모래바람>인 것일까. 단지 진구의 과거의 그림자 한켠이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막에 있다는 건 너무 빈약한 근거 아닐까.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민화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악랄한 계모와

무능력한 가장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장화, 홍>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기존 민화의 내용에 약간의 비쥬얼 쇼크만 첨가한 여름철 흔하게 개봉되는 킬링타임 호러 무비를 생각했었다

지만, 두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은 모두 섣부른 오판이자 아둔한 편견이었다. <모래바람>은 작품의 제목 그대로,

절망이 모래바람처럼 몰아치는 사막에서 진구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삶과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 되어 

그를 덮쳤고, <장화, 홍련>이란 제목은 옛 민화와 닮아있는 그들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상징하는 첫 번째 장치였을 뿐,

이면에 감춰진 비밀과 진실에 비한다면 많은 이야기들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제목이었다. 결국 두 작품 모두 제목을 통해

감추고 또 드러내며  독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앞으로  풀어 낼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랄까.
 
     

 

 





결국 나는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왜 순수한 열정과 충족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삶이 사막과 같이 건조하고 메마른-
돌이킬 수 없이 황폐해지고 버려진 곳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빛을 품었던 두 대상, 순수한 지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주었던 "수학"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친구 "연부"에게서 등을 돌린 채, 

왜 그들을 과거의 유물로 남겨두고 떠나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는 진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일화가

몇 개 나오는데, 그의 독특한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그 뿌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일화들이 실려있어, 진구라는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다른 것이 틀린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진구가 성장하며 타의에 의해 강제로 받아들이게 될 차별과, 그에 따른 고립과 절망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일화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제는 사막의 모래에 덮여진 그들의 비극이 더욱더 극적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수미가 품고 있던 비극이 어떤 모습인지, 그녀의 악몽의 실체가 무엇인지,

자신이 만든 지옥 속에서 심판자이자 죄인이고,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스스로 지도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진구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은 마치 고향에 돌아가자는 권유를 받고서도 승낙하지 못하는, 고통에 절은 방랑자의 그것 같았다."
<모래바람>

"너,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장화, 홍련>

    




 


사막 속에선 미세한 한 걸음의 틀어짐에도 생과 사를 가르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걸음이 되고,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 찰나의 판단이 미래를 좌우하듯-진구는 그 한순간, 자신의 선택에 의해 틀어진 방향에 그의 남은 삶을 사막 같은

메마르고 건조한 장소로 만들고 평생토록 헤매게 만들었고, 수미 또한 마지막 기회의 순간으로부터 발걸음을 돌림으로 인해, 스스로의 죄책감이 창조해낸 지옥 속에서 유령처럼 헤매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 한 걸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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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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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 사건부  X  심판의 날(각시탈 OST)









일제강점기 시대를 두고, 서로 다른 시야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추리소설 <별세계 사건부>와 드라마 <각시탈>이
주인공들이다. 추리소설과 드라마라는 매체의 차이에서 오는 온도차의 이유도 있겠지만, 이 두 작품 사이에 있는
결정적인 차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일제 강점기 시대라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독립을 향한 끓어오르는 의지와 투쟁, 의열단 및 한인 애국단과 같은 독립운동단체, 영원히 기억될

참혹한 상처인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의 주제는 이 작품의 중심이 아니다. 아래에서 계속 언급될 그 시대를 살아갔던

보통의 사람들이 작품의 주된 중심이자 주제이다. 이 점에서 오는 작품의 정체성을 풀어보기 앞서, 두 작품의 주인공들을

통해 느껴지는 묘한 차이점을 설명해야 맞는 순서일 듯싶다. <각시탈>의 이강토와 <별세계 사건부>의 류경호는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은 주인공들이다. 둘 모두 개인의 노력으로 나아질 수 없는 현실과 나라를 위해 희생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불합리함 등, 시대에 희생되어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관망자가 된다는 점이 비슷한 반면, 이강토는

형과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형의 유지와 신념을 이어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히어로로 재탄생 한다면,

류경호는 이 무저갱 같은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이데올로기와 상관없는 개인이, 추악한 욕망과

손익으로 희생되는 눈앞의 현실에 맞서기 위해, "힘없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무관심과 염세주의를 벗어던지고

사건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각시탈>이 이강토라는 주인공과 그의 행적, 시대적 묘사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시대의 풍경과, <별세계 사건부>가 류경호라는 주인공과 그의 행적, 시대적 묘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시대의 풍경은

색채와 분위기부터가 다른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임과 동시에, <별세계 사건부>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는 결정적 분기랄까. 
  







<별세계 사건부>에서 묘사된 시대상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들이나 학생들, 지식인들 그리고

지배와 횡포에 짓눌리거나, 기약 없는 여명을 기다리는 것에 지친 나머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자신의 신념을 버린 이들.

나라의 명운이 달린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삼아 앞장서 친일행위에 몰두하는 친일파들만이 존재하는 흑백의 시대가 아니다.

고통과 어둠의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선 진흙 구정물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수영을 하며,

숨을 쉬는 법을 익혀야 했다. <별세계 사건부>에서 조명을 받는 이들은 바로 이런 이들이다.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진

않았지만, 맹목적으로 빛만을 바라보고 있기엔 지친 많은 이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누구에게도 특별히 기억되진 않는. 당장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이것을 두고 정명섭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비록 역사에 아무런 족적을 남겨놓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 삶조차 외면할 필요는 없다. 아울러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고민했는지도 담아보고 싶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지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애를 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과 성찰을 거쳐야만, 우리는 비로소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
 사람이라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류경호는 전형적인 시대의 희생자다. 게이오 대학 설립이래 가장 천재적인 학생이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하에선 <의심스러운 조센징>에 불과하고, 그의 모국인 조선에선 <시골뜨기 첩의 자식>이라는 레테르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가족은 유능하고 명석한 그가 혹여 자신들에게 돌아올 재산을 조금이라도 가로챌까,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적대감과 의심의 눈초리만을 보내기 일쑤다. 독립운동가로써 첫 발을 내딜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무대에선, 배신으로 인해 밀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 도망치듯 쫓겨나야 했고, 빛이 보이질 않아 어둠에

익숙해졌다 말하는 최남선처럼 시대를 따라 친일로 흘러갈 만큼 비관적이진 못했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양극단의 중간지점에 벌 받듯 서 있는 형국. 그게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 류경호의 위치다.

이토록 위태롭고 불완전한 인물의 시각으로 바라본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는 과연 어떠한 시대였을까?








<별세계 사건부>에 나오는 인물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외상값을 차일피일 미루는 손님에게 하소연하는 
인력거꾼, 도축장이나 쓰레기 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고작 하루 벌어 하루 먹을 돈을 버는 사람들, 기사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자들, 바늘방석보다도 불편한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부들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이런 이들이 희망의 불씨이자 작은 빛이라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려 표현한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언젠가 새벽은 오고 동이 틀 것이라고. 작품을 읽기 전- 약간의 꺼림칙함을 안게 해준 실존 인물인 <최남선> 또한,

이런 방식으로 조선의 변화를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당장은 일본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점점 더 많은

조선인들이 정관계에 진출해 내부에서의 점진적 변화를 지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류경호의 입을 통해

탁상공론적이라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별세계 사건부>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했던 다각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이런 측면들이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투쟁과 굴복, 희망과 절망, 신념과 배신에 얼룩진 양극단의 시대에서도, 중간지점에 서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고,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또한 있었으며, 세태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한 군상을 바라보아야만 우리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갔던 작은 빛들을

놓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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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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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X  Starlight(Muse)


 

 


갖가지 색의 별들이 궁륭(穹隆)을 이루는 별들의 바다. <내 심장을 쏴라>를 책장에서 꺼낼 때면 손가락에 만져지듯,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듯, 별들이 밤하늘을 제 빛으로 밝히듯, 선명히 떠오르는 문장이다. 책 속의 배경이었던 무한하고,
생명력 넘치는 푸른 하늘 곳곳을 누비며, 자유롭게 비행하는 태양빛처럼, 강렬하게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
그리고 그 빛에 눈을 빼앗긴 승민과 수명이 꿈꾸던 별들의 바다를 닮은 음악이 있다. 바로 뮤즈의 <Starlight>. 밤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빛들로도 모자라, 온 우주에서 영롱히 흘러 다니는 별들의 빛을 제 품안 가득히 안고, 배부른 미소를 짓는

것만 같은 이 곡은, 온 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 절망과 편견의 레테르를 단 총구가 자신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고 있는데도,
자신만만하게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거라 외치던 남자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사실 약간의 사심(?)이 섞여들어간 마음으로 구매하고, 읽게 된 책이다.
예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지만, 접할 기회도, 정보도 많지 않았던 '정신 병동'(정확히는 폐쇄 병동)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매체에서 자주 표현되고, 다뤄지는 정신 병동은 대체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들을(그것이 실제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든, 부정적인 이미지든) 주로 사용하거나, 실제 정신 병동
에 대한 전문적인 자료조사가 전무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컸었다. 게다가 정유정 작가님 본인이 직접 실습을 하며 체험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신 것이라, 이 점도 이 책의 선택에 한몫을 했었다. 이렇게 현실에 한쪽 발을 담근 이 소설은
수리희망병원의 레지스탕스. 수명과 승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그림자를 얼핏 보는 것만 같았다.
비슷한 내용이나 소재라던가 하는 1차원적인 비판이 아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다뤄지던,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완전히 빛을 잃어버리고(혹은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먼지로 흩어져 버릴 것만 같은 그들의 삶 아닌 삶의 이야기와,
운명이 삶을 침몰시키는, 모든 것이 내 어깨 위로 무너져 내리는 절망과 분노, 체념에 대한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암흑 너머로 조심스럽게, 동시에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여명과도 같은
희망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닮아있었기 때문이리라.




 

"내 시간 속에서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나'라는 존재의 증표, 삶의 이유. 육체적인 죽음과는 상관없이 '나'라는 존재로써 살아가기 위해 저항하고 희망하는 승민과
자신의 삶이란 무대 위에서 단 한 번도 중심에 서 있지 못한 채, 이름 없는 유령처럼 주변을 떠돌던 수명. 이율배반의 

대치점 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선 둘을 통해, 소설은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내놓길 종용한다.
"너는 누구냐?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텅 빈 주머니 같던 수명의 삶에, 승민은 질주하는 자유를 가르쳐 주었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을 가르쳐 주었다. 수명은 승민이 자신에게 새겨준 것을 손에 쥐고 답한다. "나는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내 심장을 쏴라>는 나에게 시리도록 푸른 여름 하늘을 바라볼 때, 총 천연의 색을 빛내는 별들의 바다를 바라볼 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살아갈 때,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불길을 충동질하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모든 살아있는
이들의 멋진 활공장이 되어 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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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검은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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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X 밀랍천사(자우림)



※스포일러 함유량 99%! 고수위 단어남발 100%! 감상에 주의해주세요!




이번 리뷰는 왠지 모르게 경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여러 의미로 놀라운 작품이에요.
일단 <악의 교전>이후로 이렇게 읽으면서 기분이 거북해지는 소설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악의 교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아요. 보통 범인의 시점에서 쓰이는 형식의 소설들은 좋든 싫든 행적을 동행하다 보니,
범인의 심리와 동기에 조금씩 동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은 명백히 독자와 범인을 분리시켜줍니다.
절대 동조나 공감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달까요. 예를 들어 <악의 교전>의 하스미는 적어도 자신이 저지르는 일련의
끔찍한 행위들이 범죄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고, 죽음에 이르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인지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그는 범죄행위를 하나의 수단으로써 사용합니다.

그런데 <살육에 이르는 병>의 김춘배(가명. 전국의 춘배씨께 사죄드립니다.)는 시쳇말로 '정신승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고, 시간하고, 사체까지 훼손하는데도,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서"라며 철저히 자기최면을 겁니다.
아니, 본인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점이 더 경악스러웠고, 경멸스러웠습니다. 범인의 개인적인 망상을 걷어내

보면 정말 졸렬하고, 악랄하고 추한 범죄행위에 불과한 것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기분을 똥뚯간에

뒹굴리다가 하수처리장에 클린히트 시키는 것처럼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달까요. 어찌 됐든, 세상이 어떤 평가를

하든 간에 소설 속 김춘배는 체포되어 심판을 받기 전까지, 자우림의 <밀랍천사>의 가사처럼, 자신만의 유토피아에서

'선택받은' 여인들과 사랑을 하며 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과의 행복했던 관계의 순간을 음미합니다.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 돋네요, 정말.




이 소설을 읽기 전, 리뷰를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더랬습니다. "경악할 만한 반전", "마지막 한줄을 읽는

순간 책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서술트릭 소설의 마스터 피스". 덕분에 강제로 스포일러 당한채로 소설을 읽게 되었달까요.
'서술트릭'과 '반전'이라는 키워드들로 소설의 전개와 뒷통수를 치는 방식이 어떤 것일지 싫어도 짐작이 되었거든요.

히 제가 똑똑하다거나, 추리소설의 내공이 깊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서술트릭을 이용한 <Who done it>형태의

추리소설은 패턴이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범인 은폐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대개,


① A를 B처럼 묘사한다. A를 A라 특정짓는 확실한 표현없음. A,B 모두 해당되거나 A를 B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모호한 묘사.
A의 1인칭 시점. 다만 A가 누구인지 확실한 표현없음. A를 B,C,D...∝ 중 하나로 착각하게 만드는 표현 or 전개를 펼친다.


이런식으로 흐름이 이어지기에, 분명 소설 속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범인에 대한 힌트를 곳곳에 뿌려두었을 거라 예상하고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소설을 읽게 되었거든요. 사실 이런 방식은 추리소설에서 흔하게 보이지요. 일명 불공정 미스터리.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살육에 이르는 병>은 대단히 공평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힌트를 비스킷 조각
뿌리듯이 공들여 여기저기 뿌려놓은 흔적이 잘 보이거든요. 범인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하는 한방 키워드도 종종 보이고요.
다만 걸출한 필력과 뉘앙스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세련된 방해공작을 펴는 것뿐. 그런 의미에 보면, 불공정 미스터리
보다는 야바위 미스터리라 불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껄껄. 물론 속아넘어가도 기분 좋은 류의 속임수 말이죠.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는 서술트릭의 수작(秀作)"
저는 이 <살육에 이르는 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월의 흐름이야 어느 소설이든
시간이 지나간 다면야 거쳐가야할 수순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보다 더 세월의 흐름이랄까...유난히 과도기적 한계가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이랄까요. 소설에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이 개인의 선천적 결함, 성향의 문제가 아닌 핵가족화로 인한
사회적 병폐의 문제로 풀어나갑니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이 어머니를 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성적자아성을 네크로필리아라는 이상성욕 및 정신적인 성불능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써놓고도 헷갈리는 개념;;) 이런

성적 전이 현상이 과연 정말 가능한 것인지, 실제 사례가 있어 연구되고, 입증된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아비코 작가님은 당대의 유명짜한(?)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들을 죄다 짜깁기해서 악질적인 콜라주를

탄생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악마가 탄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가정과 사회적 병폐,

이 모든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더 무리수가 된 건 아닌가 싶어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억압과, 부모의 성교행위를 목격한 일종의 정신적 트라우마(아자세 콤플렉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머니를 사랑하고, 죽이고 싶은 양가감정이 네크로필리아라는 이상성욕으로 이어졌다...가

오이디푸스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네크로필리아, 사체훼손과 수집, 화룡점정으로 선민사상까지.

 

이 정도 키워드만으로도 역사 속의 악명 높은 살인마들이 여럿 떠오르지 않습니까? 소설 속에서도 작중 인물을 통해

언급되기도 하고요. 소설의 배경이었던 1988년대 전후의 사건들의 범인들도 콜라주의 한 조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사가와 잇세이 사건, 포르말린 절임(...)사건 등등. 뭐 이쯤 되면 범인은 거의 걸어 다니는

엽기 살인마 테마파크 쯤 되지 않나 싶네요. 일상생활 가능하셨어요? 묻고싶을 정도로.
어째 사설이 길어지는데, 어쨌거나 아쉬웠던 건 위에서 말했듯이 세월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랄까요.
지금은 비판과 함께 고전 취급을 받고 있는 프로이트 심리학 이론이나, 현시대의 프로파일러들이나 심리학자라면 거품을
물고 달려들만한 때 지난 이론들도 간간이 보이고, 무엇보다 동성애를 이상성욕으로 취급할 정도면...세월이 흐른 작품이긴
하구나, 싶었습니다. (마치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섬 악마>를 읽는 기분?) 
 



뱀발)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던 것 또 한가지. 춘복씨(가명)가 어떻게 해서 춘배씨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되지 않아 되게 아쉬웠습니다. 서술트릭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뒷부분에 후일담 식으로라도 넣어줬다면...싶었어요. 가장 불쌍하다고 느낀 인물이 춘복씨
였었거든요. 범인으로 의심받질 않나, 범인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맘고생을 하질 않나, 게다가 마지막까지 그리 고통받고
끝나니...아마도 범인 때문에 가장 심적으로 고통받았을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춘배씨. 엄청 동안이신가 봐요! 껄껄. 아니면 거의 제레미 아이언스 급의 마스크를 지니고 있다던가...
소설을 읽다 보면 얼마나 동안 or 미남이길래 저런 구리디 구린 작업기술이 먹히는 거여...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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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츠마 이야기 - 양키 소녀와 로리타 소녀
타케모토 노바라 지음, 기린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시모츠마 이야기  X  閃光少女(東京事変)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결코 나이를 먹지 않고, 언제까지나 싱그럽고 풋풋한 '소녀'로 남아있을 아이들이 있다.
바로 시모츠마 이야기의 모모코와 이치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통용화된 사회에서 개개인의 개성과 색깔,
매력과 가치관은 고르고 평평한 잔디밭에서 삐죽 튀어나온 잡초에 불과할 뿐인데도, 꼿꼿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들.
사회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삿대질 당하더라도, 반짝이는 자신이라는 빛을 꺼뜨리지
않는 두 사랑스러운 소녀들에게 동경사변의 <섬광소녀> 만큼 잘 어울리는 곡이 또 있을까? 남들이 디디지 않는 험난하고
어두컴컴한 길을 스스로가 별처럼, 달처럼, 태양처럼 맹렬히 빛나며 비추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이 소녀들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 마저 사랑해주지 않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더 지체할 것 없이 이 영롱한 '섬광소녀들'을 소개해야겠다.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마이너리티. 시작부터 모모코와 이치고는 불리한 입장에 서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혼 마져 뿌리째 뽑힐만한 세기의 만남이었던 로코코 시대와 로리타 문화를(로리타 콤플렉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너무나
사랑해서 헤드드레스와 파니에를 듬뿍 받쳐 입은 베이비돌 점퍼를 입고, 로리타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 모모코와, 양키들의(역시나 미국인을 비하하는 은어와 전혀 상관없는...) 이른바 셔틀노예로 
절망적이고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노래 가사처럼 357 국도에서 여자 중의 여자, 양키 중의 양키

아키미 선배를 만나 요로시쿠(夜露死苦)의







"소중한 걸 발견했을 때는 그것 때문에 다른 커다란 걸 잃게 되더라도 절대로 그걸
놓치지 말고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단 말야. 정말로 소중한 걸 만나지도 못한 채
죽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 어리광 피우는 건 그 정도면 됐어."














 

 

 

 

 

 

*<네이버 블로그에 원본 작성 후 리뷰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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